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보다 ‘아메리카’… 아르헨티나·미국 사이 ‘FTA 싹’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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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이 “남미공동시장 탈퇴할 수도”… 주변국들 반발할 듯
트럼프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자주 보며 “훌륭한 지도자”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3-05 06:12:11

▲ 2025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재회한 하비에르 밀레이(왼쪽)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두 사람은 보수 인사로서 일찍부터 친분을 쌓아 온 사이다. 자유주의 경제학 신봉자인 밀레이가 라틴아메리카 정체성보다 트럼프의 미국과 함께 간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국과 아르헨티나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발신하면서, 미주 대륙 내 교역 질서에 새로운 긴장감과 기대를 부르고 있다.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 회원국인 아르헨티나가 미국과 개별적으로 무역협정 협상에 속도를 낼 경우, 남미 무역 지형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어 다른 회원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아르헨티나로선 중남미의 오랜 사회주의적 체질과 선을 긋고 ‘트럼프의 미국’과 함께 간다는 의지 재천명이며, 미국에겐 중남미 내 중국 세력 확장의 제어 의미 또한 커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대만 반도체업체 TSMC의 1000억 달러 대미투자 계획 발표 및 기자회견 자리를 가지며 미국과 아르헨티나간 FTA 협상 관련 질문에 “양국 FTA 체결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훌륭한 지도자”라고 칭찬했다. 자타공인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밀레이는 2023년 12월 취임 때부터 주요 공약으로 미국과의 FTA 체결을 내세웠다.

100년 전만 해도 소설 ‘엄마 찾아 삼천리’에서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가정부로 취업한 모친을 찾아간 우여곡절 감동 스토리 배경이 될 만큼 세계적 부국 아르헨티나였으나, 수십년 좌파 포퓰리즘과 군부독재 양극단을 오간 끝에 200%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사람 살 수 없는 곳이 됐다. 극도의 절망이 비(非)정치인 출신 경제전문가 괴짜 대통령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비혼주의자인 밀레이가 함께 사는 반려견들에게 유명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이름(머레이 로스버드·밀턴 프리드먼·로버트 루카스 등)을 붙인 점, 톱 퍼포먼스로 작은 정부를 위한 구조조정 투지를 강조한 점 등이 눈길을 끌어 왔다. 일찍부터 미국의 연례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자주 참석하며 트럼프와 친분을 쌓은 인물이기도 하다.

조 바이든 정부 시절엔 FTA 관련해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었으나 밀레이는 트럼프2기 정부 출범 전후 “트럼프 대통령(당선인)이 아르헨티나의 자유시장경제 전환을 돕고 각종 개혁을 지원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트럼프 정부와 밀착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양국 FTA 협상이 실제 진전을 보인다면 주변국의 반대가 이어질 수 있다. 메르코수르 정회원엔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 등이 있으며, 최근 볼리비아도 정회원국으로 합류해 최종 가입 절차를 밟고 있다고 메르코수르 사무국 홈페이지에 공지돼 있다.

브라질 매체 G1에 따르면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은 역외 타국과의 무역협정 체결을 엄격히 제한한 조항을 둔다. 우루과이가 중국과의 FTA를 타진하려다 브라질 등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작년 12월 메르코수르 모임에서 1999년 창설 이래 이어진 유럽연합(EU)과의 FTA 협상을 정회원국 만장일치로 합의하는 등 EU 수준의 거대 경제단일시장 출범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밀레이가 메르코수르 탈퇴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미국과의 FTA 협상에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참석 당시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미·아르헨 FTA를 제지한다면 메르코수르를 떠날 수 있다. 그 내부엔 (개별 협상) 메커니즘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메르코수르는 1991년 아르헨·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 4개국이 역내 시장을 통합하고 역외 시장 제품에 대해 공동 관세를 부과할 목적으로 창립한 남미경제공동체다. 물류·인력·자본의 자유로운 교환 및 움직임을 촉진하며 회원국과 준회원국 사이의 정치·경제 통합의 증진을 추구한다. 베네수엘라가 민주주의 정착, 교역조건 마련, 인권상황 개선 불이행 등을 이유로 2016년 12월 자격을 박탈 당해 정회원국은 현재 아르헨티나·브라질·라과이·우루과이 4개국뿐이다. 준회원국 7개국(칠레·페루·에콰도르·콜롬비아·수리남·가이아나) 외 옵서버국 멕시코가 있다. 베네수엘라 축출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 이래 역내 주도권을 둘러싼 브라질과의 경쟁 구도에 정치 지향까지 좌우로 갈린 정부들끼리 불가피한 충돌이었다고 해석된다.

1960년대 유럽의 경제공동체였던 EEC 성립에 자극받아 같은 해 중남미자유무역연합(LAFTA), 이듬해인 1961년 중미공동시장(CACTM)이 생겼으나, 참여국 간 경제적 마찰과 관세인하를 둘러싼 적절한 방법 창출에 실패하는 등 이견 충돌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안데스 지역 5개국이 LAFTA를 탈퇴해 1969년 안데스공동시장(ANCOM)을 결성한다. 1980년 중남미통합연합(LAIA) 때엔 이 중 브라질·아르헨티나가 별도로 양국 간 경제통합프로그램(ABEIP)을 마련해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모색했지만, 이 역시 양국의 경제정책 실패 및 외채 누적 증가 등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1990년대 냉전해체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페르난두 콜로르(브라질)·카를로스 사울 메넴(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1994년까지 양국 공동시장 구축에 합의하자, 이들 국가에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루과이·파라과이까지 가세해 1991년 3월 아순시온 협약을 통해 남미공동시장이 설립돼 그해 11월 운영에 들어갔다. 1994년 12월 정식 조인, 1995년 12월 공식 비준된 오루프레투 협약을 통해 남미공동시장이 출범했다. 1999년부터 회원국 간 90% 품목에 대해 무관세 무역을 시행 중이다. 밀레이의 메르코수르 탈퇴 여지 언급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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