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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한인 작가 이매자의 장편소설 ‘음천’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2013년 미국독립출판도서상을 수상한 이 책은 여성의 몸으로 6·25전쟁 등 격변기를 통과한 음천의 삶을 통해 가족·삶·선악·운명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음천’ 한국어판 출간에 즈음해 미국에 거주하는 이매자 작가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감을 묻는 말에 이 작가는 ‘마음이 참으로 뿌듯하고 후련하다’고 답했다.
한국어판 ‘음천’이 나오기까지 26년
“영문판이 출판된 지 11년 만에 드디어 한국어판을 세상에 내놓게 되어 기쁩니다. 사실 그동안 한글판 출판을 고의로 미뤄 왔어요. 소설 속 인물들의 적나라한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질 때 겪을 수 있는 불편함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문학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고, 실존 인물들도 나이가 들어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다고 판단해 비로소 출간을 결심했다고 한다.
작가는 ‘음천’을 쓰기에 앞서 자서전 작업을 먼저 진행했다. 자서전을 쓰는 데만 5년 세월이 소요됐다. 이후 10년 동안 소설작법을 새로 배우며 영문 장편소설로 먼저 ‘음천’을 완성했다.
자서전 집필부터 2013년 영문판 ‘음천( The Voices of Heaven)’ 출간에 이어 2024년 한국어판이 나오기까지 무려 26년이 걸렸다. 말하지 않아도 무척 어렵고 고된 여정이었으리라.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영문학을 공부한 뒤 귀국하여 교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했죠. 작가가 될 줄은 몰랐어요. 동기인 안정효는 학창 시절에만 소설 2편을 쓸 정도로 천재였는데 저는 창작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평론가 정도는 생각했죠.”
평소 이 작가는 남편과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이야기를 들은 외국인들은 정말 특이한 내용이라며 글로 써볼 것을 권유했다.
“우선 자서전으로 쓴 것을 출판 에이전트가 소설 형식으로 바꿔서 출판하면 어떻겠냐고 제의했어요. 사실 너무 괴롭고 아픈 기억이어서 글 쓰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쓰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가 엉엉 울곤 했죠.”
그런데 소설을 쓰다 보니 엄마 입장에서도 생각하고 아버지 입장에서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흔히 글쓰기는 자기 치유 과정이라고 한다. 이 작가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한국어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시간
“미국에서 살면서 3남2녀를 두었고, 남편은 사학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제 몫은 6·25전쟁 기간 일반 서민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가슴 아픈 일들을 어떻게 극복해 갔는지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그들의 이야기가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요.”
‘음천’은 그를 입양해 키우고 첩과 함께 살아야 했던 양어머니와 자신의 실제 이야기다. 그를 입양할 당시 점쟁이가 어머니에게 아들보다 10배 나은 딸이 될 거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우선 다섯 페이지만 해보자, 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어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고유의 말맛에 매혹되어 11년 동안 원고 전체를 한국어로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며 현대 한국어를 배우고, 이를 소설에 적용했다. 또 시와 수필을 쓰며 문학과 가까이 지냈다. 영어 제목 ‘천국의 목소리(The Voices of Heaven)’ 어머니의 실제 이름 음천을 번역한 것이다.
“저는 일제강점기이던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먹을 것도 신을 신발도 변변치 않은데 제가 아프기까지 했대요. 심지어 남녀 쌍둥이였는데 당시 쌍둥이는 같이 안 키운다는 미신 때문에 저는 이웃에 맡겨졌습니다.”
아이가 몸이 나으면 다시 데려오겠다는 조건이었다는데 이웃 어른은 아이를 서울에 사는 조카(양아버지)에게 주어버렸다. 자식이 없던 양부모는 바로 아이를 호적에 올렸다. 이 작가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 여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만주에서 서울로 입양되다
“저희 집은 무척 화목했지만 아들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가부장제 사상과 할머니의 성화로 양아버지는 작은어머니를 들여야 했습니다. 당시 첩 제도는 허물이 아닌 풍속이었어요. 엄마는 작은엄마가 들어온 이후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했어요. 엄마를 떼어두고 옆방에 가서 자야 했던 첫날 밤엔 ‘차라리 셋이서 같이 자자!’며 오열하셨죠.”
책 제목 ‘음천’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명령처럼 관습에 복종해야 했던 시대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작가는 ‘음천’에 인간의 강인함과 한국 여성의 운명을 담아내면서 사회 상황과 개인의 운명이 어떻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구성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음천’은 1950년대 한국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어 사료적 가치도 매우 뛰어나다. 작가도 일상생활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노라 고백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 여성의 삶과 그들이 마주한 도전 그리고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 점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그 시대의 정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가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고 한다.
“소설 내용이 처음에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삶과 그들이 겪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더 가까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주길 바랍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하며 그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매자 작가는 ‘음천’으로 미국독립도서출판상 외에 ‘포어워드 리뷰스’ 선정 ‘올해의 출판상’(다문화 부문·군사와 전쟁 부문)과 소프 멘 문학상 우수상(Thorpe Menn Literary Excellence Award)을 받았으며, USA베스트북(역사소설과 문화소설 부문)에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다.
◆ 이매자: 1966년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수도여자사범대학과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다 1970년 결혼과 함께 미국 미주리 주에 정착했다. 전업주부로 살다가 1995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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