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20대 청년 배우들이 모였다. 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애환과 고통에 공감하며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을 전액 기부한다. 정작 배우들 손에 쥐어지는 수익은 없다. 그러나 이들은 밝게 웃는다. 배우라는 직업의 작은 천사들이 모인 자선 공연 단체 ‘인연극단’의 이야기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가을, 인연극단 단원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있는 마당세실 소극장을 찾았다. 지하에 있는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배우들은 취재진이 온 줄도 모른 채 연습에 한창이었다. 기자일행은 극장 내부와 연습 중인 배우들을 잠시 바라봤다.
울퉁불퉁한 극장 벽면은 검정색 페인트로 덧대어 칠해져 있었고 조명이나 공연 장비들은 한눈에 봐도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에 임하는 배우들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감독의 지시는 엄격했다. 이윽고 취재진을 발견한 이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공연 연습으로 목이 탔는지 생수를 들이켰다.
상처라는 가시… 그 안에 자란 소중한 꽃망울들이 만들어 가는 ‘인연’
‘인연극단’은 소외 계층과 가난으로 힘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자선 공연 단체다.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 전부를 기부한다. 공연료도 ‘감동후불제’다. 감동후불제란 공연 관람 후 감동을 받은 만큼 관람료를 내는 것으로 관객의 선택으로 이뤄진다. 인연극단은 창단한 지 2년이 채 안 됐음에도 봉사활동과 기부 횟수를 합치면 20번이 넘는다.
먼저 인연극단 소속 배우들의 사진을 찍었다. 극장 무대에서 사진기자의 카메라 앞에선 그들은 배우임에도 “어떻게 찍을까”라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영락없이 순수한 20대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배우들은 어머니의 폐암 투병, 뇌종양, 미혼모의 딸 등 제각기 다른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가 현재 폐암으로 투병 중이라고 밝힌 박건우 씨(22)와 대화를 나눴다. 박 씨에게 배우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지를 물었다. 간단한 인터뷰일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마음속에 담긴 깊은 상처와 소망을 드러냈다. 박 씨의 사연을 들으며 숙연해진 기자에게 그는 웃으면서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소망을 전했다.
“고등학생 때 친구를 따라 엑스트라를 했어요. 단순히 배우가 멋있다고 생각한 것이 배우가 된 계기예요. 그 후 우연히 인연극단에 합류해 연기 생활을 하다가 어머니가 폐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머니가 투병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인지 남이 힘들어하면 제가 더 가슴이 아파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바라는 점은 누군가 내가 했던 대사들로 조금이나마 치유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배우로서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정진하고 있어요.”
다음으로 뇌종양을 앓았다는 정유진 씨(23·여)와 대화를 나눴다. 정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뇌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원래 알고 있던 단어도, 사물의 이름도 잊을 정도로 심각했던 과거를 딛고 다시 일어난 그녀는 마치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담담한 어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급식실에서 경기를 일으켰어요. 병원에 갔더니 뇌종양이라고 하더라고요. 불행 중 다행히 양성 판정이 나와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부터는 말이 잘 안 나왔고 글씨도 못 쓰는 지경이었어요. 원래 알고 있던 단어도 사물의 이름도 모를 정도로 심각했죠.”
“의사가 수술한 부위가 언어와 행동을 담당하는 부분이라서 계속 쓰고 듣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해서 계속 연습했어요. 어릴 때 춤추는 걸 좋아했는데 아프고 나서 우연히 연기학원에 가 즉흥연기를 해봤어요. 주변 사람들이 제 연기에 반응하고 웃어주니 행복했어요. 그때 느낀 감정으로 연기를 시작한 것이 배우로서의 출발점이에요. 아팠던 경험이 있기에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연기를 통해 다가가고 싶어요.”
어머니의 폐암 투병과 뇌종양.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경험을 가진 이들은 인터뷰 내내 자신의 슬픔을 강조하기보다 상처가 있는 이들에게 배우로서 다가가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다. 아름다운 외모 뒤에 자리한 이들의 상처는 역설적이게도 현재를 힘들게 살고 있는 다른 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상처가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자신이 ‘미혼모의 딸’이라고 밝힌 강예림 씨(22·여)와 대화를 나눴다. 강 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예고 재학 시절 지금의 김순태 인연극단 대표를 담임교사로 만나 아버지의 따스함을 느꼈다고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현재 ‘모’라는 작품에서 미혼모의 딸 역할을 맡으며 사회가 미혼모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변화를 촉구했다.
