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8º
습도 65%
대전 0º
습도 80%
전주 -5º
습도 75%
)
로싸르 따시델레라! 부탄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뜻이다. ‘로’는 해(year)이고 ‘싸르’는 새(new)다. 부탄도 새해가 되면 축하 인사를 나누며 가족 친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부탄을 방문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행복하냐고 대놓고 묻는 것이다. 아무리 ‘부탄은 행복한 나라’라는 공식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생사 길흉화복은 만고의 진리다.
한국 사람이 다 머리가 좋고 이탈리아 사람이 다 성악에 능한 게 아닌 것처럼 부탄 사람이라고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부탄과 행복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국내총생산보다 중요한 국민총행복지수
믿기지 않겠지만 부탄은 1970년대부터 국민총행복지수(GNH: Gross National Happiness)를 고유의 경제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국민총생산 늘리는 일에 목을 맬 때 부탄은 웰빙을 국가 발전의 중심에 두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탄 정치체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부탄의 정식 명칭은 ‘부탄왕국’으로 2008년 3월 총선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채택했다. 국왕이 있지만 국민민주당(PDP)과 부탄연합당(DPT) 등이 정당이 공화정을 펼친다. 현재 국왕은 통일 부탄왕국의 5대 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1980~ )이다.
지금의 행복한 부탄이 있기까지 4대 왕 지그메 싱게 왕축(1955~ )의 공이 크다. 그는 영국 유학생 출신의 엘리트로 1980년대 교육 개혁을 통해 80%를 넘던 문맹률을 40%로 낮춘 능력자 왕이었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입고 있음에도 그는 스스로 절대군주 자리를 내려놓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하는 절차를 밟았다.
세계 역사에서 폭군이 나라를 말아먹은 예는 흔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4대 왕은 입헌군주제를 채택해 혹시라도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방지했다. 세계 유일무이한 이 사건으로 국민은 왕을 절대 신뢰하게 되었다.
부탄에 군사부일체라는 말은 없지만 부탄에서 왕은 스승이고 어버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왕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왕이 솔선수범하니 국민의 마음도 여유로워 절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리라.
슬프도록 아름다운 탁상곰바
부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산허리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사원 한 채가 그것이다. 이 사원의 이름은 ‘탁상곰바’. ‘곰바’는 수행처를 의미한다. 주로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곳에 자리한다.
해발고도 3120m 지점 900m의 깎아지른 절벽에 새 둥지처럼 자리한 탁상곰바는 일반 사찰은 흉내 낼 수 없는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탁상’은 부탄 말로 ‘호랑이 둥지’를 뜻한다. 전설에 따르면 서기 8세기 파드마 삼바바가 암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이곳으로 날아와 부탄 최초로 불교를 전했다고 한다. 그가 도착한 자리에 세운 것이 바로 이 호랑이 둥지 사원이다.
‘구루 린포체’라고도 하는 파드마 삼바바는 히말라야 산중에서 1000권이 넘는 경전을 썼다고 전해진다. 불교 박해를 예감한 그는 1000개의 동굴에 이 경전을 숨겼는데 사후에 제자들이 그것을 찾아 나서 지금까지 65권이 발견됐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14세기에 발견된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다.
이 책은 “살아 있는 어떤 것도 개별화된 실체를 갖지 않으며 오직 마음만이 실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는 마음의 결과이며 마음 없이는 세계도 없다. 삶과 죽음도 우리의 환영이고, 모습도 색깔도 우리의 마음까지도 실체 없는 환영이다. 모든 상태가 환영이며 윤회계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교적 세계관은 욕망하지 않음으로써 고통을 무위로 돌려버린다. 고통이 없으니 불행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으니 행복한 것이다.
까마득하게 높은 탁상곰바지만 주차장이 있는 해발 2600m에서 여정이 시작되므로 그리 험난한 코스는 아니다. 520m 동산을 오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길은 고산병이 올만큼 산소가 희박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동네 뒷산을 오르듯 편하기만 한 여정도 아니다. 약간의 비용을 내면 중간 지점인 전망대까지 조랑말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원에 도달하려면 어쩔 수 없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해야 한다.
