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21] 마지막과 처음이란 동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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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고 쓸쓸한 수다의 이유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01 06:30:37

오래전엔 나도 그랬다. 종착역에 열차가 멈추고 승객들이 모두 내리면 나는 출입문을 닫은 뒤 운전실을 나왔다. 객차를 차례로 통과해서 열차 맨 끝에 있는 반대쪽 운전실로 옮겨 갔다. 머리가 꼬리가 되고 맨 끝이 처음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열차를 차고에 입고시키고 운행 스케줄을 마감할 때였다. 그때만큼은 나도 지상으로 올라갔다. 텅 빈 열차의 실내 전등을 모두 끄고 터널에서 세상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엔 석양이 물들고 어느 날엔 달이 차올랐다. 여름엔 무성한 나무가, 겨울엔 앙상한 가지가, 낮은 지붕들과 높은 건물들이 휙휙 지나갔다. 구름이 자욱한 검은 하늘로, 햇살이 쏟아지는 넓고 푸른 하늘로 새들이 날아올랐다. 때론 비가 내리고 때로는 눈이 퍼부었다.

다시는 달리지 않을 것처럼 제어핸들을 반납하고 전동차 편수와 운행 종료시각을 기록하면 비로소 하루의 끝이었다. 하지만 열차는 그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청소를 하고 안전 점검을 마친 열차는 다음 날 말갛게 단장한 몸으로 선로 위에 섰다. 부지런히 새벽을 연 승객들을 싣고 다시 처음처럼 달렸다. 끝까지 가서 그곳이 끝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지점, 그 자리가 종점이고 종착역이었다.

“300미터 전방에 길이 막히고 있습니다. 서행하겠습니다.”

버스 기사는 운전 도중 곧잘 마이크를 잡고 고속도로 상태를 설명했다.

“승용차와 승합차의 추돌사고입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는 것 같습니다.”

목적지까지 남은 예상 시간이나 휴게소 정차에 대한 안내뿐 아니라 교통방송 리포터라도 되는 양 현장 상황을 전달했다.

“오늘도 승객 여러분을 모시고 달릴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화장실이 급하거나 몸이 불편하면 지체 마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승객 여러분을 위해 앞쪽에 생수와 비상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식당 주인에게 커미션 받는 일 절대 없습니다만, 이 휴게소의 장터국수는 특히 맛있습니다. 출출하시면 후루룩 맛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지켜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겨우 1분을 늦을 뿐이지만, 기다리는 승객 스물여덟 분, 한 분 한 분의 1분을 합치면 28분을 손해 보는 것이니까요.”

정차할 역과 출입문 방향은 여성의 목소리가 녹음된 자동 음성 장치가 안내를 했지만 정차 시간이 긴 환승역에서는 나도 디제이처럼 그날의 날씨, 기분 좋은 뉴스, 책이나 신문에서 읽은 좋은 구절들과 함께 행복한 날이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승객들에게 전달하곤 했다.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할 리는 없었지만 내가 운전하는 열차에 탔던 승객 중 몇 명은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며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주기도 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기관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앉은 채 졸거나 화장을 하거나 멀거니 서 있을 뿐이었다. 더 많은 사람은 골똘히 손안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일까, 그러나 ‘ㅋㅋ’나 ‘ㅎㅎ’나 이모티콘이 포함된 시시한 수다를 적고 있는 걸 확인하면 쓸쓸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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