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여행] 눈 돌리면 다른 세상 ‘경포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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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생태계 복원… 가시연 군락 장관
느긋하게 걷다보면 멸종위기종 순채가 반겨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7-06 09:20:28

▲ 순포습지는 자체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춤으로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를 이루었다. 강릉시

강원도 강릉 하면 바다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경포호를 끼고 자리 잡은 경포가시연습지는 도심에서 보기 힘든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휴가철 이색 여행지로 추천할 만하다.

마침 3일부터 13일까지 글로벌 메가 축제 ‘2023 세계합창대회’가 강릉에서 열리는 중이다. 이번 주말 강릉을 찾으면 공연도 보고 숨은 여행지도 방문하는 일거양득의 여행으로 만들 수 있다.

4000년 세월을 품은 경포가시연습지

▲ 경포가시연습지가 제 모습을 찾자 기다렸다는 듯 고귀한 생명이 찾아들었다. 강릉시

경포호는 동해 일출을 담아내는 멋진 그릇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경포호를 뒤로하고 서남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면 사뭇 다른 풍경이 등장한다. 호수도 아니고 땅도 아닌 습지가 그윽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며 지나는 발길을 붙잡는다.

습지는 물의 흐름이 정체되면서 생성된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지만 습지는 자체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를 이룬다. 생태계의 화학적인 순환에 기여하기에 ‘자연의 콩팥’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경포호에 붙어 있는 가시연습지는 대략 4000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들어 인근 지역민이 땅도 아니고 물도 아닌 이 곳에 농사를 지었다. 50년 동안 농토였던 땅을 습지로 변모시키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행된 게 2008년이었다.

2013년 생태복원 마치고 일반에 공개

▲ 생육조건이 충족되자 50년간 잠들어 있던 가시연꽃이 화사한 얼굴을 내밀었다. 강릉시

처음 복원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회의적이었다. 과연 습지가 돌아올 것인가. 그러나 사람이 의심한 일을 자연은 해내고야 말았다. 놀라운 자연의 복원력이 습지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해 낸 것이다. 습지가 제 모습을 찾자 기다렸다는 듯 고귀한 생명이 찾아들었다.

큰고니·수달·삵과 같은 멸종위기종은 물론 긴 세월 땅속에 잠들어 있던 가시연의 존재까지 부활의 시간을 맞이했다. 이곳에 가시연이 있었다는 것은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옛날 이야기였다.

그런데 습지가 조성되면서 생육 조건이 충족되자 기다렸다는 듯 가시연이 고개를 내밀었다. 휴면 종자가 자연 발아되어 저절로 깨어나는 기적이 이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가시연은 수련과에 속하는 1년생 수초로 한반도에 자생하는 수생식물 가운데 가장 잎이 크다. 가시연 역시 생육지 파괴로 인해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되어 있다.

가시연 발원지 가는 길

▲ 가시연의 부활은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관광공사

현재 습지 전체를 다 덮을 만큼 가시연이 군락을 이루면서 이곳은 경포습지라는 이름 대신 ‘경포가시연습지’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가시연의 부활은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경포호와 경포습지 사이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가시연 발원지에 닿게 된다. 가시연 발원지는 처음 가시연이 자연 발아되어 개화한 지역이다. 이곳을 지나면 나루터로 길이 이어진다.

경포 가시연습지 방문자센터에는 습지 해설사가 요일별로 상주하고 있어 석호의 생성부터 습지 생태에 대한 모든 것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습지 해설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며 온라인으로 신청 가능하다.

다시금 고개 내민 순채꽃

경포가시연습지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 2010년 순포습지도 복원에 들어갔다. 이곳도 오래전에는 호수 지역이었으나 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리고 일부는 농경지로 개간되면서 많은 면적이 육상생태계를 이루었다.

생태복원이 시작되자 순포습지 역시 놀라운 복원력을 발휘해 6년 만에 제 모습을 찾았다. 습지가 되살아나면서 깃대종인 순채 서식지도 복원됐다. 순채는 어항마름과의 여러해살이 수생식물로 습지가 흔하던 시절에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희귀 식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순포라는 이름도 순채에서 왔다. 순채꽃은 5월부터 피기 시작해 7월까지 볼 수 있는데 암꽃이 먼저 피고 수꽃이 다음 날 개회하여 자기꽃가루받이를 피할 줄 아는 지능적인 식물이다. 순채꽃을 보려면 오전에 움직여야 한다. 정오가 지나면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예민하고 까다로운 꽃이다.

경포가시연습지에서 순포습지까지 4km

▲ 경포가시연습지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 2010년 순포습지도 복원에 들어가 6년 만에 제 모습을 찾았다. 강릉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순채는 원래 나물이었다. 순나물이라고도 한다. 점액질에 둘러싸인 어린 순을 데쳐 나물로 먹는데 이 점액질에 항암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자기만의 삶의 법칙을 가진 이 영특한 식물이 한반도에 터를 잡고 살아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멸종의 위기를 넘기고 되살아나 준 것은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