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미 라라가 짐작하고 있던 대로, 준호는 단순히 복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학교에서 제적당한 상태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속이고 있었다. 아무도 저간의 내막은 모른 채, 그녀를 모스크바로 불러들였던 거였다.
“말해 봐, 복학 못 하지? 학교에서 복학 허용 안 하는 거지. 제적당한 거 맞지? 그러면서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여기로 불러들이게 입 다물고 있었지?”
탈의실에서 다른 고려인 여자들과 담배를 피우던 알료나가 뛰어나와서 라라와 준호 사이를 가로막고 나섰다.
“아니, 여자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잘 먹고 잘 입고 호강하고 있다가 왔으면 됐지, 왜 여기까지 나와서 남편 일하는데 이 소란을 피우는 거예요.”
여태껏 알료나가 그렇게 분통해 하고 한편으로 기세등등했던 이유가 그거였다. 자기가 일해서 벌어준 그 돈으로 라라가 서울에서 호의호식했다고 믿었던 거였다.
남편의 월급 봉투 한번 받아보지 못한 라라는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호강했다는 말을 듣고서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알료나 씨, 무슨 얘길 하는 거죠. 내가 언제 저 사람이 보내주는 돈으로 호강하다가 왔나요. 나는 남편에게서 돈 받아 쓴 일 없습니다. 내가 일해서 벌어서 애 키우다가 다시 오게 된 겁니다. 내가 원해서 온 것도 아닙니다. 모스크바에 와서 일을 도와 달라고 지인들이 요청했고 시어머니 부탁도 있고 해서 온 거예요. 가족끼리의 약속 이야긴데 왜 제3자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개입합니까. 이렇게 경우 없는 분인 줄 몰랐네요.”
알료나는 라라의 거친 듯 차분하고 낮은 음성의 반박을 듣고는 당혹스러워했다. 얼굴이 경련으로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날 언쟁 이후 알료나는 결국 떠났다. 기분 나빠서 일하기 싫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인정 없는 젊은 여자가 주인이라고 갑자기 나타나서 그동안의 은혜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던 알바생을 쫓아냈다고 소문이 퍼졌다.
여자들은 남녀 분쟁에서 은근히 남자의 편을 들었다. 같은 여자로서 자기가 그런 일을 당했어도 그런지, 속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라라의 이름과 얼굴조차 모르면서 구로식당 여자라고 부르면서 험담한다는 거였다. 식당 이름이 파랑새로 바뀐 후에도, 그들은 자기들이 촌스럽다고 비웃는 구로반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길 고집했다.
그런 그들은, 준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게 못생긴 여자’ 알료나에 대한 동정심은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그들 부인네들이 파랑새에 발을 끊은 이유는 이러했다.
“여자가 서울에서 갑자기 나타나서는, 그동안 죽을둥살둥 일해온 알바 알료나 씨를 쫓아냈대요.”
불쌍한 처지의 여자를 위한 그들의 동정과 같은 여자로서의 연민은 그렇게 발휘되었다. 그들에게 라라는 불운한 여자가 아니라 남자 잘 만나 운 좋고 팔자 좋은 여자로서 공공의 적이었고, 알료나는 그런 그녀에게 모욕당한 불쌍한 여자였다.
그들의 자기 합리화였지만 라라는 꼼짝없이 당해야 했다. 그들은 고객이고 그녀는 식당 주인이었다. 그녀들은 그녀들만의 방식대로 충분히 정당하고 합리적이고 영악했다. 배은망덕한 라라를 단죄하고 싶은 심리는 훌륭한 정의감으로 포장되고 정당화되어 그 좁은 교민 사회에서 작지 않은 힘을 발휘했다.
그들은 라라를 비난했다.
“남자 능력이 좀 없으면 어때. 부부면 서로 이해하고 참고 용서하고 살아야지.”
모스크바의 잘 나가는 한가람식당의 임 실장이 라라를 찾아온 것은 구로를 파랑새로 이름을 바꾸면서 시작한 새 단장이 마무리되어 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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