“예고에 입학하고 만난 첫 스승이 지금의 인연극단 김순태 대표님이에요. 당시 김 대표님이 담임교사였죠. 수업 중에 시를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쓴 시를 김 대표님께서 보시고 외로운 마음을 알아보셨는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제게 아버지처럼 하나하나 챙겨주셨어요. 이후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교사를 그만 두신 김 대표님이 인연극단을 창단해 자선 공연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조연출로 참여한 것이 극단과의 인연이죠.”
“지금 진행하고 있는 ‘모’라는 작품은 김 대표님께서 제 현실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미혼모에 대한 내용이에요. 이 작품에서 미혼모의 딸 역할을 맡았어요. 연기를 통해 느낀 점은 가족구성원이 3명부터가 아니라 2명부터라도 괜찮다는 거예요. 연기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세상이 미혼모가 아닌 ‘엄마’라고 불렀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저 엄마의 딸이에요. 이번 작품에 혹여 그런 ‘엄마’ 관객이 오신다면 그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위로해드리고 싶어요.”
인연극단의 배우들은 웃다 울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기자가 본 그들은 마치 험난한 사회라는 가시 속에 핀 장미의 꽃망울처럼 소중하게 빛났다. 각기 다른 개인이 배우로 만난 인연은 소외 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손길이 돼 “남에서 점 하나만 배면 ‘님’이 됩니다!”라고 외치며 또 다른 인연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작은 씨앗이 되길 바라요”… 인연극단 대표의 진심
배우들의 속사정 하나하나를 묵묵히 듣고 있던 김순태 인연극단 대표와의 인터뷰를 이어갔다. 김 대표는 인연극단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는 배우들을 ‘우리 아이들’이라 칭했다. 그에게 배우들이 어떤 자세로 연기에 임하도록 조언하는지 물었다.
“인연극단의 아이들(배우들)은 제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제일 작은 씨앗들’이에요. 아이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커요. 그래서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요. 연기할 때 서 있는 무대와 스포트라이트 아래 그 순간만큼은 가장 빛나는 배우가 되도록 코칭해요.”
인터뷰 내내 기자에게 본인의 이야기보다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 대표의 배우 사랑은 각별해보였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분명 존재했다. 낡은 공연 장비와 열악한 환경에서 극단 운영이 제대로 되는지 궁금했다.
“사실 저희는 저희들끼리 월 1만원씩 회비를 걷어서 극단을 운영해요. 그 금액으로 어떻게든 작품을 만들어요. 어린 배우들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감당해요.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새벽 1시에라도 연습해요. 극단 환경이나 장비는 열악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죠.”
“저희 극단은 예산이 따로 운용되지 않아요. 지원금을 자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어쩌다 지원금을 받아도 모두 공연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받은 수익 전액을 기부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수입구조가 형성돼 있지 않고요. 그래서 어린 배우들이 항상 무보수로 공연을 하고 있어요. 그런 점이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해요.”
이처럼 어렵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인연극단은 자발적으로 회비를 걷고 공연을 만들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열정’이라는 단어로 모두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김 대표에게 왜 이토록 어려움을 감내하면서까지 사회봉사를 하는지 물었다.
“인연극단이 지난해 11월 창단하고 처음 시작한 사회봉사활동이 ‘연탄기부’예요. 이후 ‘그 때 거기, 그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한 요양원에 기부를 한 적이 있어요. 사실 제 외삼촌이 그 요양원에 계시는데 아는 사람이 있는 곳에 기부를 한다는 자체가 안 좋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단원들과 회의를 했지만 모두 괜찮다고 동의를 해줘서 그곳에 기부를 했죠.”
“어릴 때 외삼촌을 미워했어요. 삼촌이 척추마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 대소변도 못 가렸죠. 그런 상황이 너무 싫어 삼촌께 몹쓸 말도 많이 했어요. 그때 삼촌을 향한 죄송함이 켜켜이 쌓여 있다가 22년 만에 ‘기부’라는 명분으로 다시 찾아뵙게 됐죠. 저는 사회봉사를 통해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훗날 어떻게 죽을지를 선택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것이 아닌 어떻게 죽을지를 선택하며 산다.’ 이 말을 하고 난 김 대표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배우들도 그의 눈물을 처음 보는지 당황한 기색이었다. 진정된 김 대표에게 향후 포부를 물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았지만 꿈을 말하는 순간 연습을 지휘하던 좀 전의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왔다.
“개인적으로는 폐교를 하나 매입해 순수 예술가들을 육성하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한국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할 줄 알아야 하지만 외국에서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은 가난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기 어려운 나라예요.”
“또 극단의 대표 입장으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사회봉사나 기부를 통해 남을 돕는 것도 좋지만 우리 아이들이 연기를 통해 스스로 치유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대학로에서 작은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적은 기부를 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더욱 영향력 있는 단체에서 우리 인연극단을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무료 공연이라도 좋으니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김찬주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