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도 외면한 밸류업… 매도물량 75%가 밸류업 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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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 종목 공개 후 4일까지 열흘간 100개 종목 1138억 원 팔아치워
기관·외국인 ‘팔자’에 밸류업 지수 열흘간 1% 하락… 코스닥보다 저조
고평가 밸류업, 저평가 선호 기관에 부담… 국민연금, 밸류업 참여 주목

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0-07 09:00:00

▲ 스카이데일리가 7일 한국거래소에서 코리아 밸류업 지수 편입 종목 100개 거래실적을 확인한 결과, 연기금 등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4일까지 6거래일간 100개 종목을 1138억 원 순매도했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상담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연기금이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발표 후 열흘간 주식을 1500억 원 이상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지수 편입 100개 종목으로 한정하면 순매도 규모는 1100억 원이다. 연기금이 주춤하면서 밸류업 지수는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저평가를 선호하는 기관의 수요를 끌어당기기 쉽지 않다. 밸류업 성공을 위해 연기금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국민연금이 고갈될 위기 속에서 연기금을 함부로 쓸 수 있냐는 반론도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7일 한국거래소에서 코리아 밸류업 지수 편입 종목 100개 개별 거래실적을 확인해 종합한 결과, 연기금 등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4일까지 6거래일간 100개 종목을 1138억 원 순매도했다. 연기금 전체 순매도(1508억 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규모다. 연기금이 ‘팔자’에 나서면서 100개 종목에 대한 기관 전체 실적도 1712억 원 순매도로 부진했다.

업종마다 수급은 달랐다. 연기금 등은 산업재(398억 원)·커뮤니케이션 서비스(204억 원)·정보기술(97억 원)·자유소비재(87억 원) 업종을 사들였으나 소재(-1545억 원)·금융/부동산(-175억 원)· 헬스케어(-139억 원)·에너지(-52억 원)·필수소비재(-14억 원) 업종은 대거 팔아치웠다. 종목별로 보면 삼성전자 등 63개 종목에 대해 순매수, 고려아연 등 37개 대해서는 순매도했다.

기대를 모았던 연기금 등이 순매수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서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996.66로 출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 시세는 26일 1027.17까지 치솟았으나 얼마 못 가 고꾸라지며 4일 985.99로 마감했다. 열흘간 하락 폭은 1.07%다. 이는 코스피 지수(-2.35%)보다 선방했으나 0.21% 오른 코스닥 지수보다는 저조한 성적이었다.

문제는 밸류업 지수에 참여할 기관의 유인이 크지 않아 상승 탄력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평가 종목 위주로 편입된 게 발목을 잡았다. 그간 시장에서는 배당 등 주주환원에 충실한 배당주 중심으로 지수를 구성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순이익비율(PRB)·자기자본이익률(ROE) 등이 높은 고평가 종목 위주로 지수를 구성했다. 저평가 종목을 선호하는 기관에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밸류업 지수의 평균 PBR·PER·ROE은 각각 2.6배·18.4배·15.6%로 코스피200(2.0배·11.2배·9.3%)를 크게 웃돌았다.

하나증권 이경수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높은 종목 위주인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벤치마크로 추종하는 국내 기관들이 있을지 여부다”면서 “고평가 종목 매수 근거는 해당 국가·시장의 중장기 성장성 담보이고 밸류업 지수 종목군의 최근 전년동기 대비 증가율은 코스피 200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라서 기존 저평가를 선호하는 기관 입장에서 부담이 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연기금 내 ‘큰손’인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줄이는 점도 악재다. 5월 말 국민연금공단은 14.3%(148조 원)인 국내주식 비중을 2029년까지 13%(143조 원)로 줄이는 내용의 2025~2029년 중기자산배분안을 채택했다. 반면 해외주식 등 해외투자는 2028년까지 60%로 확대한다.

축소 조짐은 연초부터 나타났다. 연기금 등은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2월26일 이후 4일까지 총 1조2457억 원을 순매도했다. 그간 정부는 밸류업 성공을 위해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 지원을 요청해 왔으나 연기금은 오히려 국내 증시를 빠르게 이탈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밸류업 성공을 위해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거래소 이부연 경영본부장보는 지난달 24일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할 때 “지수의 성공, 밸류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연기금 참여가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토론회’에서 “연기금과 운용사는 자본시장의 투자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장기투자 주체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기금 지원으로 성공한 일본 밸류업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공적연금(GPIF)의 전체 투자자산군 중 일본 주식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55조8000억 엔(비중 24.7%)으로 2010년 말(13조4000억 엔, 비중 11.5%) 네 배 이상 불어났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밸류업 지원방안이 성공을 거두려면 일본 사례를 참고해 자본시장에서 신뢰할 만한 장기 투자자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의 역할을 강화하고 유인 부합적인 세제 개선을 통해 장기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