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부실에도… 4대 금융 사외이사 ‘거수기’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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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신한·하나·우리 사외이사, 상반기 안건 63건에 대해 모두 찬성 던져
자회사 부당대출·횡령 사건 등 미리 파악하지 못하며 경영권 감시 방관
이사 충실의무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시행 시 ‘거수기’ 사라질지 주목

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0-09 11:23:00

▲ 4대 금융지주(국민·신한·하나·우리)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사외이사 32명은 상반기 총 25차례 열린 정기·임시 이사회에서 중요 의사결정사항 안건 77건에 대해 ‘반대’를 1표도 행사하지 않았다. 모두 ‘찬성’이었다. 서울의 한 건물에 설치된 은행 ATM기. 연합뉴스

금융권 사외이사 ‘거수기’ 현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4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는 상반기 이사회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전혀 던지지 않았다. 이사회 내 위원회에서도 소극적이었다. 내부통제 부실 등이 발생했음에도 경영진을 적극 감시하지 않은 셈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까지 확장하는 상법 개정안을 시행해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카이데일리가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4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반기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이들의 사외이사 32명(중도 퇴임 제외)은 상반기 총 25차례 열린 정기·임시 이사회에서 중요 의사결정사항 안건 63건에 대해 표결했다. 이 가운데 ‘반대’는 1표도 없었다. 모두 ‘찬성’이었다. 사외이사 찬성에 힘입어 이사회 안건은 원안 그대로 넘어갔다.

회사별로 KB금융은 이사회에서 13건을 논의했으나 사내·사외이사 모두 찬성을 표했다. 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도 ‘의결권 제한’ 등을 빼면 각각 18·16·16건에 대해 모두 찬성표였다.

이사회 내 위원회에서도 사외이사의 존재감은 작았다. 4대 금융지주는 감사위원회·위험관리위원회·감사위원회·보수위원회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3월 퇴임한 이윤재 신한금융 사외이사가 2월 보수위원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 찬성이었다. 의안은 위원회 문턱을 쉽게 넘어갔다. 수정가결·결의 의안은 5건이었고 가결 의안은 113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더 큰 문제는 내부통제 부실이 발생한 가운데 경영권을 적극 감시하지 않고 ‘예스맨’ 노릇을 했다는 점이다. 우리금융 사외이사는 우리은행 등 자회사에서 2년 전부터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불법·부당대출과 임직원 횡령 사건이 일어났으나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4월 열린 이사회에서 ‘2023년 하반기 내부통제 활동 보고’에 출석하고 5월 리스크관리 위원회에서 ‘그룹 부문별 리스크관리 현황’을 보고받은 것으로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윤수진 기자] ⓒ스카이데일리

하나금융 사외이사도 감사위원회에서 100% 찬성률을 보이며 내부통제 관련 의안을 다뤘지만 4·6월 3건(6억1540만 원)의 임직원 횡령 사고를 막지 못했다. 신한금융 사외이사도 3월 감사위원회에서 ‘내부감시장치 가동현황에 대한 평가의 건’ 등 내부통제 관련 의안에 모두 찬성했으나 신한저축은행(500만 원)·신한은행(3220만 원)에서의 횡령 사고를 차단하는 데 실패했다.

금융지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상장사 대부분에서 사외이사 거수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500대 기업 중 주주총회소집공고 보고서를 제출한 181곳의 이사회 안건에 대한 사외이사 찬성률은 99.3%에 달했다. 이 중 163곳은 사외이사 안건 찬성률이 100%였다. 10곳 중 9곳은 사외이사 반대표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셈이다.

사외이사 거수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외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2대 국회에 발의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내용의 상법 개정안은 총 9개다. 김현정·박상혁·민병덕·유동수·김남근·천준호 의원 등이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들은 상법 제382조의3에서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한 내용을 ‘이사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고치는 게 골자다. 법안 취지는 소액주주 이익 보호와 증시 저평가 해소이지만 시행 시 사외이사의 능동적인 이사회 참여를 유도해 거수기 현상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규식 변호사는 “상법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면 사외이사는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충돌이 있는 사안에 만연히 찬성표를 던지면 손해배상을 책임이 발생할 수 있어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주인 없는 회사 사외이사라도 경영 행위 하나하나가 기업·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지를 판단해야 하므로 거수기 역할을 더 이상 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강조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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