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리 사회에는 심리적 안정을 꾀하는 ‘힐링(healing)’ 열풍이 불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 지친 이들을 대상으로 ‘힐링카페’, ‘힐링여행’, ‘힐링음악’, ‘힐링도서’ 등 ‘힐링’을 주제로 한 마케팅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출근 시간대 서울 도심의 한 지하철 역내 전경 ⓒ스카이데일리
“아, 힐링하러 가고 싶다”
최근 기자의 입버릇이다. 최근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을 넘어 심리적 안정을 꾀하는 ‘힐링(healing)’이 각광받고 있다. ‘힐링’ 열풍은 사람들이 신체의 고단함보다 정신적으로 더 지쳐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 사회는 ‘힐링카페’, ‘힐링음악’, ‘힐링도서’ 등 ‘힐링’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과연 ‘힐링’ 상품들을 소비하면 정말로 우리는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 ‘힐링’이 필요한 소비자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든 사회생활을 하면 숨만 쉬어도 피곤한 법이다. 기자는 아직 20대 청춘이지만 다크서클이 사라질 기미가 없다. 주위 지인들도 마찬가지다.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한 친구는 구직사이트를 뒤적이며 한숨을 내쉰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에 합격한 친구도 수험 기간에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며 매일 밤마다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만나면 서로 본인이 가장 힘들다고 하소연하기 바쁘다. 각자 고민을 털어놓고 나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힐링’이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우리 청춘들에게 ‘힐링’은 사치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여유롭게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청춘은 많지 않다.
‘힐링’이 절실한 기자는 취재를 빙자해 ‘힐링’을 위한 지갑을 열었다. 힐링 여행을 떠나기에는 일정상 무리가 있었기에 접근성이 용이한 ‘힐링카페’를 체험해 봤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한방카페’…스트레스 받는 젊은 고객 증가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도심 속 힐링공간으로 유명한 서촌 한방카페 ‘솔가헌’이다. 솔가헌은 현직 약사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친환경주의를 표방한 이곳은 환경호르몬 걱정이 없는 원목으로 지은 한옥과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솔가헌 ‘힐링’의 포인트는 바로 ‘한방’이다. 먹거리부터 체험까지 한방이 기본이 된다. 다양한 한방차부터 다이어트 쿠키까지 준비돼 있다. 밀가루가 안 들어가는 해독 피자는 이곳 인기 메뉴다.
▲ 기자는 서촌에 위치한 한방카페 ‘솔가헌’을 찾았다. 솔가헌은 친환경주의를 지향하며 한약사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이 곳의 힐링 포인트는 바로 ‘한방’이다. 다양한 한방차와 밀가루가 안 들어가는 해독피자, 그리고 다이어트쿠키가 준비돼 있다. 또한 족욕과 쑥뜸을 각각 1만원에 체험 할 수 있다. 사진은 솔가원 내부 전경과 한방차 ⓒ스카이데일리
대표적인 한방 체험은 족욕과 쑥뜸이다. 족욕은 20분, 쑥뜸은 30분 간 이뤄지며 비용은 각각 1만원이다. 원래 야외에서도 족욕과 쑥뜸이 가능하지만 날씨가 추워져 지금은 실내에서만 운영되고 있었다.
유난히도 추운 날에다 평일 오후였으나 카페에는 선객이 있었다. 김지영(25·여)씨는 “집에만 계시는 어머니와 좋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왔다”며 “한방차를 마시며 족욕과 쑥뜸을 했는데, 어머니보다도 내가 더 만족스러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족욕, 쑥뜸, 한방차가 제공되는 패키지(3만원)와 다이어트 쿠키(3000원)를 주문했다. 총 11가지의 한방차 중에서 몸이 무겁고 부을 때 효과가 있는 체감차를 선택했다. 한약재 향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에 얼어붙었던 몸이 가벼워지며 몸이 이완되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한방차와 함께 나온 다과와 다이어트 쿠키도 먹었다. 역시나 몸에 좋은 음식은 입에 쓰다. MSG와 설탕에 길들여진 기자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그러나 ‘건강한 맛’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반바지로 갈아입은 기자는 실내 족욕실로 안내됐다. 족욕기에는 수족냉증이 심한 기자의 체질을 고려한 한방 약초가 들어갔다. 족욕기에는 40℃의 물이 발목 위 10cm까지 채워졌다. 약간의 뜨거움을 참자 기분이 좋아졌다. 취재로 강행군한 발이 호사를 누렸다. ‘발이 따뜻해야 잠이 잘온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행복은 발에서 시작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생식기에 쑥뜸 연기를 쐬는 좌훈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좌훈을 위해서는 옷을 입은 채로 다리를 약간 벌려서 쑥뜸기에 앉기만 하면 된다. 한방차때문인지 족욕이나 좌훈때문인지 수족냉증으로 항상 차가웠던 기자의 손은 한결 따뜻해졌다.
