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12.29 ‘무안국제공항 참사’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 ‘서각사’라는 이름의 한 사찰이 있다. 그곳에서 “대규모 재난 상황에는 전 국민이 위로받아야 한다”고 외치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벼 온 한 스님을 만났다. 사단법인 한국불교약사회 총재이자 한국효문화실천회 회장·대연각사 아미선원 회주·서각사 참선 염불선원 선원장으로 있는 진원 불일 스님이다.
불일 스님은 이태원참사 등 국가 차원의 대형 악재가 발생하면 즉시 사고 현장을 찾아 피해자와 유가족을 치유하고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49재 때까지 이들과 동고동락하며 깊은 애도를 표한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가 현장에서 사고 희생자와 유족의 곁을 지켰다. 그러면서 참혹함만이 남은 곳곳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했다. 이 모든 것은 부처님의 뜻이기에 삶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피해자와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걸어갈 것이다.
스님은 국민에게 잊히지 않을 상처로 남은 대형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최근 발생한 ‘제주항공의 무안국제공항 참사’를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했다.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참사는 2024년 12월29일 발생했다. 탑승객 181명 가운데 179명이 사망하면서 현재까지도 최악의 참사로 회자되고 있다.
사고 발생일로부터 두 달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진원 불일스님은 사고가 발생한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뉴스를 통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사고가 난 무안공항으로 향했다. 실제로 현장에 가 보니 사고 당시 처참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에 현장에 머물며 망연자실한 유가족을 돌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러나 스님이기에 앞서 한 사람으로서 아비규환 속 상황에서 지내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스님은 이에 대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이 대규모 재난 상황을 외면하지 않도록 붙잡았다”고 말했다.
무릇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국가의 중요한 책무이건만 비록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정부가 못 챙기면 국민이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말로 스님은 본격적인 대화를 이어 갔다.
천막 생활 불사한 국민 지킴이
사고 이후 참사 현장에서 스님이 처음 목격한 광경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사고가 휩쓸고 간 여파로 각종 파편이 공항 활주로 철책 밖 200m까지 떨어져 있었다.
사고는 랜딩기어 작동 오류로 동체 착륙한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하며 철근 콘크리트 소재의 둔덕형 로컬라이저에 부딪혀 폭발하면서 일어났다. 이 때문에 승객들은 벨트를 풀기도 전 착석 상태에서 기체로부터 무방비하게 튕겨 나갔다. 아수라장이었던 현장처럼 망자의 모습 또한 온전할 리 만무했다.
여러 조각으로 분리된 시신은 여기저기 흩어졌으며 절단된 시체 일부는 피로 뒤덮여 형체를 식별하기조차 어려웠다. 오죽하면 가족도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라 했겠는가.
스님은 “사고 현장엔 오직 탄식과 절규만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겠다고 달려왔건만 유족은 훼손된 시신을 마주했다. 이 같은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유가족 중에는 사고로 일가족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신 수습 현장도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스님에 따르면 육안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훼손된 시신 일부가 도착할 때마다 화장하고 장례가 치러졌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 상황에 따라 유족은 처음 치러진 장례식에서 슬픔을 모두 털어 내기도 전에 다른 시신 일부가 발견되면 또다시 화장하고 장례를 치러야 했다.
스님은 “사망자 전원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됐기 때문에 유가족은 두 번 세 번 네 번, 심지어는 다섯 번이나 고통스럽게 목 놓아 울어야 했다”고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장례로 등 떠밀려야 했던 유족들을 언급했다.
공항 내 합동분향소 공간이 마련되면서부터는 49재가 열리는 날까지 적게는 50일부터 많게는 100일간 현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스님은 피해 유가족이 겪는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기를 기도하며 이들에게 살을 맞대고 온 힘을 다해 살폈다.
“눈·비·강풍에도 천막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먹고 자고 하는 생활을 마다하지 않은 건 아무리 고통이 극심해도 유가족이 겪는 것에 비할 바냐. 이 사고로 무려 179명의 생명이 육체를 제대로 보전하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한탄하며 스님은 염불하며 망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었다.
이어 “더 이상 제2·제3의 이런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도 (아픔이 있다면)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진심이 피해의 근본 해결책
소중한 사람을 잃은 누군가의 슬픔에 정쟁이 개입되거나 진심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는 스님의 신념이자 바람이 어수선한 시국에 한 줄기 빛을 드리웠다. 이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없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하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런데 문제는 피해가 발생한 후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며 해결되지 못한 아픔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반복됐다는 점이다.
특히 무안국제공항 참사와 관련해서는 대통령 탄핵으로 현재 나라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됨에 따라 피해 복구의 공백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이로 인해 희생자와 유가족 보살핌은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다.
스님은 “이번 참사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은 다른 지역의 국제공항에 비해 공항 활주로 길이가 현격히 짧다”며 “불필요한 콘크리트 둔덕의 존재도 화를 키운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인 국토교통부를 비롯한 전라남도와 항공사에서 사고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의문이라며 “무안국제공항이 위치한 자리는 대표적인 철새 서식지로 평가받는 지역인 만큼 사고 원인 중 새 떼는 충분히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욱이 사고기는 연식이 오래된 노후 여객기였음에도 사고 발생 이전부터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국제노선 일정에 활용되는 등 무리하게 투입됐다는 사실을 인지했더라면 사고 예방이 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아울러 무안국제공항이 전 세계를 오가는 국제공항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봤다. 스님에 따르면 준비되지 않은 공항에 항공기를 운항한 한국공항공사도 마찬가지지만 시급하게 공항을 개시하도록 밀어붙인 더불어민주당과 전라남도에 더 큰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국제공항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한 공항을 개방하면서 자유롭게 하늘을 오가던 새의 활동 공간이 막혔다”며 “이는 돈을 벌기 위해 자연의 섭리에 역행하며 공항을 급하게 개방한 탓에 일어난, 인간의 오만한 욕심이 부른 폐해”라고 꼬집었다.
“지금이라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고를 막지 못한 책임자를 가려야 한다”며 단호한 입장을 표한 뒤 “사고 원인에 대해 정확한 분석하고 정부가 주축이 된 진상 규명을 통해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만이 유가족의 한을 풀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하루속히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며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공항 이용객과 유가족이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도록 사고 지점에 피해자들 이름이 새겨진 추모탑을 세우기 위해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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