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사회에 환원하고 후배들이 빛을 볼 수 있게끔 도울 수 있는 위치죠. 또한 나이를 빛낼 수 있게 나 자신을 가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철학을 가지고 지금까지 달려왔어요.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제 인생에 남은 건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살아있는 한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든 유지해서 시니어들에게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됐다. 때와 장소에 따라 격식 있는 옷차림부터 캐주얼한 옷차림까지 표현방법도 다양하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듯 패션은 젊은이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연륜의 멋이 묻어나는 패션을 주도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대한민국 패션계를 주름잡는 50년 경력의 구하주 뉴시니어라이프 대표(74)가 있다.
20대 때부터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구 대표는 30년간 과거 패션의 중심지였던 명동과 압구정에서 활약했다. 오늘날에는 더 나아가 실버산업전문가포럼 설립 및 초대회장 역임, 국내 최초 시니어 모델 육성, 시니어 해외 패션쇼 등을 주도하며 시니어 비즈니스와 시니어 해외 패션쇼의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다.
우울증 극복하며 시니어 모델 육성에 도전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20대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디자이너로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보는 시각과 좀 다른 면을 보게 됐어요. 예를 들어 똑같은 옷과 신발이지만 착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이 적용 됐죠. 이런 것들을 보면서 패션에 대한 저만의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어요.”
“20대 때 디자이너로 일할 당시 제 주요 고객은 30·40대였는데 그분들이 50·60대가 되면서 패션에 대한 취향 등 성향이 완전히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랐어요. ‘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변하는 걸까’ 하면서 50대 후반에 상당히 심한 우울증이 왔어요. 디자이너로서 상대방에게 옷을 입혔을 때 아름답고 기뻐하는, 단지 그것 때문에 디자인을 하는 것인데 이러한 기쁨이 없어지니 일에 대해서 보람도 못 느끼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우울증이 심하게 왔죠.”
우울증을 앓던 구 대표는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다 북유럽의 어느 공항에서 나이 드신 분이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고 이를 통해 생각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그 청소부는 은퇴를 해서 연금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일을 택했다고 했다. 일을 하지 않고 쉬니까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죽어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단다. 그는 본인 연금액의 절반뿐인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었다. 구 대표는 그를 보면서 나이 들어서도 무언가를 하는 게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안고 한국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때마침 우연한 기회에 실버산업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실버산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암울하고 할 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하게 됐죠. 우리나라에서는 복지관을 제외하고는 노인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때였어요. 실버산업을 공부하면서 시니어 패션, 노인들의 의생활, 주거, 식생활 등에 대해서 배웠어요. 이 중 노인 심리학이 있었는데 여기에 푹 빠져들었죠.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분야였는데 노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어요.”
“나이가 들면 아무것도 할게 없으니까 죽음을 앞에 두고 때가 되면 그냥 가야 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노인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나이 들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를 건강하게 혹은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비로소 알게 됐죠. 이렇게 푹 빠져 2년을 공부했어요. 실버산업전문가포럼을 만들어서 5년 동안 운영하기도 했죠. 노인들도 이루고 싶은 꿈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들의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니어 패션모델 육성을 시작했죠.”
구 대표가 이끌어온 시니어 패션모델 육성 사업은 이력이 화려하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5년 동안 국내외에서 시니어 패션쇼에 189회나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타이페이 등 전 세계 도시에서도 축하공연과 특별 패션쇼를 개최하는 등 사회적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패션모델이라고 생각하면 키도 크고 멋진 사람만 가능할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저는 꿈과 열정이 많은 사람들을 뽑았어요. 손을 잡아보면서요. 한번은 손이 다 굳어서 고생을 많이 한 듯한 분을 모델로 뽑았어요. 나중에 그분의 남편이 제게 감사의 인사를 하러 찾아오기도 했어요. 아직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알고 봤더니 그분은 우울증으로 인해 2~3년간 집에서 죽은 것 같은 분위기로 지냈다고 해요. 그런데 패션쇼를 한 번 하고 난 후 집안 분위기가 천국으로 변했다고 전해 들었어요. 이처럼 많은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에 이거다 싶었죠. 참가자들이 건강과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며 삶의 자세가 바뀌기 시작하는 모습을 볼 때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게 되죠.”
“시니어들도 얼마든지 런웨이 워킹 할 수 있어요”
구 대표는 시니어들에게 100살이 될 때까지 런웨이에서 하이힐을 신기고 싶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의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평생 무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구 대표를 만나 4개월이면 걸음걸이와 자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니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꿈을 꾸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이들에게서 구 대표가 힐링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모델 워킹을 배우면 다리나 허리 등 아픈 곳이 치유되는 효과도 있어요. 자세가 바르게 되면서 옷태가 좋아지고 무대에 서면 스타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기 때문에 꿈을 꾸기 시작하죠. 그런 꿈에 부응하기 위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달려왔어요. 그런데 최근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지지난주부터 수업을 다시 재개했지만 예전에 비해 수강생이 3분의 1도 안되는 수준이에요. 시니어들의 마음에 불꽃을 튀는 열정을 만들어주는데도 7~8개월 정도가 소요되는데 지금도 계속 고난을 겪으며 싸워나가는 중이에요.”
“그래도 앞으로 코로나19가 사라질 것이고 지난 힘든 여정 속에서 열정과 봉사정신, 사회에 가치있는 일을 할 때의 자부심, 내 자신이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깨달았기에 이를 멈출 수가 없어요. 앞으로 이 일을 몇 살 때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유지를 해서 꿈과 열정에는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끝으로 구 대표는 만일 이 일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고 그저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며 매 순간 감사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처음엔 시니어 패션모델을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열정을 만들어주면서 이들을 구제해주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이 얻는 게 더 큰 것 같다고 구 대표는 강조했다. 수강생들을 만날 때면 힘이 절로 솟구치는 걸 느끼며 매 순간 기쁜 마음으로 사명감을 지니고 임한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없이 공부하고 도전해보고 새로운 길을 찾아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 절망에 떨어졌을 때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힘을 얻기가 어려워요. 이것이 시니어의 문제죠. 제가 이러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시니어들에게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주고 싶어요. 대개는 나이가 들면 제 나이를 감추려고 하는데 나이가 드는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서 출발하면 좋겠어요. 이런 철학과 사명감을 가지고 오늘도 즐겁게 일을 하고 있어요.”
[허경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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