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22] 나 지금,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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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하루의 버킷 리스트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02 06:30:10

수많은 문자와 메시지에 무의미한 글을 쉼 없이 찍어 보내는 것은 나를 상대에게, 상대를 나에게 각인시키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무심한 척 가장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눈길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블로그든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온종일 매달려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나 여기 있어요!”라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고속버스 운전기사의 방송을 들으며 나의 안내방송 역시 사람들에게 나를 기억시키기 위한 욕망의 발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명감이든 책임감이든,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이 두려워 끊임없이 나 자신을 각인시키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려는 수단이 아니었을까.

“나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당신도 절 기억하시겠지요? 여러분은 저에게 소중한 승객이며 저의 정성스러운 서비스를 받고 계십니다. 그러니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껴 보십시오. 기쁘지 않으십니까? 제가 여러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저라니까요. 절 기억해 주시겠지요?”

설핏 졸음에 빠지다가도 기사의 목소리에 불려 나와 몇 번이나 잠이 깼다. 쓸데없는 잔소리가 성가시고 짜증이 났지만 그가 친절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에게 나를 각인시킨 것이 내 죽음을 상징하던 해적 외눈 안대였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었지만 버스 기사의 존재를 느낄 때마다 저 사람은 나를 기억해 주겠구나, 안심이 되었다. 지금 나는 사람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두 눈을 내보일 수 있었다. 두 눈으로 명징하게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큰 소리로 나도 외치고 싶었다.

“나 지금, 여기 있어요!”

“나 지금, 여기 왔어!”

말하고 싶었다. 건강을 회복해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하운과 함께 서울에 올라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서운하면서도 한편 다행스럽게 생각된 것도 그래서였다. 모든 게 잘될 거라고 낙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하루였다.

한 번도 아내가 원하는 만큼 살가운 가장 노릇을 하며 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텔레비전 프로에 나오는 연예인 아빠들처럼 함께 뒹굴고 달리고 마음껏 안아 주지 못했던 아이들과 단 하루라도 놀아 주고 싶었다. 멀리는 가지 못해도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 주고 시소를 태워 주고, 저녁엔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싶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멈췄을 때 전화할까, 몇 번이나 망설였다. “나 여기 왔어.” 도착해서 전화하면 깜짝 놀라겠지. 아내는 믿을 수 없어 하면서도 한걸음에 뛰어 내려올 것이다. 아이들도 두 팔 벌려 나를 향해 달려올 것이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아내의 행복한 미소를, 1년 만에 이루어지는 가족의 상봉을,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나는 머릿속에 그리고 또 그렸다. 이혼은 단지 아내가 나를 벌주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내가 아직 이혼한 아내를 아내라고 부르는 것도, 아내가 나를 여보, 하고 부르는 것도 그것을 증명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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