탁상곰바는 본당을 중심으로 3개의 부속건물이 잇대어 자리 잡고 있다. 사원 내부에는 파드마 삼바바가 첫발을 디딘 자리와 명상 터가 있어 사람들이 기도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도의 타쉬초종과 옛 수도의 푸나카종
종(Dzong)은 부탄의 독특한 건축 양식이다. 불교 사원이면서 지역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시청처럼 지역 행정을 맡아 처리하고 해마다 큰 축제를 벌여 주민의 단합을 도모하는 것도 종이다.
부탄은 남한 면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작은 나라지만 대부분의 영토가 높은 산과 고개로 구성돼 있어 지역 간 이동이 쉽지 않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국제공항이 있는 ‘파로’에 도착해 탁상곰바를 둘러본 후 수도 ‘팀푸’와 옛 수도 ‘푸나카’에 들러 다양한 종을 방문하면서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수도 팀푸에는 정부청사 역할을 하는 타쉬초종이 있다. ‘찬란히 빛나는 궁전’이라는 뜻으로 원래 도시를 지키는 요새로 출발했다. 흰 성벽 위에 여러 겹으로 포개어진 지붕과 화려한 부조 장식이 눈길을 끄는 이곳에는 네 마리의 동물 부조가 자리한다.
코끼리·원숭이·토끼·새가 앉아 있는 장면을 묘사한 이 부조는 티베트불교 경전에 나오는 우화
‘투엔파 푸엔 시(조화로운 네 친구)’를 조각으로 남긴 것이다.
맨 아랫단의 코끼리는 나무의 첫 발견자로, 원숭이는 열매의 발견자로, 토끼는 나뭇잎을 먹고 자란 과거로서 열매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씨앗을 땅에 돌려준 새가 최종 승자 자리를 꿰차면서 싸움은 일단락된다. 모두를 무릎 꿇린 새는 열매를 사이좋게 나누도록 했고 숲에 평화가 깃들었다고 한다. 가장 작은 짐승 앞에 바싹 엎드린 동물들의 모습에서 부탄 사람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옛 수도 푸나카에는 푸나카종이 있다. 아버지 강 포추와 어머니 강 모추가 만나는 두물머리에 자리한 푸나카종은 부탄 내 수많은 종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이 종의 본명은 풍땅데첸포땅종(Pungtang Dechen Photrang Dzong)으로 ‘큰 행복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푸나카종이 신성시되는 것은 내부에 이 종을 창건한 부탄의 국조 샵둥스님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부탄의 국사인 제켄포 스님의 겨울주석사원이기도 하다. 봄이면 강변을 따라 보랏빛 벚꽃 자카란다가 만발해 푸나카종을 아름답게 치장한다. 자카란다는 현지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꽃이다.
색다른 명소 ‘도출라 패스’ ‘비행기 전망대’
푸나카종은 팀푸에서 차로 6시간 거리다. 해발 3140m의 험난한 도출라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미리 멀미약을 먹어두는 게 좋다. 도출라 고개는 해발 6000m의 히말라야 설산을 360도 파노라마로 한눈에 볼 수 있는 데다 고개 정상에 108개 불탑이 있어 부탄 필수 여행 코스로 꼽힌다.
사실 진정한 부탄 여행은 파로국제공항에서 시작된다. 해발 2241m의 협곡에 자리한 이 공항은 이·착륙이 어렵고 활주로 길이가 짧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나마 1990년 활주로 길이가 1400m에서 2265m로 연장되었지만 여전히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은 한 편의 액션영화를 방불케 한다.
파로 국제공항 앞 언덕에는 에어포트 버드 아이 뷰(Airport bird eye view) 전망대가 있다. 자연경관을 조망하는 곳이 아니라 ‘공항 새’ 즉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구경하는 장소다. 푸드트럭까지 등장할 만큼 명소로 자리 잡았다고.
코로나19 이전에는 4인 기준 한 팀 1000달러의 비용으로 인증 여행사를 통해야만 부탄 여행이 가능했다. 체류비(환경보전비)·숙박·식사·차량·가이드(기사)가 포함된 비용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1인 체류비 100달러로 입국이 가능해졌다. 인증 가이드와 인증 차량을 구한 뒤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르지만 말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인증 여행사에 의뢰할 수밖에 없으므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셈이다.
부탄을 소개하는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엄청 멀리 있다.” 행복은 엄청 멀리 있지만 행복의 나라 부탄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인천공항에서 3638km만 날아가면 된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연재기획 ‘반대세의 비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