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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었어요. 불이 났을 때 소화기를 쓰라고 배웠으니까 바로 사용한 것뿐입니다.”
서울 지하철 이촌역 열차 안에서 보조배터리 발화로 불이 번지는 순간, 시민 이우석 씨(48)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달아나는 승객들 사이에서 소화기를 들고 불길을 잡아내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냈다.
8월27일 밤 10시30분경, 동작역을 출발한 열차 안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소지한 보조배터리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불길이 번졌지만, 승객 대부분은 놀라 달아났다. 이 씨는 즉시 소화기를 집어 들고 불을 진화했다. 불길은 1분 남짓한 시간 안에 잡혔고,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열차 안에는 약 100명이 타고 있었지만, 다행히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군 복무 시절부터 예비군·민방위, 더 나아가 일본 체류 시절까지 꾸준히 안전 교육을 받아왔다는 그는 “몸이 기억해서 움직였다”고 그 순간을 회상했다. 불길이 잡힌 뒤에도 일본인 관광객과 경찰, 소방관 사이에서 통역까지 도우며 끝까지 현장을 지켰다. 그는 “당시 배터리 주인이 19세 일본인 청년이었는데, 영어로 ‘I’m sorry’만 반복하더라. 당황한 모습이 보여 일본어로 대신 설명해주며 경찰과 소방관에게 상황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 씨의 침착한 대응은 관계 기관의 표창으로도 이어졌다. 지난달 27일 용산경찰서에서 감사장을 받았으며, 그리고 서울교통공사 추천으로 서울시의회에서도 이달 21일 표창장을 받기로 결정됐다. 그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을 막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이렇게 칭찬과 상까지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그는 “군에서 배운 교육이 전역 후 사회에서도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며 “훈련받은 것이 결국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전교육은 단순히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위기 순간에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우석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Q. 어디에서 오신 누구십니까?
저는 서울 도봉구에 사는 이우석이라고 합니다. 1978년생, 올해 48세이고요. 평소에는 현대카드 고객센터에서 외국인 전용 상담을 맡아 영어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Q. 화재를 처음 발견했을 때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8월27일 저녁 10시 30~40분쯤, 동작역을 출발해 이촌역으로 향하던 열차 안이었습니다. 일본어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이었는데, 갑자기 바닥에 떨어진 가방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순간적으로 드라이아이스인 줄 알았지만, 곧 탄내가 진동하면서 배터리 발화임을 알게 됐습니다. 주위 승객들은 놀라 뒷칸으로 이동하며 자리를 피했지만 저는 바로 소화기를 찾았습니다.
Q. 그 순간 소화기를 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용기라기보다 그냥 본능이었습니다. 군대 현역 시절 소방훈련을 수없이 받았고, 예비군·민방위 때도 반복적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 기억이 몸에 남아 있어서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손과 발이 먼저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Q.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불을 끈 용기가 대단합니다.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솔직히 두려움보다는 “불이 났으니 빨리 꺼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옆에 소화기가 있었으니 당연히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길이 번지는 동안 ‘만약 늦으면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긴 했습니다.
Q. 소화기를 사용해 불길을 잡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불길이 강하게 번지기 전이었고, 소화기 사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연막탄처럼 연기가 자욱해 시야가 가려졌지만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분사했습니다. 1분 정도 만에 불길을 잡을 수 있었는데, 만약 조금만 늦었더라면 상황은 훨씬 심각해졌을 겁니다.
Q. 불을 끄고 난 직후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객차에 백 명 넘는 승객이 있었는데, 다치거나 피해를 본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때 일본인 관광객이 계속 “I’m sorry”라고만 했는데, 제가 일본어로 상황을 대신 설명하며 경찰과 소방관에 전달했습니다. 현장을 끝까지 지켜야겠다는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Q. 주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당시엔 승객들이 놀라 대부분 피했고, 저도 당시는 반응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인터넷을 보니 블로그와 유튜브에 현장 소식이 많이 올라왔더라고요. 댓글로 ‘의인’이라는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 행동을 더 조심하고 잘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갖게 됐습니다.
Q. 이번 일을 겪고 난 뒤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안전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군대 시절 받은 훈련이 20년 넘게 지나 사회에서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평소 받은 훈련이 결국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되더군요. 저는 단지 배운대로 했을 뿐인데, 교육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확인했습니다.
Q. 용산경찰서에 감사장을 받으셨다면서요?
네, 감사하게도 지난달 27일에 용산경찰서에서 감사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서울교통공사 추천으로 서울시의회에서도 표창장을 받기로 결정됐습니다. 날짜는 21일로 통지 받았습니다.
Q.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화재는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누구나 두렵겠지만, 평소 안전 교육을 통해 몸이 기억한다면 위기 순간에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분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작은 훈련과 준비가 위기의 순간에는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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