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많은 청년이 고금리의 빚으로 고통 받고 있어요.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빈곤의 굴레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희년함께’는 성경의 희년정신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를 해결하고자 자조금융·대안금융활동인 희년은행을 설립·운영해 무이자 저축운동을 시작으로 다양한 풀뿌리 실천운동을 전개하고 있어요”
취업문이 좁아지고 천정부지로 집값이 치솟으면서 흙수저, N포세대, 헬조선 등 청년들의 자조 섞인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빚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보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찾아가도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해 고금리 불법 대부업체를 찾아가는 게 현실이다.
기독교 비정부기구 ‘희년함께’는 ‘희년’에 담긴 부채탕감 정신을 오늘날 적용한 희년은행을 설립해 고금리부채, 주거빈곤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지원하고 있다. 희년(jubilee)이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공포되는 안식의 해를 뜻한다. 구약성서에는 희년이 되면 노예를 해방하고, 토지를 원 주인에게 반환하고 빚을 탕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희년함께의 대안금융 활동 과정과 성과 등을 듣고자 서울시 중구 퇴계로에 소재한 희년평화빌딩을 찾았다. ‘두 개의 세상, 공유와 독점’이라는 부동산 보드게임 출시 준비로 바쁜 이성영 토지정의팀장과 김덕영 사무처장 등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희년정신 입각한 청년 부채탕감운동
1984년에 설립된 희년함께는 30년 동안 토지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정책운동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희년정신의 확산을 위해 다양한 참여와 실천운동이 필요하다고 인식해 2014년부터 부채탕감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부의 불평등은 금융문제와 결합해 더욱 가속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민간 부채 비율이 엄청 높아졌어요. 그 중에서도 청년들의 부채 비율과 신용도 문제는 심각하죠. 어떻게 하면 희년정신에 입각해서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긴 고민 끝에 무이자 저축으로 자본을 모아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재무상담을 해주고 무이자로 전환대출 해주자는 아이디어가 도출됐죠. 또 보증금 500만원도 구하기 어려운 청년들한테 주거지원 대출을 해주고자 대안금융 활동을 시작했어요.”
희년함께의 대안금융활동은 처음부터 기획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청년 부채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 발족한 ‘청춘희년운동본부’ 활동을 하다가 고금리대출에 묶여 있는 한 청년을 만나게 되면서 구체화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채문제가 청년들의 주거문제, 심리문제, 사회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후 희년함께는 부채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작은 힘을 모아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희년함께는 2016년 4월 29일 대안금융단체 희년은행을 출범시켰다.
“부채탕감운동을 하면서 39%짜리 미소금융 부채를 가진 청년을 만났어요. 부채가 400만원이었죠. 당시 저희는 프로젝트 차원에서 모금한 뒤 청년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서 400만원 중에 거의 절반을 탕감해줬는데 여전히 280만원 정도 남아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죠. 매년 법정최고금리가 떨어져도 소급적용이 안 되니까 계속 대출금리 39%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청년의 사례를 기독교 실천 운동 자리에서 보여주니까 한 교회 장로님이 후원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주셨어요. 그냥 돈을 주는 것은 자활 의지를 꺾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무이자 전환 대출로 해준다고 했죠. 그 친구를 재무상담 해주고 후원자의 돈으로 전환대출을 해주니까 이자로만 15만원을 내다가 상환이 되기 시작했어요. 이 사례를 접하면서 선한 의지를 모아서 청년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희년함께가 대안금융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참고한 모델은 스웨덴의 야크(JAK)은행이다. 1965년에 출범한 야크은행은 조합원들의 저축으로 기금을 조성해 다시 조합원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하는 협동조합은행이다. 이 은행은 1993년에 스웨덴 정부로부터 정식 은행 인가를 받은 뒤 사회적 기업·비영리단체에도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희년함께는 무이자저축을 통한 자본의 형성과 자본 흐름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크은행을 참고해서 시작한 희년은행에서 4년 동안 현재 조합원 550명과 출자금 5억원이 모였어요. 자본이 규모화되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죠. 여기서 토대를 구축해서 다음 단계로 함께 사는 대안 주거 모델로 영역을 넓히고 싶어요. 청년들의 가처분소득을 갉아먹는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죠. 이 역시 희년 정신에 입각해서 개척할 생각이에요.”
