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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올드타운이다. 종로라는 이름은 ‘종이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성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 지금의 종로 1가에 종을 매달아 둔 것에서 이름을 따왔다.
종로를 중심으로 북쪽에는 임금님이 사는 궁궐이 있었고 행정부 역할을 하는 의정부와 육조 관아가 위치했으며 양반 중에서도 노론의 거주지인 북촌이 있었다. 종로 남쪽에는 청계천과 남산이 있어 일대에 소론과 남인이 거주했다.
서울 종로구는 빌딩도 많지만 녹지가 잘 보존돼 있어 가을이면 도시 전체가 울긋불긋 단풍 옷으로 갈아입는다. 고층빌딩의 화려한 불빛과 궁궐의 고즈넉함을 즐기며 단풍놀이까지 할 수 있는 완벽한 여행 코스가 종로다. 이맘때면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눈에 띄는 것도 종로의 특징이다.
단풍과 단청의 완벽한 조화 ‘창덕궁’
종로구 율곡로 99에 자리한 ‘창덕궁’은 전통과 자연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이상적인 궁궐로 통한다. 일찌감치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창덕궁은 태종 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건설되었다. 임진왜란으로 한양 도성 내 전 궁궐이 소실되면서 창덕궁도 파괴되는 비운을 겪는다. 전쟁이 끝나 선조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광해군은 다른 궁을 젖혀두고 창덕궁 중건을 서둘렀다.
창덕궁은 법궁인 경복궁에 비하면 대궐 규모가 아담해 공사에 따른 부담이 적었다. 또한 산자락을 끼고 자리한 후원이 빼어나게 아름다워 왕이 신하를 거느리고 산책하기에도 그만이었다.
경복궁 중건이 한 해 한 해 미루어지는 사이 창덕궁은 270여 년에 걸쳐 옥류천·규장각·주합루·애련지·의두합·연경당이 하나씩 완공되며 한양의 실질적인 법궁 노릇을 하게 된다.
돈화문을 지나면 양옆으로 천연기념물 회화나무 8그루가 서 있다. 창덕궁 담 너머로 구불구불한 가지를 위엄 있게 뻗어 올리고 있는 키 큰 나무가 바로 회화나무다. 15m의 늘씬한 키를 자랑하는 이 노거수는 가을이면 검은 가지에 노란 단풍잎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본디 회화나무는 왕을 모시는 신하를 상징한다. 이 나무를 궁궐 입구에 심은 것은 왕을 보필하는 신하의 본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나무는 200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돈화문에서 조금 안으로 걸어들어와 금천교에 이르면 붉은 단풍나무와 노란 단풍나무가 대비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이곳의 유일한 청기와 지붕인 선정전 짙푸른 청기와와 대비되어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금천교는 비단 같은 물줄기가 흐르는 다리라는 뜻이지만 가을에는 비단보다 고운 단풍잎이 실개천을 덮는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인 순정황후와 의민황태자비(영친왕비·이방자 여사)·덕혜옹주(고종의 딸)의 생활 공간이었던 낙선재 주변도 단풍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창덕궁 단풍의 백미는 후원이다. 후원 곳곳에 자리한 연못에는 정자가 있어 물의 운치와 단청의 아름다움·단풍의 낭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존덕정이 있는 ‘관람지(반도지)’와 사각형 연못 ‘부용지’ 그리고 불로문 옆 ‘애련지’는 손꼽히는 단풍 스팟이다.
창덕궁은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9시부터 관람 가능하지만 후원은 제한관람지역으로 시간표에 따라 회차별 최대 100명(인터넷 예매 50명·당일 현장 발매 50명)까지만 입장할 수 있다.
