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즉 청와대 안주인 자리를 놓고 벌였던 ‘윤석열-이재명 대첩’이 윤 대통령 당선인의 박빙승부로 마감됐다. 여야 거대정당 간 전쟁의 포성은 그쳤지만 이제는 새 정부 요직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둘러싸고 ‘공신들’ 사이에서 치열한 암투가 한창이다.
새 정부 조각(組閣)은 아직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또는 물밑에서 윤 당선인을 조력했던 인사들 면면을 보면 입각 후보군을 충분히 추론해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윤 당선인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며 승리를 일궈낸 일등공신은 단연 국민의힘 장제원‧권성동‧윤한홍 의원 등 ‘3인방’이 꼽힌다. 새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의 향후 행보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잘못되면 내가 책임” 한마디로 尹 마음 돌린 張
국민의당과의 야권 후보단일화 등 굵직한 현안들을 성공적으로 견인하며 ‘해결사’로 활약한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당선인 비서실장 자리를 꿰찬 장제원 의원은 대통령 비서실장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이다. 비서실장은 6공화국 성립 이래 실질적인 행정부 2인자로 군림해온 ‘대통령의 그림자’다. 만약 장 실장이 대통령비서실장 역할을 맡게 된다면 차기 정부에서 그가 가질 영향력은 그야말로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
당초에는 윤 당선인과 유년 시절부터 죽마고우였던 권성동 의원이 비서실장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장 실장 이름이 거명되면서 자연스레 권 의원 보다는 장 실장에게 비서실장 우선 순위가 돌아갈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이 정치권의 관측이다. 권성동 의원은 지난 11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나는) 과거에 (윤 당선인) 핵심관계자였는데, 과거 핵심관계자들은 밀려난 지 오래됐다”면서도 “장 실장 만큼은 아직 핵심관계자로 불러도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당초 윤 당선인과 장 실장은 ‘악연’으로 시작된 관계다. 정치권에 따르면 두 사람이 첫 대면한 것은 2018년 10월 국정감사장이었다. 문재인정부 서울중앙지검장 및 야당 의원이라는 신분으로 만난 두 사람은 국감장에서 윤 당선인의 장모 잔고증명서 위조 의혹 등을 거론하며 서로 핏대를 올렸다.
포문을 연 당사자는 장 실장이었다. 장 실장이 “윤석열 지검장의 장모가 잔고증명서를 위조했다는 게 밝혀져 윤 지검장의 도덕성 문제가 발생했다”고 추궁하자 당시 윤 지검장은 “그게 어떻게 제 도덕성 문제인가. 제가 관련됐다는 증거가 있나”라고 맞받아쳤다. 장 실장은 “본인 주변이, 우리 국민 300억원의 돈이 지금”이라고 호통을 쳤다. 윤 당선인은 피감기관장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장 실장의 말을 끊으며 “아무리 국감장이라지만 이거 좀 너무 하시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것이다.
악연은 선연(善緣)으로 이어졌다. 국감 직후 윤 당선인이 술자리를 제안하자 장 실장은 “피감기관장이 어디에서 지금 술 먹자고 하는 거냐”고 웃는 얼굴로 가볍게 면박을 줬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후 실제로 술자리를 가졌으며 지난해 3월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직을 던지고 장 실장에게 먼저 전화했다. 윤 당선인은 동년 6월 중순 정진석 국회부의장, 권 의원, 장 실장과 만나 도움을 요청했으며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선수(選數)가 낮았던 장 실장이 윤석열캠프 종합상황실장으로 합류했다.
장 실장의 첫 업무는 기강 다잡기였다. 당시 캠프는 각자가 윤 당선인에게 직보하는 등 위계질서가 사실상 무너진 상태였다. 장 실장은 ‘향후 보고체계를 무시하면 다 자르겠다’고 엄포를 놨으며 실제로 그 후 캠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게 전직 캠프 관계자의 전언이다.
장 실장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경선 과정에서 윤 당선인의 “전두환 전 대통령 정치 잘 했다” 발언이 후폭풍을 야기하자 야인 신분으로 윤 당선인이 머문 지방숙소를 찾아가 대국민사과를 종용한 것도 장 실장이었다. 2일 늦은 밤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를 방문해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말 한마디로 윤 당선인을 설득하고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과 야권 후보단일화 실무협상을 진행해 타결시킨 것도 바로 그였다.
이렇듯 밤낮으로 매진하며 굵직한 난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실력을 입증하고 윤 당선인 신뢰를 얻은 게 당선인 비서실장 임명 배경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장 실장의 아들 논란이 향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들 용준 씨(가수 노엘)는 무면허 음주운전, 경찰관 폭행 등으로 구속기소 돼 징역 3년이 구형된 바 있다. 장 실장은 “용준이가 구치소 독방에 수용된 게 특혜라는 보도가 있는데 추잡한 장난”이라며 정면돌파 의지를 보이고 있다.
“승기 잡았다” 노장 홍준표의 벽 넘게 한 權
권성동 의원은 윤 당선인과 죽마고우 관계다. 윤 당선인 모친 최정자 전 이화여대 교수는 권 의원 고향이자 지역구인 강원 강릉 출신이다. 때문에 윤 당선인은 학창시절 방학이 되면 외갓집이 있는 강릉 금학동에 머물며 이웃이던 권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현재 그는 ‘핵심관계자’에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지만 새 정부의 유력한 법무부 장관 후보로 꼽히고 있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에서 물러나고 야인이던 시절 지난해 5월 권 의원과 강릉시 모 식당에서 공개적으로 식사 자리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 권 의원은 동년 6월 윤 당선인의 대선 출마 기자회견 때 오른쪽에 위치해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윤석열캠프 총괄선거대책본부장 등을 맡아 캠프 구성원들을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전직 캠프 관계자는 “아침마다 이마빌딩에는 권 의원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고 회고했다. 윤 당선인이 홍준표 의원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경선에서 승리한 배경에도 권 의원의 물밑 활약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선 과정에서 “승기를 잡았다. 당원투표에서 홍 의원을 압도하고 있다”며 압승을 예견한 것도 그였다.
권 의원은 윤석열정부에서 핵심인물로 활동할 것이라는 예측에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있다. 권 의원은 이에 대해 “저는 인수위에서 역할을 안 한다. 내각도 전혀”라며 “저는 (내각에) 안 들어간다. 정권교체라는 목적을 달성했기에 본연의 직업인 국회의원에 충실하면서 윤 당선인을 돕겠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그는 15일 김오수 검찰총장 거취 표명을 요구하며 중도사퇴를 압박하는 등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때문에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권 의원은 새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입각하거나 적어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도전하면서 윤 당선인 국정을 의정 차원에서 뒷받침할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다. 다만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여론 일각에서 비판이 잇따르는 강원랜드 채용비리 연루 의혹이 변수로 꼽힌다. 권 의원도 이를 의식한 듯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장제원 실장에 이어 저까지 (인수위 등에) 들어가면 정치권이나 언론이 쉽게 가만히 놔 두겠나”고 언급하며 복잡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권성동 의원 모두 여론을 의식해 1기 내각에서는 백의종군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여소야대 정국에 더해 윤 당선인은 이번 대선에서 0.73%p 차이로 신승한 바 있어 민심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윤 당선인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 사실상 여론 압력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이 두 가지 과제 해결을 위해선 ‘끼리끼리 해 먹는다’는 비판을 듣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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