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한코로나) 사태에 따른 피해 극복을 위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편성돼 국회가 심의에 착수한 가운데 정부를 향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감염확장 통제에 힘을 쏟아야 할 시점에 소비 등 경제활력 제고를 노린 추경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외출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황서 소비쿠폰 지급 같은 대책이 담긴 추경안은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추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10조3000억원 규모의 적자국채가 발행될 예정이다. 이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대를 넘어서고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그 결과 세금인상 등 국민적 부담이 커지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피해규모·지원대상 파악 후 추경이 순서… “국고 소비 시기 너무 이르다” 비판 이어져
정부가 내놓은 추경안의 액수는 총 11조7000억원 규모로 과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극복을 위해 편성된 추경 규모(11조6000억원)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번 추경은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한 세입 경정분 3조2000억원과 세출 확대분 8조5000억원으로 구성됐다.
세출 확대분 8조5000억원은 △방역체계 보강 및 고도화(2조3000억원) △우한코로나 피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회복 지원(2조4000억원) △민생과 고용안정 지원(3조원)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 지원(8000억원)에 쓰일 예정이다. 경제활력 제고에 무게를 둔 추경안으로 해석된다.
1분기에 추경이 편성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경우를 포함해 1분기에 추경이 편성된 건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8년과 199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등 4차례에 불과하다. 굵직한 경제위기가 발생했던 시기로 한정된다.
그만큼 우한코로나 사태가 한국 경제에 주는 피해가 크다는 의미이긴 하다. 우한코로나 사태 발생 후 세계 주요 경제기관들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모건스탠리와 노무라증권 등은 최악의 경우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대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우한코로나 확산으로 우리나라의 경기 전반이 위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해도 추경 집행 시기가 지나치게 빠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예비비 집행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추경이 집행되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또 정확한 피해액이 산출되지 않은 시점에서 국고부터 소비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추경 집행 전에 사태에 따른 피해액을 산출하고 어느 계층과 집단 등에 어느 정도의 지원이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다”며 “이후 예비비를 통해 우선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그 후에 필요하다면 추경 집행을 검토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국고부터 소비하겠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우한코로나의 감염확산 통제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시점에 경기부양에 무게를 둔 추경안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한코로나 사태 확산으로 국민들이 소비에 소극적인데다 설령 소비를 한다고 해도 되레 사태를 키우는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경기부양 정책은 사태가 진정된 후가 적절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심의와 집행을 재촉한다. 심지어 규모도 더 키우고 싶어한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이 추경을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은 4 ·15총선 때문이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추경안을 살펴보면 예산 대부분이 경기부양에 쓰이는 데 이는 우한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후에 집행해야 한다”며 “감염확산 통제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현 시점에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으로선 자영업자, 관광업 종사자, 교육업 종사자 등 피해가 큰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원 형식으로 자금이 투입되면 지출 규모를 크게 늘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는 이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11.7조 추경은 빚,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 40% 초과… "결국엔 국민 호주머니 털어 갚아야"
시민들도 정부의 추경에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추경으로 지원되는 부분들이 체감되는 피해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소비 부양책에 비판이 집중된다. 일례로 정부가 추경을 통해 저소득층과 노인, 아동 등 500만명에게 4개월간 총 2조원 상당의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한 것을 거론하기도 한다. 외출 자체가 두려운 상황에서 소비 부양책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얘기다.
서울 강남 일대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소희 씨(27·여·가명)는 “코로나 사태로 우리 매장뿐 아니라 인근 매장들의 평균 매출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매출이 안 나오니 단축근무를 하는 매장들이 늘고 있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게 돼 여러 가지로 피해가 커지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대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이 밖에 나오질 않아 장사가 안 되는 건데 소비쿠폰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소비쿠폰보다 확실한 마스크 지급 등을 통해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게 소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대구 소재 경북대에 재학 중인 배종석 씨(29·가명)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코로나 사태 확산 후 대구는 마치 무인도 같은 상황이다”며 “외출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하다보니 외출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고 주위 가게들은 다 문을 닫은 상황이다”고 전했다.
그는 “돈을 쥐어줘도 쓸 곳이 없는 상황인데 소비 부양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지금 대구에 필요한 건 감염에 대한 불안감 해소이지 소비쿠폰이 아니다”고 말했다.
추경 집행이 국민의 부담을 키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편성하면서 10조3000억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적자국채가 발행되면 나라빚으로 해석되는 국가채무 규모는 올해 815조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당초 정부는 올해 국가채무 규모를 805조2000억원으로 내다봤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대를 넘어서게 된다.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국가채무 규모가 805조2000억원일 경우 국가채무 비율은 39.8%가 된다. 그러나 이번 추경으로 국가채무 비율은 1.4%p 상승해 41.2%에 달할 전망이다. 그간 재정당국이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던 40%선을 넘어서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의 순(純)재정상황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82조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GDP 대비 비율은 -4.1%까지 악화된다. 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4.7%) 이후 가장 나쁜 수준이다.
직장인 김승연 씨(30)는 “코로나 사태로 추경을 집행하며 10조원대 국채를 발행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다소 놀랐다”며 “경기가 워낙 어려워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곤 하나 개인적으론 명확한 근거나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세금을 쓰고 국가 빚을 늘린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안 그래도 경기가 어려워 여러 가지로 힘든데 추경 집행에 따라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 된다”며 “추경과 국채가 결국엔 국민들의 세금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은데 부담을 지는 국민들에게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는 데 소홀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추경 집행에 따라 국민 부담이 늘어날 수 있고, 경기 활력을 제고해야 할 추경이 되레 민간소비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정부 재정이 보다 효과적인 부분에 사용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교수는 “국가채무 비율이 높다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너무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로 지목된다”며 "국민들로선 국가채무를 결국 세금으로 충당할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지며 법인세가 안 걷히는 상황과도 마주했다”면서 “결국 개인과 관련된 세금을 많이 걷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국민 사이에 퍼질 수 있고, 이는 곧 민간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추경하기 전에도 정부 부채 증가에 걱정스런 목소리가 많이 나왔는데 이번 추경으로 그런 걱정이 더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늘어난 부채에다 이자 문제까지 고려하면 국민들로선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어려움과 마주할 수 있는데, 좀 더 효과적인 부분에 정부 재정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주현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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