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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한쪽 눈을 예리한 도구로 찌르는 갑골문, 이것이 ‘백성 민(民)’의 원형이다. 수천 년 전에는 저항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전쟁포로의 한쪽 눈을 실명시켰다 한다. 그러니 ‘민(民)’은 오늘날 ‘노예’의 의미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노동력만 취하기엔 외눈박이가 딱 좋았을 것이다. 모든 집단이 전쟁(약탈)을 통해 몸집을 불려 가던 시절, 전쟁 포로의 노예화는 인류사 보편 현상 가운데 하나였다.
‘민주(民主)’란 원래 ‘백성의 주인’ 즉 최고 권력자를 뜻했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서경에 처음 등장한 이래 약 2500년간 그렇게 쓰였다. 19세기 후반 중국에서 데모크라시(democracy)와 리퍼블릭(republic)을 동의어 취급하며 民主로 옮긴 게 일본에 전해졌다. 데모크라시와 그것의 구현을 지향한 리퍼블릭 모두 너무나 낯선 개념이었고 구분도 못했다.
데모크라시·리퍼블릭… 19세기 후반까지 일본에선 가타카나 음차됐다. 파악이 안 되니 적절한 한자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양자를 뭉뚱그려 공화(共和)로 번역하다, 20세기초 각각 民主·共和로 자리잡았다. 그런 다음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 중국·한국의 현대어에 들어온다.
리퍼블릭은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공공의 것)에서 유래했다. 공화정을 추구하는 이념·태도를 공화주의라 하고, 이에 기반한 체제가 공화국 즉 리퍼블릭이다. 일본에서 리퍼블릭이 共和로 옮겨진 것은 ‘왕(세습권력)의 부재’에 착안한 번역으로, BC2세기경 연호 ‘共和’의 재활용이었다.
사마천이 BC9세기 중반 폭정을 일삼다 쫓겨난 주나라 여왕(厲王)의 빈자리를 메운 두 제후 시대를 共和 1년… 共和 14년 등으로 썼다. 함께(共) 조화롭게(和) 다스렸다고 풀이해 만든 신조어인 셈이다(제후국의 하나인 공(共)나라 영주 화(和)가 추대돼 다스린 시기로 보기도 한다).
데모크라시의 어원은 ‘다중(多衆)의 지배’다. 기본적으로 ‘떼의 논리’이기에 ‘자유’와 결합하지 않으면 타락하기 쉽다. 자유 없는 공화 역시 위험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화인민공화국처럼 ‘민주’가 강조되지만 특권 엘리트 독재이거나 이름만 공화국인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1항에 ‘민주공화국’이라고만 규정된 것은 헌법 전체의 대전제인 전문에 ‘자유’가 나오기 때문이다. 인민민주가 득세한 시대일수록 ‘자유민주공화국’을 강조해야 한다. 자유·민주는 각각 개인·다수를 존중한 개념이기에 모순된 가치다. 이를 아우르는 것이야말로 공화(더불어 조화로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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