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통일35년째… ‘정서적 東西장벽’ 높아지며 양극단 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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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선거에서 지역격차 확인… AfD·BSW 돌풍
양극단 정당, 이민·우크라 지원 반대엔 한목소리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6-12 15:55:05

▲ 독일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킨 '독일을 위한 대안'(AfD) 당대표 알리스 바이델. 집권시 '덱시트'(독일의 유럽연합 탈퇴)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

▲ 개혁공산주의를 내세운 BSW 대표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독 태생으로 기존 좌파 정당을 나와 자신의 이름을 딴 당명으로 창당했다. 이념적으론 독일대안당(AfD)과 대척점에 있으나 이민·우크라이나지원 반대에선 비슷한 목소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독일 연방의회 연설 때 AfD 바이델 대표와 불참했다. 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끝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옛 동독‧서독 지역의 격차가 드러났다. ‘자국 우선주의’ 정당의 약진과 기존 좌파 정당 참패 현상에선 프랑스와 마찬가지지만 통일 35년째인 독일 상황은 좀 더 복잡하다. 특히 근년 ‘정서적 동서장벽’의 강화가 이번 선거로 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도 라멜로프 튀링겐주(옛 동독) 총리가 이 지역의 ‘우경화’를 지적한 비판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라멜로프 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옛 서독 시민의 글 ‘동독 주민의 감사 마음은 어디로 갔나’를 들어 “(동·서의) 정서적 통합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며 “동독 주민에게 고마움을 기대하는 게 갈등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옛 서독)의 헨드리크 뷔스트 총리는 현지 매체 RND 인터뷰에서 “(옛 동독) 작센·튀링겐보다 (스페인 휴양지) 마요르카를 더 잘 안다”며 동·서독 시민 정서적 교류를 위한 ‘통일조약2.0’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여의치 않은 국가통합성의 고민 속에 최근 옛 동독지역에서 정치적 양극단이 존재감을 키웠다.

독일에선 보수당인 기독민주당(CDU)·자유민주당(FDP)을 중심으로 약간 왼쪽에 기독사회당(CSU), 더 왼쪽에 사회민주당(SPD), 훨씬 더 왼쪽에 녹색당이 있다. FDP는 1948년 창당 이래 CDU·SPD 사이에서 제3당 역할을 하던 자유주의 정당으로 통일 후 동독의 FDP와 통합됐다. 전원 비례로만 당선되기도 하는 등 지역 기반이 미약하다.

오늘날 독일 내 주요 정당 모두 본래 이념·철학적 차이가 서로 크지만 유럽연합(EU) 지향성에 동의한다는 점에서 비슷비슷해진 분위기다. 입으론 중도·온건을 외치면서 자국 민생보다 이민·(약자)인권·환경 등을 우선시한 EU의 이상을 추종해 왔다. 이에 서민들의 팍팍해진 삶을 개선하겠다는 독일대안당(AfD)이 출현한 것이다.

독일의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11일(현지시간) 발표됐다. 16개주 가운데 옛 동독 5개주(튀링겐·작센안할트·작센·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브란덴부르크)에서 모두 AfD가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나머지 11개주 가운데 도시주(Stadtstaat)인 베를린·브레멘·함부르크 이외의 8곳만 CDU·CSU 연합이 제1당 자리를 지켰다.

옛 동독지역에선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 같은 강경 좌파도 선전해 다른 나라와 차별된다. 전국 단위 선거에 처음 후보를 낸 BSW가 옛 동독 5개주에서 15％ 안팎의 표를 얻었다. 전국 평균(6.2％)의 두 배를 넘어선 수치였으며 AfD·BSW 득표율을 합하면 50％에 가깝다. 독일의 유명 시사매체 슈피겔은 “동쪽으로 갈수록 극단이 득세한다”고 해설했다.

BSW는 동독 태생의 스타 정치인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지난해 좌파 정당을 탈당한 뒤 자기 이름을 딴 당명으로 창당했다. 개혁공산주의를 표방하지만 난민정책·우크라이나전쟁·코로나19 등 이슈에서 이념적 대척점에 있는 AfD와 유사한 목소리를 냈다. 기성 정당들이 “BSW가 사안에 따라 극우와 극좌를 오간다”고 손가락질했다.

BSW와 AfD 소속 의원들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11일 연방의회 연설에 나란히 불참해 현지 언론에게 “포퓰리즘 동맹”으로 비판받았다. 이에 아랑곳 않고 AfD가 젤렌스키를 향해 “임기 만료된 구걸 대통령”이라며 러시아와 협상해 빨리 전쟁을 끝내라고 촉구했다.

BSW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매우 위험한 확전의 소용돌이에 기여한다. 우리는 유럽 전체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핵 갈등을 감수하고 있다”며 목소리 높였다. BSW 역시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한 조속한 전쟁 종식을 지지하며 장기적으로 미국 주도 북대서양조약지구(NATO·나토) 의존에서 벗어나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공동안보 체제 구축을 주장한다.

AfD와 BSW가 9월 작센·튀링겐·브란덴부르크 등 옛 동독 3개주 의회 선거에서 세력 확장을 기대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AfD 돌풍’의 거점이 튀링겐주였다. 베를린 훔볼트대 사회학과 슈테펜 마우 교수는 “제도에 대한 신뢰, 의회 민주주의·정당 충성도가 동독에서 덜 뚜렷하다”며 9월 선거 이후 동·서독 심리적 분리의 심화 가능성을 짚었다.

지난해 6월 튀링겐주 인구 2만 여의 조네베르크에서 2013년 창당 이래 첫 AfD 지방자치단체장이 배출됐다. 나치를 연상시킨 발언으로 악명 높은 비외른 회케 튀링겐주 AfD 대표가 주의회 선거 결과에 따라 새로 구성될 주정부의 총리 자리를 노린다. 그외 AfD 멤버들의 설화와 구설수 속에서도 지지세는 별로 꺾이지 않고 있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