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5.5º
미세먼지 좋음
여수 29.8º
미세먼지 보통
울산 27.4º
미세먼지 보통
제주 31.7º
미세먼지 좋음
)
[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본격적인 탈출 계획
신 감독은 1985년 말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출장을 가게 됐다. 그는 인터콘티넨탈 부다페스트 호텔에 머물면서 동행한 북한 경호감시원들의 눈을 피해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친구 김인환에게 전화를 했다. 김인환은 함경북도 경성고등보통학교 동기동창이었다.
“누구야?”
“나 신상옥이야.”
“자네 지금 거기가 어디야?”
“나 지금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와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머물고 있는데 빨리 와서 나를 좀 만나 주게.”
친구 김인환은 다음 날 득달같이 비행기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날아가 신상옥을 은밀하게 만났다. 그때 신 감독은 자신의 탈출 계획을 이야기했다. 김일성 부자가 여러 가지로 잘해 주고 있지만 그 숨 막히는 사회 제도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목숨을 걸고 탈출하겠으니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김인환은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지 물었다. 신 감독은 남한에는 북한의 간첩들이 우글거리니 위험해서 갈 수 없고, 미국으로 가고 싶으니 미국 정부에 도움을 청해 달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김인환은 “그러면 구체적인 계획을 짜서 연락해 주면 내가 자네의 뜻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신 감독과 최 여사는 오래전부터 일제 소니 휴대용 녹음기를 구입해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것을 테이블 위에 놓고 “위대한 수령님의 육성을 평생 간직해야 한다”면서 그들과의 대화를 계속 녹음했다. 그들은 신 감독의 속셈을 모르는 채 거리낌 없이 여러 가지 마음속에 있는 말까지 털어놨다. 그중에는 우리가 참고해야 할 중요한 정보도 들어 있고, 북한의 영화 발전을 위해 신 감독 부부를 북으로 납치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김정일의 고백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신 감독과 최 여사는 김일성 부자가 알게 모르게 이 일을 진행해 카세트 네 개 분량을 녹음해 두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이불 속에서 (이름을 밝히기 꺼려 하는) 일본인 친구에게 일본어로 자신이 북한 탈출을 계획하고 있는데 나중에 연락이 가면 비엔나로 와서 도와달라는 내용의 말을 녹음했다. 그 일본인은 교도(共同)통신 비엔나 특파원으로 일했던 사람으로 신 감독이 신뢰하는 친구였다.
신 감독은 1986년 1월, 다시 부다페스트에 갔을 때 뉴저지에 있는 김인환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김인환의 부인이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안타까워서 다그쳐 물으니 김인환이 지난 겨울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신 감독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머리 회전이 빠른 신 감독은 침착하게 김인환의 부인에게 가족 가운데 자신을 만나러 와 줄 다른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김인환의 부인은 스무 살 먹은 대학생 딸 마리가 있다고 했다. 신 감독은 마리를 급히 자신에게 보내 달라고 애원했다.
다음 날 마리가 부다페스트로 급히 날아갔다. 그때 마침 부다페스트 힐튼 호텔의 프론트 데스크에 일본인 청년이 일하고 있었다. 신 감독은 그를 통해 은밀한 장소로 가서 마리를 만났다. 그러고는 마리에게 미국 정부에 보내는 편지와 카세트 녹음테이프 다섯 개를 주면서 미국에 돌아가면 즉시 국무부에 등기우편으로 그것들을 발송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리는 곧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리 모녀는 신 감독에게서 받은 편지와 녹음테이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다가 1월 말 무렵에야 뒤늦게 국무부로 발송했다. 하지만 소포를 받은 미 국무부에선 중대한 사안임에도 전후사정을 고려하는 등의 배려 없이 다짜고짜 “그들은 남한 사람들인데 왜 우리가 그들 문제로 신경을 써야 하는가. 그들은 남한으로 가면 된다”며 신 감독 부부의 미국 망명 의사를 묵살해 버렸다.
