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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축은행 사태가 청와대의 공식·비공식 권력라인을 사정없이 흔들고 있다. 권력 주변에 있는 기생권력들이 독거미처럼 가장 가난한 서민들의 목숨 같은 돈을 사정없이 나누어 빨아들들인데 대한 혹독한 대가다. 공고했던 권력 네트워크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빈자들의 영혼에 의해 사정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판 가렴주구(苛斂誅求)가 횡횡하는 것을 방치하면 국가기강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할 수 있다. 후손들이 또다시 무시받지 않는 나라에 살지 않도록 이번에 국가기강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신협과 새마을금고는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인 서민금융기관이다. 과거 상호신용금고를 모태로 한 저축은행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저축은행은 신협과 새마을금고 보다 못지않게 가난한 영세상인들과 서민들이 대부분 고객이다. 그 돈들이 얼마나 금쪽같이 귀한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일이다.
최근 이들 금융기관들의 돈이 이처럼 눈물 나는 돈인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훈훈한 보도(매일경제)가 하나 나왔다. 이달 초 어느 날 신협중앙회장 앞으로 4만원이 든 편지가 날아갔다. 편지의 주인은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극도의 가난한 신협 고객의 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느 날 하루 종일 폐지를 힘겹게 주워 모아 판 돈인 목숨보다 귀중한 3만4000원을 벌었다. 하지만 어쩌다 잃어버렸다. 모든 것을 잃은 듯 넋 나간 어머니를 신협의 한 직원이 보고 사정을 물었다.
사정을 파악한 그 직원은 자신이 돈을 주웠다며 어머니에게 돈을 주고는 이내 떠났다. 옆에 있던 딸이 정황을 눈치 채고 쫓아가 그 사람에게 도와준데 감사하면서 이유를 묻자 “나도 신협직원인데 그분들 때문에 월급을 타니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며 홀연히 사라졌다.
너무 감사한 딸은 그 직원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자 신협중앙회장 앞으로 감사의 인사금 6000원을 식사비라도 쓰길 바란다면서 원금 3만4000원과 함께 4만원을 보낸 것이다. 딸의 어머니에게 3만4000원은 수백만원, 수천만원 보다 소중한 돈이다. 또한 딸의 6000원은 그 보다 갚진 가치가 더해진 따듯한 가슴이다. 그렇게 더해진 4만원은 우리 시대의 ‘정의로운 돈’이다.
요즈음 온갖 문제를 터뜨리고 있는 저축은행의 돈들이 이렇게 눈물 나게 귀하고 가슴에 맺혀 있는 깨끗한 돈들이다. 단돈 천원을 벌기위해 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추위와 싸우며 하루 종일 씨름하는 돈들도 있다. 수많은 영세상공인들이 자살로 내몰리는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 한푼 두푼 모아놓은 돈들이 저축은행에 쌓여 있다.
하지만 온간 특혜를 누리는 사회의 특권층이자 권력 네트워크는 ‘독을 품은 흑거미’처럼 이들 코 묻은 돈과 손때 묻은 돈을 사정없이 갈기갈기 나누어 찢어 먹었다. 그 중심에 이 나라를 움직이는 정부 고위관료, 거물급 정치인, 청와대 권부실세들이 줄줄이 얽혀 있다.
연일 구속대열에 합류하는 이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만감이 교차한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를 한탄하면서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이제 독거미를 잡겠다는 검찰의 칼끝이 권력의 최고 핵심인 청와대 턱밑까지 추격해 들어갔다.
검찰의 속도전을 보면 예전 같지 않아 살기마저 느껴진다. 대군권력(방통대군 최시중), 형님권력(이상득 전 의원)까지 무차별 뭉개버린 검찰이 현 권력의 성지와도 같은 ‘영포라인’을 초토화시킨 후 이제는 내밀한 권력의 안방인 청와대까지 들이닥쳤다.
검찰은 이제 대통령의 수족이라고 할 수 있는 ‘부속실 권력’이자 ‘문고리 권력’을 파고들었다. 내사중인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김희중 비서관이 전격 사의를 표하자 전 정권의 ‘부속실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하다.
제1부속실장은 대통령의 최측근 거리에서 집사 같은 역할을 한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동선을 모두 파악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권력가 대통령’이 아닌 ‘인간 대통령’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제1부속실장의 위치다.
부속실장의 ‘비공식 권력’이 장관 보다 더 무게감이 있는 배경이다. 이런 이유로 역대 정권 마다 부속실 권력의 비리가 끝없이 문제돼 왔다. 이번에도 만약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의 검찰 진술대로 부속실장이 거액의 돈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사건의 파장이 작지 않다.
대통령의 ‘공식라인 권력’들이 줄줄이 구속된 마당에 ‘비공식라인 권력’마저 문제가 터진다면 대통령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저축은행 비리의 칼끝은 이렇게 오싹할 정도로 권부의 핵심을 사정없이 헤집어 놓고 있다.
가장 가난한 서민을 건드린 대가는 이처럼 혹독하다. 가장 유약한 사회의 빈자들 먹을거리를 사정없이 먹어치운 권력과 금력 네트워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힘없는 그들의 영혼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저축은행 덫에 걸린 청와대 출신만 5명이나 되고 친·인척까지 포함하면 7명이다. 그들은 의도했든 안했든 서민들의 생명 같은 돈을 가져 챙겼거나 챙기려다가 들통 났다.
저축은행 사태는 권력말기 ‘레임덕 현상’에 의해 치부가 드러났다며 단순한 사건으로 보기에는 지나친 측면이 너무 많다. 남부럽지 않은 권력과 명예를 모두 갖고 있는 사람들의 끝없는 욕심을 적나하게 보는 듯한 한편의 리얼리티이기 때문이다.
신협회장 앞으로 날아온 한 통의 편지를 다시 떠올려 보자. 비록 작은 돈에도 감사할 줄 아는 그 딸의 마음이 애처롭고 갸륵하다. 자신의 돈이 아니면 탐하지 않는 그 딸의 마음이 수억원 이상 가는 가치를 발한다.
저축은행 사태는 신권(신하 권력)이 오만하고 방자한 사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희대의 사건이다. 대권(대통령 권력)이 절대적인 가운데서도 은밀하게 피어난 독버섯을 보는 듯 하다. 그들의 ‘기생권력’이 보여준 행태는 마치 국가가 망하는 시그널 같은 가렴주구(苛斂誅求) 행위라는 점에서 국가 기강이 무너졌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청와대 안방까지 치고 들어간 검찰의 칼날이 어떻게 마무리 수순을 밟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지금 국가기강을 세우지 않으면 또다시 국가적으로 환란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그 환란이 닥치면 우리 역사는 수십년을 뒷걸음질 치고 우리 후손들은 또다시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의해 무시 받고 가난하게 산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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