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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 선생님', '하얀 배꽃이 올망졸망 피어난 화사한 봄날 오후, 점심을 먹은 아...'))
하얀 배꽃이 올망졸망 피어난 화사한 봄날 오후,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정원에서 놀고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서 공기놀이를 하는 친구들이 있고 콩주머니 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애덕·보민·해린은 평평한 곳에서 상급반 언니들이 만들어 준 콩주머니를 굴려서 점수판 안에 넣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눈썰미는 애덕이 제일 좋았다. 오늘도 애덕은 점수판의 한 가운데로 콩주머니를 굴려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내가 다음에 재밌는 놀이 가르쳐줄게. 우리 집에 승경도 놀이판이 있거든.”
해린이 콧바람을 내며 말했다.
“승경도? 그게 뭔데?”
애덕이 물었다.
“양반들만 하는 놀이인데, 주사위를 던져서 정1품에서부터 종9품에 이르는 관직도를 올라가는 거야. 나는 종종 어머니랑 놀아.”
“관직도? 따분한 놀이일세. 관직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니?”
보민이 새초롬하게 말했다.
그때 정원 한가운데를 질러서 젊은 남자 선생님이 걸어왔다. 아이들의 시선이 한순간 선생님에게 꽂혔다.
“한문 선생님 오셨다!”
해린이 치맛자락을 잡고 재빨리 뛰어갔다. 다른 아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 주위로 모여들었다. 선생님은 이십 대 중반으로 두루마기에 갓을 쓴 전통 복장을 했고 환한 피부에 반듯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남형 얼굴이다. 아이들에 둘러싸인 선생님은 미소를 지었다. 이성회 선생님은 몇 년 전부터 이화학당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 학당에서는 영어와 신학문도 가르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교장 선생님의 신념에 따라 한문도 중요시했다. 한문 선생님은 여선생님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남자 선생님으로 모셨다. 여자들만 가득한 학당에서 유일한 남자인 한문 선생님은 아주 인기였다.
“선생님, 빨리 들어가요.”
아이들이 보챘다. 한문과목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멋진 선생님을 바라보기만 해도 아이들은 즐거웠다. 어린 새싹반 아이들은 선생님을 삼촌처럼 따랐다.
“그동안 잘들 지냈니?”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향했다. 학당의 교실은 모두 서양식으로 되어 있지만 한문 교실은 달랐다. 전통적인 과목이어서 서당식으로 꾸몄고 아이들과 선생님은 돗자리에 앉아서 공부했다.
“오늘은 <대학>의 첫 부분을 공부할 건데, 이 책을 영어로는 ‘Great Learning’, ‘중요한 학습’이라고 번역을 했어. 하지만 원래 대학이란 ‘대인의 학문’, ‘대인이 배워야 할 것’이란 뜻이고 대인이란 지도자, 리더를 말한단다.”
“선생님, 저희는 어린이예요. 대인은 아닌데요.”
호기심 많은 애덕이 한마디 했다.
“하하, 대인 말고 소인을 위한 책도 물론 있단다. <소학>이라고 아이들이 배우는 책이야. 하지만 이화학당은 왕후께서 직접 이름을 지어주신, 지도자를 키우는 학교라서 <대학>을 배운단다. 너희들 모두 지도자로 자라야지?”
이성회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자신들이 지도자의 공부를 한다고 하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선생님, 어떤 말이 제일 앞에 있나요, 궁금합니다!”
반장인 보민이 의젓하게 질문했다. 해린이 관직도를 이야기할 때 시큰둥해서 쏘아붙였지만, 보민은 책임감이 있는 아이였다. 지도자가 되려면 무엇을 공부하는지 궁금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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