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49] 가족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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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21 06:30:16

승연의 귀가가 조금씩 늦어지자 부모님의 걱정이 늘었다. 승연이 집에 들어오면 유난히 최루가스 냄새가 풍겼다. 옷에 남아 있는 최루 가루를 털어 내고 물로 닦아 내도 냄새는 금방 빠지지 않았다. 지하철 곳곳에서 재채기하는 승객이 많아졌다.

서울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대학가 근처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옷에 밴 가루가 기관지를 타고 자극했다. 시민들이 콧물을 흘리고 기침했다. 가끔 데모하는 학생들을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개는 민주화운동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승연 어머니는 승연의 몸에서 매번 매캐한 냄새가 날 때마다 시위하다 늦어진 건 아닌지 물어봤다. “너, 데모나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승연은 그때마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학교가 데모 전문학교인 거 몰라? 내가 데모 안 해도 사람들은 전교생이 데모하는 줄 알아. 그리고 나는 데모에 끼워 주지도 않아, 부르주아라고.”

어머니는 빨리 학교를 옮기든지 말든지 해야지 걱정이라고 응수했다. 학교 옮기는 건 승연의 몫인데 어머니한테 결정권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기순이가 최루가스에 몸져누운 날, 집안에 승연 몸에 밴 매운 냄새가 진동하자 아버지는 승연을 불러 앉혔다. “혹시 너, 데모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아버지 표정은 어느 때보다 무겁고 심각했다. 아버지의 표정은 몇 년 전 사업에 위기를 맞았을 때보다,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엄중했다.

“하지 마라. 괜히 남들 한다고 따라 하거나 남들 하는데 안 한다고 부채의식 같은 거 갖지 말고. 너희들이 학생 위치에서 공부 열심히 해서 나라에 기여하면 된다. 민주주의는 시간이 해결해, 피가 아니라. 데모로 민주주의 하자는 건 빨갱이들 발상이야.”

아버지 염려를 아는, 아버지 일장 연설이 재탕될 걸 예상한 승미 언니가 축 처진 아버지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우리 데모 안 해요.” 승연이 아버지 말에 대꾸하려는 걸 눈치챘는지 어머니와 승미 언니가 승연을 향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잠자코 있으라는 신호였다. 승연은 입을 떼려다 말고 고개를 떨구었다.

승연은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학생 시위의 배경과 목적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승연은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었다. 학생들이 최루탄에 고통스러워하는 게 마음 아팠고 필사적으로 돌멩이를 드는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어설프고 가벼운 지식으로 상대를 설득할 순 없었다. 군사 독재가 왜 잘못됐는지 설명할 만큼 지적 무장이 안 된 상태였다. 승연이 반박할 만큼 논리를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도 여전히 시위의 당위성에 설득되지 않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어서면서 승연을 향해 말했다. “수업 끝나면 일찍 일찍 귀가해라. 학교가 멀어서 제일 걱정이 돼. 그리고 유학할 준비나 하고 있어. 아무 소리 말고.” 승연은 아무 대꾸도 못 하고 길게 한숨만 내쉬었다. ‘아버지, 달걀로 바위 치기라 해도 멈출 순 없어요. 흔적이라도 남겨야죠.’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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