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일제 말 조선 젊은이들의 집단 선택을 어찌 봐야 하나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50대 1 뚫고 일본군 지원한 젊은이 총 1만7350명
당시 식민지 대만은 조선보다 8배 높은 354대 1 경쟁률
‘그들은 20세기 현대사에서 어떤 존재인가’ 새삼 궁금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5 06:31:00

느낌이 어떠셨는지부터 묻고 싶다. 지난주 칼럼에서 소개한 해방 직전 한·일 관계를 보여 주는 묘한 통계수치 말이다. 재확인하면 일제 말 일본에 건너갔던 근로자는 징용공(10만 명 미만)을 포함해 총 73만 명이지만 그중 80% 이상 즉 60만 명 이상이 자발적으로 일본 땅을 찾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브로커에게 거금을 주고 배에 숨어 일본에 밀항하는 위험까지 감수했다.

실은 일제 말 조선 청년이 일본군 사병으로 입신 출세하는 육군특별지원병제도 역시 그 이상으로 인기 폭발이었다. 당시 일본군 사병으로 변신한 조선 젊은이는 총 1만7350명이었지만 지원자는 80만 명을 넘었다. 무려 50대 1에 가까운 좁은 문을 뚫으려고 몇 년째 재수하고 혈서까지 썼다는 게 역사의 진실이다. 그렇다고 앞세대를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당시 일제 식민지이던 대만 젊은이들은 한술 더 떴다. 조선에서 육군특별지원병제도가 대박을 터뜨리자 일제는 4년 뒤인 1942년 같은 제도를 대만에 도입했다. 그 결과 총 4525명을 뽑는데 연인원 148만여 명이 몰렸다. 지원율이 조선에 비해 8배나 높은 354대 1이었다. 당시 조선 청년의 상위 2%만 일본군이 됐지만 대만은 그게 상위 0.3% 이상이었다는 뜻이다.

이런 빼박 통계는 근현대사의 상식이다. ‘반일종족주의’는 물론 별도의 단행본인 정안기 박사의 ‘충성과 반역’(조갑제닷컴, 2020)에 등장한다. 80여 년 세월이 흘러 그런 역사 통계를 살펴보는 건 물론 개운치 않다. “그냥 덮어 두지 왜 그래?” 하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아니다. 6·25와 광복절이 코앞인데 걸핏하면 섣부른 반일 감정을 발산하는 한국 사회에 썩 요긴한 정보다.

얘길 더 해 보자. 그동안 우린 그런 통계를 무시했지만 의미도 애써 축소해 왔다. “지원자가 많았다고 해 봤자 가난한 농민층의 호구지책 같은 게 아니었을까?” 아니었다. 정안기 박사에 따르면 이 지원자들은 당시 조선 땅 중농층 가계의 차남 출신이 주류였다. 학력도 그랬다. 당시 취학률이 30%를 밑도는 상황에서 그들은 100% 보통학교 졸업자 즉 당시로선 신엘리트층이었다.

혈서 지원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 제도 첫해인 1938년 혈서 18통으로 시작하더니 1939년 50통·1940년 189통·1941년 382통으로 급증했다. 두 차례 이상 재수 끝에 일본군이 된 사람도 무려 43%다. 문득 박정희가 생각난다. 그가 만주군관학교 지원 때 나이 많은 게 문제 되자 혈서를 써서 일제에 아부했던 주인공이라고 좌파는 지금도 펄펄 뛴다.

그렇게 응시 자격을 얻었던 사람이 박정희라서 그는 친일파라고 그들은 떠들어댄다. 그 따위 소릴 하면 당장 속은 시원할 수도 있다. 단 일본군 사병이 되고자 열망했던 지원자 80만여 명의 집단 멘털리티를 그들은 결코 이해 못 한다. 근현대사의 실체도 모른다. 육군특별지원병제가 민족 말살 정책이라며 일본을 욕하는 것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뿐 아니다. 현재도 우린 당시 징용·학병·지원병에 나가라고 일제 말기에 연설하고 글을 썼다는 이유로 인촌 김성수·이화여대 김활란·춘원 이광수·시인 서정주·소설가 모윤숙 등을 비난한다. 그 때문에 이른바 민족정기가 흐려졌다는 투다. 그렇다면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사례를 들려주고 싶다. 다 알듯 간디도 영국군에 지원하라고 인도 젊은이들에게 호소했다.

그렇다고 인도 사람들이 간디를 두고 “사꾸라 친영파”라고 하던가. 아니다. 간디의 포석은 전쟁이 끝난 뒤 영국으로부터 참정권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을 저들이 다 안다. 그에 비해 친일파 단죄로 날밤을 새는 우린 제정신이 아니다. 한국인은 제국주의 시대의 문법을 모르는 역사 바보란 뜻이다.

육군특별지원병 애길 꺼낸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육군특별지원병 출신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후 군문(軍門)에 들어가 국군 장성에 오른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무려 86명이다. 장성이 아니라도 장교 신분으로 6·25 때 용전분투하며 대한민국을 구한 사람은 부지기수다.

6·25의 흐름을 바꾼 춘천 대첩의 주인공 6사단 7연대장 임부택 중령부터 육군특별지원병 출신이다. 정 박사는 그를 두고 “국군 최고의 영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 말고도 일본군 출신으로 이화령 전투의 함병선 장군, 기계·안강 전투의 송요찬 장군, 소란하던 국민방위군 사건을 정리했던 최경록 장군, 백암산 전투의 박경원 장군도 “멸공의 횃불 아래 죽기를 다짐했던 조국의 간성”이었다.

그들은 식민지 시절 일본군 신분으로 현대 군대의 메커니즘을 몸으로 익힌 첫 세대였고, 그걸 토대로 대한민국을 일궈 낸 영웅들이다. 때문에 우린 ‘충성과 반역’의 질문을 되물어야 한다. “20세기 대한민국사에서 이들은 어떤 존재들이며,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좌파 사관에서 벗어난 진짜 현대사 연구는 지금부터다. 저들에게 휘둘려 온 대중도 깨어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