솔가헌 매니저는 “평일에는 건강을 중요시하는 중년 고객이 많은 편이지만 주말에는 20·30대 직장인 커플 고객이 80% 이상을 차지한다”며 “스트레스를 받는 젊은 손님들이 늘어나는 추세다”고 말했다. 이어 “매장 내 좌욕과 쑥뜸기 개수가 한정돼 내년부터는 100% 예약제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애니어그램 상담 ‘심리카페’…‘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소중한 시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몸이 편해졌더니 정신적인 힐링이 하고 싶어졌다. 심리카페로 유명한 강남역 인근 ‘에어카운셀링’을 찾았다. 이곳의 힐링 포인트는 ‘애니어그램’ 상담이다. 에어카운셀링에서는 1인당 1만7000원에 음료와 함께 성격유형 검사인 ‘애니어그램’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의 성격을 9가지로 분류한 애니어그램 검사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다.
애니어그램 검사지는 총 81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검사지는 ‘나는 미래지향적이다’, ‘나는 나의 뜻대로 결정하려고 한다’ 등의 문장으로 이루어져있다. 각 문항은 5점 척도로 돼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대체로 그렇지 않다’, ‘보통이다’, ‘대체로 그렇다’, ‘매우 그렇다’ 등에 체크를 한 뒤 완성된 검사지를 카운슬러에게 제출하면 분석 결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심리카페 ‘에어카운셀링’(사진)에서는 1인당 1만7000원을 지불하면 음료와 ‘애니어그램’ 성격유형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애니어그램은 사람의 성격을 9가지로 분류하는 성격유형 검사의 일종이다. 고객들은 심리검사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 ⓒ스카이데일리
카운슬러에 따르면 기자는 지적이고 분석적인 ‘사색가’다. 또한 활동적이고 개방적인 ‘낙천가’와 조화와 평화를 바라는 ‘중재자’도 섞여 있다. 카운슬러는 이런 유형은 지식에 대한 열망이 강하기 때문에 기자라는 직업이 적성에 잘 맞는다고 덧붙였다.
사실 분석 결과를 100%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힐링 포인트는 81가지나 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자연스럽게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이 늘 부족했던 기자에게 약 1시간의 검사는 큰 도움이 됐다. 검사 결과를 보면서 본인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애니어그램은 갈등을 겪고 있는 커플에게도 유용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검사를 받아본 최진호(가명·남) 씨는 “400여일을 사귀면서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이번 성격 분석을 통해 서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됐다”며 “상대방을 이해함으로써 앞으로 더 좋은 연애를 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매장 관계자는 “최근 인간관계에 지친 직장인들과 상호 이해가 부족한 커플이 주로 온다”며 “검사를 받고 만족한 고객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벽면에다 붙여놓는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작은 위안을 얻고 가는 데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를 반영하는 ‘이태백’, ‘88만원세대’, ‘삼포세대’ 등의 신조어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청년들은 중고등학교 때는 수능점수를 위해 경쟁하고, 대학교에서는 학점과 스펙을 따기 위해 경쟁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정규직 전환과 승진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소득은 높아지는데 삶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불만. 힐링카페는 이런 젊은이들을 위해 작은 위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단지 일상에서 몇 시간 정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줄 뿐 해방구가 될 수 없다. 힐링카페가 성행 뒤에는 불행한 젊은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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