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1월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직무집행정지’를 명령했다. 이에 윤 총장은 ‘자신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는 곧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을 보수 정당의 대권주자로 탈바꿈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이후 2021년 11월5일 최종 경선에서 공식 후보자가 되었으며 2022년 3월9일 대선 결과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를 약 0.1% 차이로 이기고 2022년 5월10일 20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로부터 2년 7개월이 흐른 후인 2024년 12월3일 저녁 10시30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비상계엄 선포’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에서 ‘계엄 해지’를 의결함에 따라 실패했으며 이 과정에서 계엄에 동원되었던 특전사령관을 비롯해 주요 지휘관들은 물론 방첩사 요원들까지 명령을 이행하지도 않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2017년 계엄의 실체가 없었음에도 이를 문제 삼아 이재수 기무사령관에게 인격 모독에 가까운 극도의 모멸감을 줌으로써 자살을 하게 만들고 박근혜 대통령·국가안보실장·비서실장·국정원장 4명을 구속시키고 국정원 직원 400여 명을 검찰 조사시키고 40여 명을 구속시켰던 장본인이 바로 지금의 대통령이다. 그런 그가 계엄을 선포했던 것이다.
만일 그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어 일각의 주장대로 국회를 장악하고 선거관리위원회 서버에서 부정선거 증거를 정말로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과연 국민 모두가 그것을 믿고 대통령을 지지하고 계엄이 정당하다고 했을까. 아쉽게도 한국인들에게 진실은 중요치 않다. 쉽게 선동당하는 민족성 때문에 계엄 이후의 모든 상황과 결과는 오히려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 분명하다. 계엄을 구상한 이들은 이런 것조차 생각하지 못했나.
정작 검찰청 시절부터 2인자로 키웠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대통령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고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으며 계엄의 핵심 세력이었던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민주당 소속 김병주·박선원 의원과 ‘대통령과 국방장관을 부정’하는 동영상을 실시간 송출하고 가장 입이 무거워야 할 홍장원 국정원 차장은 “모든 것은 대통령의 지시이며 자신은 거부했다”고 언론에 말했다. 계엄의 정당성은 차치해 두더라도 ‘이렇게 쉽게 변절하는 자들’을 데리고 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은 계엄이라는 엄청난 일을 하고자 했던가. 아주 치밀하지 못한 계획, 지시를 따르지 않는 부하들, 누가 봐도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국회 질의에서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말을 하려 하자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어디서 쫑알쫑알 거리느냐”고 하며 계엄 참가자도 아닌 국방부 차관과 전군(全軍)에게 극심한 모멸감으로 주었으며, 추미애 의원은 육군참모총장을 ‘귀관’으로 호칭하기에 이른다. 근본적으로 국가를 지키는 군에 대한 예우가 전혀 없다. 아주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국회의원들은 그 신분이 공무원법에 따라 차관급 대우에 불과하다. 자신들이 국정원장을 했건 법무부장관을 했건 지금은 차관급 국회의원들이다. 때는 이때다 하며 군을 무력화시킬 기회가 왔으니 군 전체를 아주 짓밟으려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모든 것을 차치해 두고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거부한 특전사 사령관, 그 특전사 사령관의 명령을 거부한 1공수여단장·707 특임대장 등 특전사가 이러하니 다른 군은 볼 것도 없다. 군대의 가장 핵심적 요인은 좋은 무기가 아니라 무조건적 상명하복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대한민국 군대는 상관의 명령을 ‘자의적 판단으로 거부’하기도 하고 ‘허가도 없이 방송에 나와 변명’하고 신변을 보호받으려는 그런 군대로 전락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군의 명령체계가 붕괴’된 것이다. 현재 가장 신이 난 것은 북한의 김정은일 것이다.
더욱이 김용현 국방장관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5.16’은 6·25전쟁, ‘12.12’는 월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군인들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만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명령체계가 유지되고 무엇을 해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분과 정당성·합법성 그런 것들이 아니라 이것이 5.16과 12.12의 ‘핵심 동인’이었다. 국방부 장관이라는 ‘타이틀’ 이전에 이처럼 허술한 작전을 계획한 그가 과연 전시(戰時)에 군을 통제할 수나 있었을까.
그리고 좌파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국정원이다. ‘중요 사안은 전직 국정원장 박지원에게 보고’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나? 어설픈 계획, 군을 장악하지도 못한 지휘관들, 배신에 앞장 선 2인자, 이런 요건 속에 일을 벌인 것인가. 무엇보다도 2024년 12월에 벌어진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사건이 ‘국민의 의식 개혁’이 아닌 계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전근대적 착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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