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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는 음식의 도시이고 예술의 도시이며 건축의 도시다.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작품을 멋진 집에 들어앉아 음미하는 일은 전주를 방문하는 최고의 기쁨이기도 하다.
과거가 잘 보존된 전주지만 현대를 살고 있기에 전주에는 옛것과 새것이 혼재되어 있다. 오늘날의 전주는 옛날 속에 머물고, 과거의 전주는 현재를 끌어안으며 전주만의 독특한 색깔을 창조해 나가는 중이다.
여행자를 위한 현대옥
전주 웨리단길 끝자락에 있는 ‘다가여행자도서관’은 전주를 찾는 여행자들의 쉼터다. 웨리단길이란 객리단길 옆 웨딩거리를 가리킨다. 위치적으로 전주객사와 전라감영 사이에 있다. 웨리단길은 소위 핫플레이스로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다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층마다 ‘다가독(讀)방’ ‘다가오면’ ‘머물다가’ ‘노올다가’ 같은 위트있는 이름이 붙어 있다.
지하 층계참에서 건물 꼭대기에 이르는 별빛책장에는 여행가이드북과 여행에세이가 밤하늘의 별처럼 가득 꽂혀 있다. 여행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꿈같은 곳이다.
이곳 다가여행자도서관에는 다른 도서관에 없는 야외공간 ‘책정원’과 ‘책풍덩’이 있다. 식물로 장식된 책정원과 풀장처럼 꾸민 책풍덩은 독서 삼림욕과 독서 해수욕의 욕구를 자극한다. 도서관이지만 카페 같은 분위기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고 SNS에 올릴 사진을 찍으며 놀기에도 제격이다.
한옥 베이커리와 고물자골목
전주는 전통음식만 유명한 게 아니다. 서양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수제 초코파이도 널리 알려졌다. 전주 PNB 풍년제과는 1951년 중앙동에서 오픈해 3대째 가업을 계승하고 있는 베이커리다.
대기업 오리온 초코파이가 1974년 출시됐으니 그보다 더 원조인 셈이다. 본점은 완산구 팔달로에 있으나 한옥 형태로 된 한옥마을 1호점이 SNS에 더 자주 오르내린다.
풍년제과 같은 형태의 한옥을 ‘퓨전한옥’이라고 부른다. 외관은 한옥이지만 거주의 편리성을 고려해 내부를 현대식으로 고치고, 난방 효율과 채광성을 높이기 위해 유리창을 해달았다. 전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와 상점 대부분이 퓨전한옥이다.
전통에 위배된다고 하여 이런 류의 건축 형태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또한 전주의 문화가 아닐까. 서양문화가 한국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주가 있었듯 전통도 현실성을 덧입으며 계승되는 것이다. 이곳이 상가인 줄 아는지 모르는지 외국인들이 이 앞에서 기념사진을 많이 찍는다.
고물자골목 공유공간 ‘둥근 숲’에 그 시절 풍년제과를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아, 그땐 이랬구나! 빛바랜 사진 속 풍년제과 건물은 신식이다. 거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성도 세련됐다. 제과점 유리에 비친 ‘유신’이라는 글자가 아니라면 시대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고물자골목은 조선시대 은방골목으로 불리던 곳이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 물품이 유통되면서 구호물자골목·양키골목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이 골목의 끄트머리에 배차장이 생기면서 1973년까지 배차장골목이라는 이름도 얻어 썼다.
고물자골목 ‘둥근 숲’은 과거 여관과 요양원으로 쓰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전시도 하고 주민이 쉬어가기도 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전혀 현대적이지 않은 현대옥
전주한옥마을 부근에 위치한 남부시장은 맛집이 모여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옥·조점례남문피순대·은혜쌍화탕은 시장 보러 왔던 아낙들과 장사치들이 출출할 때 이용하던 맛집이다.
한옥이 즐비한 동네에서 현대옥이라는 이름은 매우 튀는 작명이었으리라. ‘현대옥’을 선택한 사장님의 용기는 현대까지 이어진다. 같은 콩나물국밥집인 ‘왱이집’ ‘삼백집’이 대형 건물을 지어나가는 중에도 이 집은 좁은 시장 골목에서 별로 현대적이지 않은 현대옥을 고수하고 있다.
콩나물국밥을 시키면 수란이 따라 나온다. 로컬들은 수란 그릇에 국밥 국물을 몇 수저 넣은 후 김가루를 뿌려 미리 먹는다. 수란을 국밥에 마는 이는 다 외지인이라고 보면 된다. ‘쫑쫑 썬 오징어’가 든 콩나물국밥에 대해선 따로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전주는 많이 변했지만 더 많은 것을 예전 그대로 지켜가고 있다. 칠성사이다 패트병에 담아 파는 모주, 식후에 제공되는 야쿠르트, 연탄불에 구워주는 황태… 우리가 오래전에 지나온 풍경을 전주는 간직하고 있다.
공간은 살아 있다
전주 팔복예술공장은 1979년 설립한 썬전자(쏘렉스) 위에 세워졌다. 카세트테이프 만들던 썬전자는 80년대 후반 노동-학생운동 연대의 상징이었다. 407일간 장기 투쟁이 펼쳐지기도 했던 이곳은 1992년 그예 문을 닫고 말았다. CD와 MP3라는 신문물에 카세트테이프가 밀려 난 탓이다.
25년간 폐공장으로 버려졌던 썬전자가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은 2016년 도시재생사업 때다. 사람들은 낡은 건물을 부수지 않았다. 그 느낌 그대로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부활시켰다. 자본의 힘으로 추동되던 어버니즘의 끝에서 도시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었다. 지키고 보존하고 되살리니 힙해졌다.
팔복동이라는 동네 자체가 힙하다. 팔복예술공장 바로 옆으로 열차가 지나고 철길 건너편에는 전주산단이 자리하고 있다. 팔복예술공장은 황량한 공장지대의 꽃이 되었다.
현재 이곳은 시민을 위한 전시장·카페·스튜디오로 사용 중이며 국내외 아홉 명의 작가가 입주하여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A동 1층 팔복 아카이브에는 회사 설립 이후부터 폐업할 때까지의 역사를 보존해 두고 있다.
팔복예술공장은 건축 양식이랄 게 없는 시멘트 건물이다.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 공장 건물로 지어졌고 한때 버려졌으나 50년이 지난 지금 예술가를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건축된 공장이 다수를 위한 공공시설로 다시 태어날 줄 누가 짐작했으랴. 그렇다. 지금 비록 비천하고 남루하더라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건축 목적은 다르지만 다수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팔복예술공장과 전동성당을 비교해서 보면 좋다. 100년 전 건축물인 전동성당은 여전히 종교의식이 거행되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재다. 로마네스크·비잔틴 양식이 혼재되어 있어 웅장하면서 곡선미가 빼어나다.
전주를 여행할 때는 빨간색 트롤리버스를 이용해 보자. 대중교통과 시티투어를 겸한 이 버스는 전주역을 출발해 고속버스터미널·중앙시장·전동성당·한옥마을·서부시장·효자광장·금산사를 한 줄로 잇는다.
트롤리버스를 타고 가다 북문승강장에 내려 붓글씨로 된 현판을 사진으로 남겨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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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 ‘반대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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