비엔나에서 미국대사관으로 뛰어들어
이 문제를 둘러싸고 무슨 일들이 그 후에 진행되었는가, 무엇이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는가 하는 등등의 일들에 대해 나는 그 경위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은 분명하다.
1986년 3월13일 오후 1시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여사가 미국대사관에 뛰어들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신 감독과 최 여사는 1986년 2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후 평양으로 돌아가기 전에 영화 촬영용 기자재 구입을 위해 비엔나로 갔다. 그들은 물론 여러 명의 경호감시원과 함께였다. 신 감독은 먼저 비엔나 금별은행(Gold Star Bank)으로 갔다. 금별은행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39호실이 운영하는 대성경제연합회(대성그룹)에서 오스트리아 빈에 현지법인으로 설립한 은행이다.
신 감독은 급별은행에 비엔나 주재 북한대사관 직원과 공동명의로 예치되어 있는 230만 달러를 크레디탄슈탈트 은행(Bank Austria Creditanstalt)의 신상옥 단독명의 계좌로 이체하고 수표책을 받았다. 그러고는 사전에 연락해 둔 전 교도통신 비엔나 특파원(일본인 친구)과 은밀히 만나 경호감시원들을 따돌리고 탈출할 방법을 의논했다.
신 감독은 1986년 3월13일 아침에 경호감시원들에게 “일본 영화제작사 대표들과 영화 합작 논의를 위해 그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오찬을 하기로 했으니 따라오라”고 통보했다. 경호감시원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날 12시30분경에 전 교도통신 특파원이 호텔에 나타나 일본 영화제작사 대표단의 한 사람으로 행세하며 택시 두 대를 불러 첫차에는 자신과 신 감독 부부를 태우고 다음 차에는 북한 경호감시원 네 사람을 태우고 길을 떠났다.
택시에 오르자 교도통신 특파원은 택시 기사에게 유창한 독일어로 수단과 방법을 다해 뒤에 따라오는 택시를 따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앞차가 교차로 하나를 통과하자마자 빨간 신호등이 들어와 따라오던 택시를 차단시켰다. 그러자 교도통신 특파원은 택시 기사에게 최대한의 속도로 미국대사관으로 질주해 달라고 했다. 그때가 오후 1시,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신 감독과 최 여사는 죽을힘을 다해 미국대사관 정문을 향해 달렸다. 신 감독은 최 여사의 손도 잡지 않은 채 혼자 앞에서 달리고 최 여사는 뒤에서 신발 한 짝이 벗겨진 채로 달렸다. 훗날 최 여사는 이 일로 신 감독을 원망하곤 했다.
영화 같은 이야기, Welcome to the West!
전 세계 미국 외교 공관의 경비는 미국 해병대가 담당한다. 공관 직원들은 건물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하며 외부 방문객은 정문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방문 목적을 밝힌 다음 내부에 연락해 승인이 나면 신분증을 정문 경비실에 맡기고 출입증을 가슴에 달고 들어간다.
그런데 신 감독과 최 여사가 뛰어들자 정문에서 신분증 검사 같은 것도 없이 육중한 철문이 자동으로 열렸다가 그들이 들어서자마자 도로 닫혔다. 그러고는 미국 해병대원 하나가 나타나 아무 말 없이 그들을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뒤늦게 따라온 북한 경호감시원들은 대사관 정문 밖에서 소란을 피웠다.
신 감독과 최 여사는 눅눅하고 곰팡내 나는 지하실에 들어가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턱수염이 더부룩한 미국 외교관 한 사람이 한 손에 오렌지 주스와 다른 손에는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층계를 내려왔다. 그는 오렌지 주스는 신 감독에게, 장미꽃 한 송이는 최 여사에게 주면서 “서방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west)” 하고 인사를 했다.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4
좋아요2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연재기획 ‘CIA와 대한민국’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