탐스런 은행나무 가로수길 삼청로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 단풍이 특별한 운치를 더하는 삼청로는 경복궁 건춘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삼청동거리·한국금융연수원·삼청터널에 이르는 길을 일컫는다. 경복궁 고풍스러운 담을 따라 은행나무가 줄지어 있어 차분히 생각하며 걷기 좋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들었다.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은 왕실의 친인척이나 궁인들이 이용하던 문으로 직역하면 봄(春)을 세운다(建)는 뜻이다. 입춘과 비슷한 뜻이다. 오행에서 동쪽은 봄을 나타낸다. 반대로 경복궁 서문은 가을을 의미하는 영추문이다.
건춘문은 아치형 문을 낸 석축 위에 단층짜리 문루를 올려 그 위엄이 대단하다. 건천문 안쪽에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비록 단 한 그루지만 열 나무가 모여도 그 미모를 못 따라갈 만큼 수형이 아름답고 단풍색이 곱다. 경복궁 안쪽 자경전 뒤편에도 수령이 꽤 된 은행나무가 세 그루 자라고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건천문 건너편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있다. 과거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와 국군서울지구병원이 있던 자리다. 기무사는 국방부 직할의 수사정보기관으로 군사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범죄 수사를 맡았던 곳이다.
기무사 이전 조선 시대에는 규장각·소격서·사간원 등이 자리했던 곳이다. 규장각은 왕실 도서관으로 지금의 국립중앙도서관 같은 곳이었고 소격서는 도교의 영향으로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사간원은 지금의 국가기록원으로 조선 시대 임금과 신하들의 논박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개관하면서 기무사 본관의 외장재를 바꾸는 등 건물 리모델링 작업을 거쳤다.
이처럼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시간의 지층이 켜켜이 쌓여 있다. 나무가 나이테를 더해가듯 도시도 역사의 지층을 겹겹이 두르며 나이를 먹어 가는 중이다.
지난해 이상기후로 삼청동 은행나무는 노란 옷을 갈아입지 못한 채 푸른 잎을 떨궈야 했다. 올해는 제 빛깔의 노란 은행을 기대해 본다.
서울문묘 500살 먹은 은행나무
종로 성균관대학교 명륜당 앞에는 수령 500살의 은행나무(文杏)가 있다. 사람으로 치면 벌써 무덤에 들어가 조상 대접을 받을 세월이지만 은행나무는 싱싱하게 살아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싱싱할 뿐 아니라 세월의 기품이 더해지니 누구라도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성균관대학교 명륜당 일대의 정식 명칭은 ‘서울문묘’다. 공자를 비롯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크게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교육 공간인 명륜당으로 구분된다.
명륜당 은행나무는 조선 중종 때 문신 윤탁이 심은 것으로 전한다. 윤탁은 과거 급제 후 대사성과 동지관사 등을 역임하며 오랫동안 성균관에 근무했다. 그는 강당 아래에 나무 두 그루를 심으면서 ‘뿌리가 무성해야 가지가 잘 자란다’는 말로 유생들에게 근본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중종은 “나를 보필하여 나의 미진한 학문을 교도해 달라”고 할 만큼 윤탁을 신뢰했다. 윤탁의 인기가 어찌나 높았는지 퇴궐한 후에도 가르침을 받고자 많은 유생이 그의 집을 찾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인기 있는 교수였던 것이다.
이 은행나무는 태학계첩(1747년)과 왕세자입학도첩(1817년·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례를 그린 화집)에도 그 모습이 등장한다. 또 윤탁의 묘비에는 ‘선생의 후손이여, 저 은행나무 공경하소!’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1962년 이 나무는 역사적·경관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명륜동 은행나무는 다른 지역보다 조금 단풍이 늦어 11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 은행나무는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바닥에 떨어진 노란 낙엽 더미가 색다른 정취를 더한다. 인근에 붉은 단풍나무와 느티나무가 있어 미적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대성전 안쪽으로도 두 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 함께 보면 좋다.
또한 성균관대학교 캠퍼스 후문에서 삼청동으로 연결되는 길도 가을날 운치 있는 산책로로 꼽힌다. 와룡공원으로 이어지는 성곽길에도 단풍이 지천이므로 함께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서울문묘는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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