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진료 뒤 약국에서 처방약을 받는 과정은 익숙한 일상이다. 약사는 처방에 따라서 약을 조제하고 올바른 복용법과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약국은 지역 사회에서 환자의 건강을 지키는 없어서는 안 될 1차 보건의료 거점 역할을 해왔다.
최근 대형 창고형 약국이 등장하면서 약국과 관련한 풍경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직접 찾은 현장은 넓은 공간에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의약품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창고형 약국을 찾은 방문객은 “저렴하다” “규모가 커서 궁금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약국 곳곳에 배치된 약사는 방문객에게 영양제나 일반약 복용법을 상세히 안내하며 복약 지도 역할을 수행했다.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이 진열된 넓은 매장과는 달리 전문의약품 조제 구역은 일반 약국에 비해 다소 협소했다. 현장에 있는 약사에게 “일반 처방전 조제가 가능하냐”고 묻자 “탈모약과 비만약만 처방 조제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민이 일상에서 흔히 찾는 감기나 만성질환 등
일반적인 처방 조제 대신 비급여로 수익성이 높은 치료제 위주로 취급하는 ‘선택적 조제’를 하고 있는 셈이다.
대형 약국은 해외에서 먼저 활성화됐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CVS나 월그린 같은 대형 체인 약국이 보편화되어 있다. 땅이 넓고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는 약국이 단순 조제를 넘어 예방접종과 간이 진료, 다양한 헬스케어 제품 구매를
한곳에서 해결하는 종합 건강 관리 창구 역할을 한다. 다만 대형 약국 확산에 따른 부작용도 존재한다. 동네 약국이 폐업하면서 외곽이나 농촌 등에 거주하는 시민의 약국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 병·의원이
많고 의료 접근성이 높아 대형 약국의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또한 약업계에서는 창고형 약국의 확산이
외부 자본 유입과 상업화로 이어지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9월29일
외부자본의 약국 개설 개입과 편법 운영을 사전에 차단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자
대한약사회는 “의약품의 과도한 상업화와 오·남용을 막고 약국의
공공성과 약사의 전문적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의사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약사는 디오스코리데스 선서를 한다. 약학의
성인이라 불리는 그의 이름을 딴 선서문에는 ‘이윤 추구에 앞서 환자의 이익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숭고한 약속이 담겨 있다. 약국의 본질이 돈이 아닌 환자의 건강에
있음을 다짐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약국이 대형화·체인화 과정을 거치며 유통의 효율성과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은 시대적 흐름일 수 있다. 그러나 약국이 보건의료 기관으로서 가지는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상업적 효율성과 지역 보건 거점으로서의 위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보건의료인으로서 디오스코리데스
선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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