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불황이 지속될수록 점집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과거 점집은 사주를 보는 곳이 주를 이뤘으나 점을 보는 젊은 인구가 늘어나면서 타로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타로·사주 전문점 ⓒ스카이데일리
“타로점도 결국 미신이잖아. 난 그런 상술엔 안 넘어가”
기자는 오랜만에 친구 A, B와 함께 강남역을 찾았다. 소개팅을 앞둔 A가 타로점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B가 ‘타로점’의 신뢰도를 문제 삼아 A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면서 설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설전은 타로점 복채를 모두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선언한 A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결국 세 명은 가까운 타로점집을 찾았다.
A는 이번 크리스마스는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점괘를 받았다. A와 설전을 벌였던 B는 내년에 원하던 대기업에 이직할 수 있다는 점괘를 받자 마치 합격한 것처럼 좋아했다. 상술에 넘어가지 않겠다던 다짐과는 사뭇 달랐다.
그림카드 78장의 위안…젊은 사람들은 왜 타로를 보는가
타로점은 78장의 타로카드 중에서 무작위로 뽑은 카드로 점괘를 내는 서양의 점술이다. 타로의 운세 주기는 3개월에서 길어야 1년이다. 인생 전반을 보는 사주에 비해 운세 주기가 짧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 이상 자주 보는 마니아도 있다.
강남역 인근에서는 타로카페와 타로점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자는 관련 리뷰만 550여건에 이르는 S타로를 찾았다. 평일 정오임에도 불구하고 매장에는 손님들이 많았다. 타로 점괘를 봐주는 타로마스터는 총 4명이 있었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매장 관계자는 “특정 타로마스터를 지명하는 단골도 많다”며 “평일·주말 상관없이 고객은 꾸준한 편”이라 전했다.
10분정도 기다린 후에야 타로점을 보기 위한 테이블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간단한 질문은 1건당 5000원, 자세한 질문은 1건당 1만원을 내야했다.
S타로에서는 연애운, 재물운, 건강운, 궁합 등을 타로 혹은 사주로 볼 수 있다. 기자는 작년부터 사이가 소원해진 고등학교 동창과의 인연에 대해 물었다.
자주색 벨벳 위로 78장의 타로카드가 가지런하게 펼쳐졌다. 타로 세트는 드라마 ‘겨울연가’에도 등장한 가장 대표적인 ‘유니버셜 웨이트’였다. 기자가 뽑은 총 10장의 카드를 타로마스터가 순서에 맞춰 배열했다.
타로마스터는 “멀리 떨어져있어도 함께한 세월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끊어질 인연은 아니고 아직은 그 친구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소식을 듣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연락을 한다면 받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혼자서 답답하게 고민했던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줬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기자는 친구에게 다시 연락할 용기가 생겼다. 타로가 신빙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기자가 쉽게 결정짓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도움을 줬다.
▲ 강남역 인근에서는 각종 점술 전문점 및 노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미래가 불확실한 사회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주로 이곳에서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고 있다. 사진은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타로·사주 전문점들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내년 발렌타인데이에는 정말로 1년간 짝사랑하던 오빠에게 고백할 거예요”
그 날 타로점집을 찾은 김지혜(21·여)씨는 한 번도 연애를 해 본적 없는 속칭 모태솔로다. 친한 언니의 권유로 재미삼아 타로점을 보러 왔다. 내년에는 인연이 생길지 궁금했던 지혜씨는 타로마스터에게 내년 2월에 결실이 생길 것이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용기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는 “사실 전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백에 실패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며 “이번 타로점을 계기로 길고긴 짝사랑에 어떤 형태로든 종지부를 찍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김씨에게 타로점을 추천한 사람은 김혜수(23·여)씨다. 혜수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타로점을 접했다. 당시 그녀는 긍정적인 점괘를 받았고, 수능 때까지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혜수씨는 힘들 때면 타로점을 봤다.
벌써 4년째 타로점을 보는 혜수씨. 점괘가 항상 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타로를 끊을 수 없었다. 그는 “정확하게 미래를 맞추는 타로마스터보다는 정신적으로 용기를 주는 리더를 계속 찾게 된다”며 타로의 치유 효과를 강조했다.
유진희(28·여)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 3년차로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합격운을 알기 위해 S타로를 방문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는 “수험기간이 길어져 이제는 부모님도 예전처럼 응원하진 않는다”며 “타로를 통해서라도 ‘넌 분명히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S타로를 찾은 손님은 기자를 포함해 전부 여자였다. 그것도 젊은 여자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고민이 있었고 고민 해결을 위해 타로를 봤다. 그리고 타로마스터들은 점괘를 통해 고민을 해결해줬다. 기자는 ‘타로점이 비싼 치료비를 내고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 타로점은 78장의 타로카드로 구성된다. 손님이 카드를 랜덤으로 뽑으면 타로마스터가 카드의 내용을 해석해준다. 적중률은 타로마스터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많다. 일반적으로 고객들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보다 마음의 위안을 주는 마스터를 선호한다. ⓒ스카이데일리
두루뭉술하지만 인생의 가이드라인 제시해주는 사주
다음으로 대표적인 동양점술인 사주를 보기 위해 강남에 있는 ‘F사주카페’를 찾았다. 역술전문가에게 기자의 생년월일시를 알려줬다. 이를 통해 전문가는 전체적인 운명과 더불어 신년 운세를 풀이했다. 사주풀이 복채는 1인당 3만원이고 커플 궁합은 6만원이었다.
전문가는 재물운부터 사랑운까지 다양한 운세를 알려줬다. 운세풀이는 다양했지만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기자의 운세풀이 내용은 이랬다. 건강운은 별로였다. 큰 사고는 없지만 자잘한 질병이 계속되기 때문에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재물운 조금 희망이 보였다. 올해 말까지 지출이 계속되다가 내년 상반기부터 조금씩 돈이 모일 수 있겠단다. 인간관계운 역시 괜찮았다. 향후 앞날을 밝혀줄 귀인을 만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것을 충고받았다. 종합하면 올해는 모든 악운을 끌어안는 해이며 내년에는 재물, 사랑, 직업운 등이 트이는 해란 것이다.
꼭 기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해도 될 정도로 일반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내년 운세가 대박일지 쪽박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전문가의 말을 믿으면 최소한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는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점을 통해서 설렘으로 치환된다.
경력 8년의 역술전문가 재아(가명)는 “타로·사주가 대중화되면서 재미삼아 연인간의 궁합운을 보러오는 젊은이들도 많다”며 “하지만 점을 보는 본질적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불황이 지속될수록 그 불안을 해소하고자 점집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군가는 타로나 사주 모두 단순한 상술일 뿐이라며 비판한다. 하지만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점이란 단순한 미신이 아니다. 점을 보는 시간만큼은 잠시나마 모든 고민을 내려놓고 행복한 미래를 꿈 꿀 수 있다. 점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지지대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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