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 후임 선출을 앞둔 가톨릭교회에서 교리를 우선시한 목소리가 커져 주목된다. 가톨릭 보수파의 지도적 존재인 게르하르트 뮐러(77) 추기경은 23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정통파 교황이 선출되지 않는다면 교회가 두 갈래로 쪼개질 우려”를 언급함으로써 몇몇 근본적 사안을 둘러싸고 심각한 대립이 있었음을 환기시켰다. 심지어 “보수·진보 싸움이 아니라 정통과 이단의 문제”라며 “매일 언론 반응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이단적 교황이 선출되면 재앙”이라고까지 말했다.
4세기 로마 가톨릭 성립 이래 1600년 기독교역사가 정통·이단의 대결 구도이기도 했기에 ‘이단’이란 대단히 무거운 단어다. 뮐러 추기경은 후임 교황이 세상의 박수갈채를 받고자 가톨릭교회를 인도주의 단체처럼 만들려 해선 안 된다며 “가톨릭 신앙이란 교황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게 아니라 성경·교리·전통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생전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겨냥한 발언으로 평가된다.
독일 출신인 뮐러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른바 개혁정책이 성경 가르침에 위배된다며 일찍부터 반기를 들었다. 바티칸 신앙교리부 수장이던 2017년 교황을 향해 ‘이단’ 운운하다 장관직에서 해임되기도 했으며, 특히 동성애 문제엔 1977년부터 목소리를 냈다. 동성애에 대해 “그리스도에 맞서는 죄” “신성모독” “창조주께서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판하는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뮐러 추기경은 이 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 공산당이 자체 임명한 주교를 승인하기로 한 것을 나치 독일 시절 아돌프 히틀러와 바티칸의 우호관계에 비유하며 “악마와 협정을 맺을 순 없다”고 단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 언론에 높은 평가를 받아 온 것을 들어 “추기경들이 언론 보도에 과도하게 휘둘려선 안 된다. 진리 안에서 교회를 통합할 인물을 선출해야 한다”고 짚었다. 개신교 및 자본주의 반감이 강할수록 가톨릭엔 상대적으로 호의적이기 마련이다.
보수 진영 목소리가 콘클라베에서 얼마나 반영될진 미지수다. 다만 가톨릭 신자 사이에서도 교리와 전통을 중시하는 흐름이 있다. 특히 미국의 가톨릭 신자 일부는 프란치스 교황에 대한 거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로저 스톤이 최근 엑스(X·옛 트위터)에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관련 언론 논조에 “역겹다”며 “올바른 교황이 아니다. 성경과 교리를 반복해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작년 대선에서 미국 가톨릭 신자의 58%가 낙태와 성(性)정체성 관련해 보수적인 정책을 내세운 공화당을 지지했다.
가장 핵심 사안은 역시 동성애다. 2021년에만 해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죄를 축복할 수 없다”며 동성커플 축복을 부정했었다. 가톨릭에서 ‘축복’이란 하느님이 선하게 봐주시길 사제가 간구하며 기도하는 예식이다. 하지만 2년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가 동성커플 축복에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 일부 국가 주교들이 사제들의 동성커플 축복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교황청의 입장은 불분명한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두드러진 것이다. 전 세계 주류 언론이 환호했다.
2023년 12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동성 커플이나 ‘변칙적’(irregular) 커플 축복을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당시 교황청은 축복이 교회의 정규 의식의 일부나 ‘사회적 결합’(Civil Union·결혼에 준하는 동거) 내지 결혼식과 관련돼선 안 된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교황의 목회 비전에 따라 죄악시되던 관계를 사제가 축복할 수 있도록 했으며 “축복 사전에 도덕적 완벽성을 요구받아선 안 된다”고 적시했었다.
이런 내용의 문서를 승인할 때 교황청은 이 결정이 “하느님께서 모든 이를 환영한다”는 사실의 표시가 돼야 하지만 사제들이 사안별로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성소수자에겐 반가운 진전이었으나 기독교 전체에 대단히 난감한 문제를 던졌다. 구약 성경을 경전으로 공유해 온 유대교·이슬람·기독교에선 불교·힌두교에서보다 동성애에 단호하다. 이 가운데 기독교, 그 중에서도 개신교가 더 강력하다. 종교개혁을 거치며 그런 신학적 교리로 발전한 것이다. 임신·출산의 불가능성을 치명적으로 보기에 동성애를 배척하는 유교문화권과도 차별된다.
인구 0.1% 정도 비율로 발생한다는 성소수자 존재에 대해 ‘생육·번성하지 못하기에’ 반기지 않는 것과 기독교처럼 ‘영적·육적 죄악’으로 여기는 것과 차이가 크다. 모계사회를 넘어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 이래 3000년을 통틀어 평균 수명이 마흔을 넘기 시작한 지 최근 200~250년 정도밖에 안 된다. 문명의 유지에 생육과 번식은 절대적인 필요 조건이었고 그것을 최적화할 종교·사상 제도가 자리잡았다.
남·녀 외에 무수하게 많은 성이 존재하며 개별 성 정체성은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젠더이데올로기와 정통 기독교는 공존이 어렵다. 백인 남성만 온전한 인간 대접을 받으며 유색인종이나 여성에게 동등한 존엄성과 법적 권리가 주어지는 과정의 우여곡절이나 갈등과도 다른 차원의 문제다. 유색인종과 여성의 권익 증진이 인류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한 반면, 생물학적 성별의 부정에 기반한 젠더이데올로기는 그런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인구 감소 또한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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