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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가려면 국가가 주관하는 소정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1980년까지는 대학예비고사, 1981~92년엔 학력고사를 치렀다. 요즘에는 수학능력시험이다. 1980년 이전에는 만점 합격자가 가끔 나왔지만 12년간 치른 학력고사에서 340점 만점을 받은 수험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객관식이었지만 시험 과목이 15개나 돼 만점 받기가 어려웠다.
1993년부터 시행된 수능은 5지선다형이지만 6·7개 과목만 시험을 치른다. 1998년에 나온 첫 만점자로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오승은 씨는 인터뷰에서 당시 큰 인기를 끈 그룹 H.O.T.에 대해 묻자 “H.O.T.가 뭐죠?”라고 답해 화제였다. 오씨는 과목별 정리 노트를 출간하며 상당한 인세를 받는 등 연예인 못지않은 관심을 끌었다. 오씨는 미국 MIT대학원을 거쳐 UC샌디에이고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입시에선 김지명 씨가 중학교 3년 내내 백혈병을 앓았는데도 병마를 이겨 내고 인터넷 자습만으로 만점을 받아 얘깃거리를 만들었다. 같은 해 김형태 씨는 공군 취사병으로 복무 중 만점을 받아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 흔한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받지 않고 학교 공부에 충실했다는 게 만점자들의 한결같은 학습 비결이다. 잠도 충분히 잤다고들 한다. 의외의 만점 비결이다.
2000년대 이후 수능 만점자들은 의대 진학이 일반화되다시피 했다. 전형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수능 만점자가 낙방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4년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만점을 받은 J씨는 서울대 의대 입시에 떨어졌다. 최근엔 수능 만점자 출신인 명문대 의대생이 여자 친구를 ‘이별 살해’한 혐의가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25학년도 수능에서도 만점자가 11명 나왔다. 이중 자연계가 10명이다. 만점을 받은 서울 광남고 서장협 군은 컴퓨터 게임의 취미를 살리겠다며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 수시 합격했다.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의대 진학 권유에도 공학도가 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서군은 원래 의대 진학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과거 1970년대 예비고사 자연계 만점 및 수석 합격자들은 의대가 아닌 물리학과나 컴퓨터 제어계측학과에 주로 입학했다. 이런 덕분에 우리나라 IT산업이 세계 최고가 된 것이 아니겠는가. 수능 만점자가 의대 아닌 공대에 진학한 게 화제가 되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국가 미래를 생각하면 수재급 인재들이 이공 계열에 더 많이 진학해야 한다.
박병헌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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