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48] 민주를 위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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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20 06:30:47

승연이 수업을 하는 둥 마는 둥 농반에 잠깐 들렀는데 기순을 가운데 두고 농반 멤버들은 물론 타과 학생들까지 모여 웅성거렸다. 기순이 눈에 최루 가루가 들어갔다며 응급조치하는 모습이었다. 기순이는 눈을 비비지 않았으나 발작하듯 몸을 비틀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짐승의 울부짖음 섞인 신음을 토해 낼 뿐이었다.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모습이 참담했다.

얼마나 가까이서 최루탄 가스에 노출됐는지 기순의 주변에 있는 학생들까지 기침하고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 생리식염수를 가져와 기순의 눈에 부어 주었다. 물과 생리식염수에 기순의 옷은 전부 젖었고 기순은 입구멍·콧구멍·눈구멍으로 모든 분비물을 쏟아 냈다.

승연은, 화상 입은 것처럼 살갗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기순의 손을 잡았다. 기순아, 나야 승연이. 승연이 배낭에서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물에 적셔 기순의 얼굴을 닦아냈다. 옆에 있던 남학생이 소릴 지르며 욕을 했다.

“이 쌍놈의 새끼들. 다 죽여라 죽여!”

시위가 벌어지면 최루분말을 들이키는 건 일상사지만 학우들이 다치는 광경을 보면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군사독재 정권을 반드시 끌어내려야 할 명분이 됐다. 농반 총무인 여자 선배가 기순을 화장실로 데려가게 도와달라 했다. 화장실에서 얼굴에 남아 있는 잔류물을 비누로 씻어 내야 했다.

승연은 기순을 일으켜 어깨에 멨다. 승연은 가슴에 울화가 치밀었다. 기순을 여자 선배의 기숙사로 옮겼다. 젖은 옷을 벗겨 샤워시키고 선배의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기순은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얼마나 악을 쓰며 몸부림쳤는지 목이 쉬었다. 몸에서 미열까지 났다. 그러면서도 동지들과 합류해서 계속 싸워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승연은 기순에게 빵과 음료수, 먹을 것을 갖다 주며 막차 버스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 승연도 억지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버스 쪽으로 옮겼다.

늦은 밤 버스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가끔 전경이나 사복 경찰들이 학교 버스를 세우고 올라와 운동권 학생들을 수색하는 경우가 있긴 해도 늦은 귀가 버스까지 뒤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복 경찰들이 버스에 올라타면 학생들은 죄를 지었건 안 지었건 긴장했다. 사복 경찰들의 눈은 매서웠다. 쓱 한 번 훑고 나서 의심이 가는 학생들을 지목했다. 지목당한 학생들은 대부분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나섰다.

과격 시위하다가 경찰에 끌려간 학생들이 엄청난 고문에 시달린다는 소문은 광주사태를 연상시킬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여자는 무조건 경찰들로부터 강간당하며 남자들은 생전 듣도 보도 못 한 신박한 방법으로 고문당한다는 설이 돌았다. 세상에 그런 고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잔인한 내용이었다. 그런 소문이 공포를 조장하면서도 학생들의 저항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운동권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경찰에 잡혀가는 것이 민주 활동으로 인정받는 훈장이었다. 잡혀가는 학생은 행동대원들이고 핵심 주동자는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녔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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