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약과를 만들고 있는데 맛은 괜찮아요. 재정적인 부분이 열악하니까 좀 더 좋은 상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죠. 북한 음식을 좀 더 잘 만들어서 한국을 상징하는 상품으로 만들었으면 해요. 남한 음식은 탕 종류가 기본이기에 외국인들이 접할 때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북한 음식은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독일식 돼지족발인 ‘학센’에 북한식 요리법을 접목해서 간장에 졸인 ‘코리아학센’을 만들었더니 독일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이탈리아의 파스타, 중국의 마라탕 등 많은 외국 음식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작 같은 민족이 만든 북한 음식들은 아직 사람들에게 생소한 게 현실이다. 거대자본이 동원된 마케팅 전쟁에서 경쟁력이 낮아 홍보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지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도 이유로 꼽힌다.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연구원)은 북한 음식의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는 대표적인 단체다. 평양 출신으로 ‘탈북박사 1호’라는 타이틀로 각종 매체에 출연해 유명한 이애란 대표(56)가 2015년 설립한 연구원은 ‘평양온반’ 등 북한 음식 연구에 매진하는 것은 물론 ‘통일약과’나 ‘코리아학센’ 등 새로운 메뉴도 개발해 북한 음식의 세계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 북한 전통 음식점 ‘능라밥상’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직접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스카이데일리는 서울 종로구 능라밥상을 찾아 이 대표와 임직원들로부터 북한 음식 소개에서부터 대중화를 위한 향후 계획까지 듣기로 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손님들로 매장이 붐비는 와중에도 직원들과 이 대표는 특유의 유쾌한 미소로 기자 일행을 흔쾌히 맞이했다.
“엄마 밥 같은 음식을 만든다는 의무감으로 오늘도 일해요”
“탈북여성들이 모여서 밥 먹고 살기 위한 곳이에요. 자활공동체인 셈이죠. 한국 음식에 도전하려면 벽이 너무 높아서 저희들이 먹었던 북한 음식 중에서 괜찮은 것들을 골라서 연구하고 있어요. 한국 음식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이게 무슨 한국 음식이냐 할 것 같아서죠.”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가식이나 과장 없이 담백한 태도로 대답하는 이 대표는 자극적인 양념이 거의 없는 북한 음식과도 비슷해보였다. 오랜 기간 북한 음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 맛이 마음에도 밴 것일까.
연구원 설립 계기를 묻자 이 대표는 “사기를 당했었기 때문이다”고 솔직히 밝혔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행을 준비하다가 일을 당하는 바람에 채무를 갚기 위해 연구원을 만들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운영 과정에서 탈북여성들의 ‘밥 먹고 살기 위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고 했다.
“설립 계기는 특별한 건 없어요. 제가 이화여대에서 2009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취직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미국에 가려고 준비하다가 본의 아니게 사기를 좀 당하게 됐죠. 제 돈은 아니고 연구비였는데 그걸 빼앗으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어요. 그 돈을 찾는 과정에서 연구원을 만들게 됐고 탈북민들 직업(요리)교육도 하게 됐는데 그게 사실 재정적으로 너무 어려웠어요. 유지가 돼야 하는데 말이죠. 준비를 하던 중에는 H자동차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탈북민을 교육시키긴 했는데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다 같이 일하자’ 하게 됐죠. 교육받으러 왔다가 취직한 직원도 있고 다른 데서 일하다 온 직원도 있어요.”
이 대표 말을 듣고 있자니 이곳 연구원의 직원들이 어떤 계기로 근무하게 됐는지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침 김현송 씨(가명)가 손님이 다소 뜸해졌을 때 가까이에 있어 이 대표의 동의를 얻어 그를 앉히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노사갈등이 극심한 세상이지만 적어도 연구원에서만큼은 노사가 일심동체인 것일까, 김 씨의 태도도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솔직담백했다.
“오빠가 먼저 탈북해서 정착하고 저도 나중에 그 쪽(북한)보다는 여기가 자유가 있으니까 가야겠다고 해서 오빠 도움으로 탈북했어요.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는 비슷한 동네에서 사니까 알음알음 온 직원도 있고, 여기 교육받으러 왔다가 취직한 경우도 있어요. 저는 무슨 사명감은 없었어요.”
시원시원한 인상의 김 씨는 말로는 사명감이 없다고 했지만 시종 친절한 태도로 손님을 맞는 그의 모습에서 기자는 연구원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연구원을 찾는 이들에게 북한 음식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추천할만한 북한 음식을 묻자 “다 대표적이다. 대표적이지 않은 게 없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실제로 매장에서 직접 확인한 메뉴판에는 기자가 북한 관련 취재를 하던 시절 팔도에서 모인 탈북민들과 먹었던 음식이 전부 있었다. 점심 때라 시장기가 느껴지던 터에 메뉴판을 보고 군침을 삼키는 기자의 심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이 대표는 연구원이 만든 북한 음식들을 상세히 소개했다.
