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86] 재회를 위한 또 한 번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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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지하에 답이 있다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08 06:30:10

모두 나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내일 하루만 더, 그렇게 미루고 또 미루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살아서 이 아일 안아 주어야 한다. 아이가 제 몫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아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이를 번쩍 안아 올린 다음 아내 앞으로 갔다. 아이를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아이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내 손을 꼭 쥐었다. 나는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앉았다. 아이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고 그 위에 꼬마 기차를 올려 주었다. 내가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아이가 조금은 겁먹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일어선 나는 아이의 다른 한 손을 아내의 손에 쥐어 주었다. 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내가 안고 있던 작은아이의 볼도 쓰다듬었다. 아내와 큰아이·작은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밤이 지나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얼굴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가족이었다.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었지만 나는 그대로 뒷걸음질쳤다. 아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가슴이 쓰라렸다. 눈물을 삼키려고 애쓰며 손을 흔들었다.

“여보!”

아내가 소리쳤지만 나는 뒤돌아서서 도망치듯 달렸다.

“아빠!”

큰아이 건이 서럽게,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작은아이 한도 덩달아 큰 소리로 울어 재꼈다. 나의 두 볼에도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그래서 나는 뒤돌아볼 수 없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63빌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정까지 5시간도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택시 안에서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하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조명과 인테리어, 그 안에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웃고 걷고 쇼핑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두리번거렸다. 내가 찾는 건 오직 어두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승강기였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타고 B3, 맨 아래층 단추를 힘껏 눌렀다. 어비수스의 엘리베이터처럼 마음을 모을 필요도 없었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 나는 간절하고 초조하게 하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문이 열리고 주차장 안으로 튕겨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왼쪽, 아니 오른쪽, 아니 왼쪽으로 달렸다. 우뚝 멈췄다. 너무 넓었다. 주차된 자동차들이 너무 많았다. 아침에 터널을 빠져나올 때 안대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어렴풋이 인지한 길을, 그것도 거꾸로 되짚으려니 방향과 위치가 도무지 가늠되지 않았다. 정지한 차와 정지하려는 차. 차를 세우고 잠시 떠나는 사람과 차를 찾아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주차요원의 호루라기 소리. 주차 경고등의 사이렌 소리. 한시도 멈추지 않는 사람들. 한시도 정지하지 않는 세계.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오도 가도 못 하고 그 한가운데 멈춰 섰다.

“정하운!”

나는 손나팔을 만들어 미친놈처럼 크게 소리쳤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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