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기가 빨라지면서 정부가 연금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민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 등 재정 안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은퇴 전 생애 평균소득에서 은퇴 후 연금수령액을 나눈 소득대체율이 주요국의 비율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연금제도의 목적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재정 지속가능성과 급여 적정성 간 균형을 이룬 연금개혁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공적·사적연금의 운용제도를 개혁해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을 합친 통합소득대체율을 주요국 수준까지 끌어올려 국민들의 노후소득을 보장하자는 주장이다.
국민연금 고갈 위기인데 소득대체율 31%로 낮아
국민연금의 재원은 고갈 위기에 직면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재정수지(수입-지출)는 2038년 3조5000억원으로 정점을 찍고 2039년부터 적자로 전환한 후 2090년 -178조원까지 적자 규모를 지속 확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적립금의 경우에도 2038년 경상가격 기준으로 1344조6000억원에 달한 뒤 점차 감소해 2055년 최종 소진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에서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과 공정성 제고 및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위해 상생적 연금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내년 3월까지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실시하고 하반기에 국민연금 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신임 이사장도 2일 취임사를 통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성을 강조한 만큼 정부의 연금개혁 방향은 재정 안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 의견은 양쪽으로 엇갈린다.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조사해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찬성 48%, 반대 45%를 기록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연금 개혁방안 국민 인식 조사’에서도 ‘공적 연금 개혁이 어떤 방향으로 돼야 하는가’란 물음에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46.6%, ‘재정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44.7%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 위기에도 많은 이들이 노후소득 보장 강화에 더 주목하는 이유는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급여의 비중)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 ‘한 눈에 보는 연금’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의무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31.2%(평균임금 근로자 기준)로 OECD 38개 회원국 평균치(42.2%)보다 11%p 낮았다.
공적연금(기초·국민연금)과 사적연금(퇴직·개인연금)을 합친 통합소득대체율도 엇비슷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2020년 소득·기여금 통계와 2018년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 당시의 경제변수로 가정해 추정한 결과, 통합소득대체율은 57~61%로 집계됐다. 기초연금 10%, 국민연금 25%, 퇴직연금 DB형 16% 및 DC형 13%, 개인형 연금(IRP) 10% 수준이다. OECD 등 국제기구의 권고(70% 내외) 등에 비춰볼 때 적정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추정한 공적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 35%는 세계은행이 제시한 40%나 국제노동기구(ILO)가 30년 납입 기준으로 제시한 45%와도 상당한 차이가 났다. 작년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54만원에 불과하다. 사적연금의 보험료율도 퇴직급여분 8.33%에 추가납입분(6.6%)을 합치면 15%에 근접하지만 운용수익률은 원리금보장수익률 수준에 머물러 있다.
송 연구위원은 “이런 점에서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은 소득보장을 위한 다른 대안이나 보완책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소득대체율 상향은 사적연금 개혁을 통해 비용 효율이 높은 방향으로 이뤄질수 있다. 이는 통합소득대체율 추정으로부터 자연스러운 귀결이고 세계은행의 다층연금제도로의 전환 제안 이후 ILO 등 국제기구와 연금 선진국이 추진하는 연금개혁의 방향과도 부합한다”고 진단했다.
사적연금 운용제도 개선하면 소득대체율 68%까지 상향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실시한 ‘국민연금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2.4%는 재정 안정성 확보를 위한 연금개혁 방안 중 가장 시급한 과제로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를 꼽았다. 이와 관련한 방안으로 ‘재정목표 기반 자산배분정책’이 주목된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글로벌 5대 공적연기금은 명확한 재정목표를 세우고 장기 부채·자산의 수지균형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의 GPIF는 100년 후 적립배율 1을 유지하면서 물가상승률 1.7%를 목표수익률에 부합하도록 기금을 운용한다. 네덜란드의 ABP(APG)는 적립률 104% 이상을 유지하고 정책적 적립률 110% 달성에 부합하는 자산배분정책을 추구한다.
미국의 캘퍼스와 캐나다의 CPPIB는 ALM(자산부채관리) 기반의 재정목표와 목표수익률을 설정하면서 장기 자산배분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은 명시적인 재정목표와 재정 안정화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시장연구원이 국민연금의 4차 재정계산 가정 수익률과 벤치마크(CPPIB·캘퍼스) 연기금의 요구수익률을 기초로 계산한 결과 기금고갈 시점(2057년)까지 국민연금이 CPPIB·캘퍼스와 같은 운용수익률을 달성할 경우 추가로 얻는 운용수익의 누적금액은 각각 1900조원, 117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를 2~5년 늦출 수 있는 규모다.
송 연구위원은 “기금이 급감하는 국민연금의 재정구조상 운용제도 개혁의 기금고갈 이연효과는 2~5년으로 길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금 안정을 위해서는 운용개혁과 상관없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해보이지만 운용개혁으로 얻는 추가 운용수익을 보험료 수입으로 환산하면 12~20년치에 해당해 운용개혁의 보험료 부담 경감효과는 상당하다”고 말했다.
비효율적으로 관리·운용되는 사적연금을 개혁해 노후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DB형+IRP 26%, DC형+IRP 23%로 미국(42.1%)·호주(31.3%)보다 낮다. 반면 가입자가 부담하는 기여율은 큰 편이다. 국내 사적연금 기여율은 IRP(6.6%)을 포함해 14.9%로 호주 기여율(9.5%)과 비교해 5%p 이상 높다. 이는 퇴직연금 선진국 수준으로 제도를 혁신할 경우 소득대체율이 상향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자본시장연구원이 국내 DC형 퇴직연금 및 IRP 기금에 미국 DC형 퇴직연금 20년 장기수익률을 벤치마크로 설정해 조사한 결과, 소득대체율은 각각 6%p, 5%p 상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DC형을 선택한 가입자의 통합소득대체율은 68%로 추정된다. 다층연금 전체의 통합대체율이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70%에 근접한 수준이다.
송 연구위원은 “사적연금을 개혁할 경우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 부당 없이 소득대체율을 큰 폭 상향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기금형 도입 등 선진국 수준으로 운용제도를 혁신할 경우 소득대체율은 최대 5~11% 증가해 통합소득대체율이 66~68%로 국제적 권고에 근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공적연금은 재정안정에, 사적연금은 소득대체율 상향에 초점을 맞춘 다층연금개혁을 통해 적정성과 재정안정이 균형을 이루는 노후소득보장제도 개편안이 도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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