“다 북한에 있는 음식이에요. 해주 사람들은 해주비빔밥을 너무 좋아하죠. 평양에서 오셔서 목사님으로 있는 분은 평양온반을 드시고는 엄마 밥 같다고 하면서 자주 오시곤 해요. 함경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순대와 만두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평안도 사람들은 감자만두라는 음식을 모르고 함경도 살았던 사람들은 온반을 못 먹어요. 입맛이 다르니까요.”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북한에서도 지역별로 입맛에 차이가 있다고 이 대표는 밝혔다. 그는 흥미를 갖고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기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듯 비지 요리법까지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돼비지밥’은 기자에게도 생소한 음식이었다.
“비지는 황해도식으로 만들었어요. 함경도에서는 비지를 한국처럼 고춧가루를 넣고 빨갛게 만들죠. 평안도에서는 비지와 돼지등뼈, 채소, 배추를 넣고 하얗게 끓여요. 평안도하고 황해도하고 비슷하게 먹죠. 황해도는 밥을 말아서 먹는 ‘돼비지밥’이란 게 있는데 유명해요. 황해도 특산이라고 할 수 있죠. 돼지등뼈와 비지를 넣고 끓여서 밥을 섞어 먹는 방식이에요. 비지에 간은 안 하고요. 비지가 삭지 말라고 채소를 미리 볶아서 비지가 끓어오를 때 넘치지 않게 탁탁 넣는 게 비결이죠. 비지가 삭지 않게 해야 맛있는 비지라고 생각해요.”
이 대표는 남북 음식의 차이점을 묻자 단호히 “그런 건 없다”고 대답했다. 지리적 특성이나 기후, 식재료 등에 따라 지역별로 차이점이 있을 뿐 “북한 음식은 이렇다”고 특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김치를 예로 들어도 한국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남북 음식에 차이점은 없어요. 지역마다 다를 뿐이죠. 가령 함경도 사람들은 온반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 것이죠. 동해안과 서해안은 양념에 차이가 있어요. 동해안은 생선이 크니까 고춧가루를 많이 쓰고 서해안 쪽은 생선이 작으니까 고춧가루를 덜 쓰는 식이죠. 또 평안도 음식은 고춧가루를 잘 안 쓰고, 함경도 음식은 빨갛게 하는 편이에요. 지리적 특성이나 기후·식재료에 따라 음식이 달라지는 거죠.”
“외국인 여행코스로 꼽혔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죠”
연구원은 해외에서도 유명하다고 했다. 서울을 찾는 각국의 여행자들에게 여행코스로 알려질 정도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특히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분단의 설움을 겪었던 독일인들이 연구원을 많이 찾는다고 했다. ‘코리아학센’이라는 신메뉴를 만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다양한 분이 방문하고 있어요. 북한이 고향이었던 실향민이나 실향민 2, 3세 분들도 많이 찾으시죠. 외국인들도 많이 와요. 특히 독일 사람들은 한 달에 두 팀 정도는 반드시 오고 있어요. 여기가 여행코스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독일음식인 학센을 응용한 코리아학센을 만들었는데 독일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통일에 대해서 관심도 갖고요. 그 외에 일본·미국 사람들도 많이 오고 홍콩 분들도 가끔 오세요. 일본 손님들은 감자만두나 녹두전을 좋아하는 편이예요.”
이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별로 없다”고 밝혔다. 반면 어려웠던 순간에 대해서는 마치 매 시절이 기억에 떠오르기라도 한 듯 열변을 토했다. 특히 최저임금 부분에서는 현 정부에 대해 큰 아쉬움을 표했다.
“자리 잡을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재정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많았죠. 수익을 내야 하는데 견디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근래 정착한)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서툴고 직업윤리 같은 것도 많이 달라서 어려움이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세금도 너무 많이 떼 가는 게 문제예요. 월세라든지 재정적인 어려움이 커요. 다른 거야 재료도 다 있고 열심히 하면 되는데 제발 정부가 우리를 괴롭히지 말았으면 해요.”
이 대표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근래 탈북민단체들에 대한 통일부의 법인취소, 사무조사 등이 떠올랐다. 연구원은 정치적 활동과는 거리가 먼 단체이지만 그래도 혹 불똥이 튀지는 않았는지 염려됐다. 이 대표의 대답은 “우리는 계속 탄압받았는데 더 탄압받을지 안 받을지 모르겠어요. 쭉 탄압받고 살았으니까”였다.
일순간 무거워진 분위기도 반전시킬 겸 기자는 이 대표에게 향후 통일을 맞게 될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물었다. 그는 앞선 질문에서 못다 한 말을 하고 싶기라도 한 듯 자세를 고쳐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통일은 저절로 오는 건 아니고 누군가의 노력으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 건국 세대가 있다면 산업화 세대가 있고 후발주자인 민주화 세대가 있죠. 민주화 세대가 요즘 기득권을 누리면서 우리를 괴롭히는데 통일 세대가 등장하게 되면 더 넓어진 한반도에서, 더 넓어진 시장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젊은이가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통일은 안 좋은 것이라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통일은 자유를 확산시키는 것이고 여기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요. 북한 주민들은 자유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죠. 젊은 세대가 통일에 관심을 많이 갖고 또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저 곳에 자유를 선물할까 고민했으면 해요.”
[오주한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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