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이냐 항일이냐… 육사가 불붙인 역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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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김좌진‧홍범도 등 독립운동 5인 흉상 이전 추진
李국방 “공산주의 경력 있어”… 광복회‧기념단체 반발
철거하면 한‧미동맹 공원 조성… 백선엽 동상 건립도 추진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8-27 13:59:54

▲ 2018년 제99주년 3·1절을 맞아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 세워진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 육군사관학교 제공

육군사관학교(육사) 교정의 독립유공자 5인 흉상을 이전한다는 소식에 논란이 거세다. ‘항일’과 ‘대한민국 수호’ 어느 쪽 가치를 더 중시할 것인가 ‘역사관’의 절실함’을 일깨우는 현상이다. 냉전시대 대한민국의 탄생과 유지엔 ‘반공’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냉전 탈냉전이 다 지난 오늘날이지만 여전히 ‘반공’은 자유민주의의 결론이자 대한민국 번영의 필수 요소다.

육사 교정의 우당 이회영과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장군 등 5인의 흉상 이전 소식에 26일 이종찬(87) 광복회장은 성명을 내고 강하게 비판했다.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등 관련 단체들도 반발했다. “독립운동 흔적 지우기” “민족정기를 들어내려는 시도”라며 “책임자 엄중 문책”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국군역사의 왜곡 의도” “반헌법적 행태”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앞서 25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밀어내려 하나’ ‘한·일관계를 위한 철거인가’ 취지의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답변하며 입장을 설명했다. 우선 이 장관은 “공산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학교”에 공산주의 경력자 흉상의 존재가 모순된다는 지적이 있어 왔음을 전했다. 소련공산당 가입, 레닌에게 자금과 권총을 건네받기도 한 홍범도 장군을 말한다. 아울러 “(그러나) 독립운동에 관한 것은 존중받아야” 하므로 “독립기념관에 모시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날 육사도 “(교내)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입장문은 “학교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며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조성에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생도들이 생활하는 충무관 건물에 고대부터 독립군, 광복군, 6·25전쟁, 베트남 파병, 국지도발 대응작전, 해외 파병 등 근현대사 전반을 포함한 학습공간을 조성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한다. 그동안 일제시대 독립군·광복군 등 항일 무장투쟁이 과도하게 강조됐다는 평가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부가 추진한 독립운동가·전쟁영웅 재평가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달 일제시대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백선엽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표현이 삭제됐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반면 의열단의 김원봉에 대해 북한정권과 6·25 남침에 기여한 점을 들어 비판했다.

육사는 흉상을 철거한 자리에 한·미동맹 공원을 만들고 싶어한다. 백선엽 장군 흉상 설치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운동보다 창군 이후 군사적 분야에 공헌한 인물이라는 게 기본” 틀이다. 자연히 6·25 당시의 이력이 중요하다. 대한민국 소멸을 위해 싸운 사람들까지 대한민국 유공자로 삼을 수는 없다. 최근 광주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문제 역시 이런 맥락에서 판단하면 된다.

다시 역사전쟁의 한복판이다. 과거 냉전시대 가치판단의 기준이던 ‘반공’이 소련·동구권 몰락으로 탈냉전시대가 열리며 폐기됐다. 근현대사 해석은 ‘항일’ 그것도 ‘무장투쟁’ 위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존재 가치엔 관심이 적었고 이해도 부족했다.

대한민국 수호세력조차 ‘민족’이라는 단어 앞에 쉽사리 무장해제 되는 현실 또한 큰 문제로 지적된다. 민족이란 서구 근대의 ‘네이션(Nation)’의 번역어지만 실제 전 근대적 ‘종족’ ‘부족’ 개념과 혼동돼 왔다. 이 회장의 광복절 축사 역시 그 연장에 있다. 그가 1948년 8월15일을 기리는 ‘건국절’ 추진에 반대하며 ‘그 이전(임시정부 시절)에도 나라는 존재’했고 ‘독립운동의 결과로 해방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승만학당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며칠 전 유튜브 논평으로 조목조목 비판한 바 있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