‘관계금융’이 만든 무이자 저축·대출 시스템
대안금융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손실률이 높으면 오랫동안 활동을 지속해갈 수 없다. 이를 우려해 희년함께는 대손충당금을 따로 마련하고 있다. 현재 대손충당금으로 800만원 정도 확보한 상태다. 이를 통해 차주가 대출금을 상환을 하지 않아 손실이 발생했을 때 출자금(저축금)에서 빼지 않고 대손충당금에서 뺄 수 있다.
“1금융권에서는 3개월 이상 이자나 원금 상환이 안 되면 2금융권으로 넘기지만 저희는 어려운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니까 손실 기준이 1년 정도예요. 희년함께 금융의 특징은 ‘관계금융’이에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재무상담을 하고 차주의 사정과 스토리를 알기 때문이죠. 재무상담을 통해 상환이 가능한지 평가하는 등 보수적으로 운영하죠. 그래서 현재 손실률은 1%를 넘지 않아요. 재무상담 과정에서 걸러지는 것이죠.”
다만 소득이 없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환이 어렵기 때문에 대출이 불가능하다. 고금리 과다채무자 또는 현금흐름이 불안정할 경우에는 채무조정상담을 우선적으로 받게 한다. 실질적인 채무조정을 통해 부채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는 희년은행에도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프로세스다.
“소득 없이 부채 늪에 빠진 분들의 부채규모는 보통 1000만원이 넘어요. 이분들한테는 대출이 요긴한 게 아니라 개인워크아웃, 프리워크아웃 또는 개인회생 등 채무의 전반적인 수술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 채무조정 전문가 및 상담위원들을 연결해 드리죠. 상담비 20만원을 제공하고 자활의지 차원에서 10만원 정도 부담하도록 해요. 재무상태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고요. 물론 10만원도 내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희년기금’이란 걸 조성하기도 했죠.”
희년함께의 희년은행은 조합원의 저축으로만 자본을 조달하고 있다. 초반에는 서울시로부터 600만원 정도 행정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주로 무이자 저축으로 모인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건비 등 행정비용은 조합비로 확보한다. 상부상조 금융을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5000원에서 3만원 정도를 내고 있다. 일종의 후원금이라고 볼 수 있다. 야크은행의 운영방식을 참조한 것이다
“저희는 연대정신을 강조해요. 청년 부채는 문제가 해결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하나씩 토대를 구축하며 접근하고 있죠. 일자리부터 가처분소득 문제 등 청년들의 문제가 많지만 전반적으로 청년들한테 필요한 건 채무조정과 금융지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채무조정 상담을 권해드리고 재정교육을 해드리죠. 작은 걸음이긴 하지만 청년들의 삶에서 준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죠.”
희년함께가 대안금융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불확실성이었다. 청년 부채탕감운동을 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국내 대안금융 사례가 많지 않았다. 당시엔 자본이나 역량도 부족해 리스크 부담이 컸다.
“다음 도전은 대안주거모델이에요. 이 역시 가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죠. 현재 희년은행의 자본이 대안주거모델에 흘러갈 수 있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어요. 정해져 있는 길이 아니라 어렵지만 꿋꿋이 도전할 생각이에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희년함께는 내달 출시할 ‘두 개의 세상, 공유와 독점’이라는 부동산 보드게임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보드게임은 부루마블·모노폴리에 앞서 1904년 엘리자베스 매기 여사가 만든 지주게임을 본떠 만든 게임이다. 이 게임의 특징은 개인이 땅을 소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신 토지 사용료를 지불하고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각각이 낸 토지 사용료는 이후 참여자들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된다.
“토지가치세 등 희년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보드게임을 만들었어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tumblbug)에서 100% 펀딩이 성사돼서 내년 1월에 출시될 예정이죠. 지주게임 원본을 기본소득 개념하고 연계해 이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교육용 보드게임으로 만들었어요. 일반 시민이 접하기 편하게 기독교 용어를 쓰지 않았죠. 이 보드게임을 통해 국민이 부동산에 관한 의식이 조금이나마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윤승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