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에 반려동물 백신을 포함하는 내용의 관련 고시 개정을 추진하자 동물의료계와 동물약업계 간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동물의료계가 “약사단체의 반대는 밥그릇 챙기기”라며 직격 비판한데 대해 동물약업계는 “수의사들이 동물용 의약품 독점권을 통해 폭리를 취하게 될 것”이라며 반격하고 있다.
특히 동물의료계는 ‘동물권’ 측면에서, 동물약업계는 ‘소비자’ 측면에서 반려동물 백신의 처방·접종 문제를 각각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양측 대립은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반려동물 백신이 수의사 처방품목으로 지정될 경우 반려동물 분양업계에도 상당한 파란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백신 처방권’ 연기 솔솔…동물의료계-약업계 3년만 재충돌
동물의료계와 동물약업계는 3년 전 백신을 동물용의약품 처방품목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한바탕 전초전을 치른바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7년 3월 행정예고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지정에 관한 규정’ 개정안에 개의 경우 디스템퍼(홍역), 디스템퍼+전염성간염, 디스템퍼+전염성간염+파보바이러스+파라인플루엔자 등을, 고양이의 경우 전염성복막염, 비기관염바이러스+칼리시바이러스+범백혈구감소증바이러스+클라미디아 등 반려동물의 생독백신제제를 대부분 포함시켰다. 사실상 반려동물의 모든 백신을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의약품으로 묶은 셈이다.
반려동물 백신 판매가 봉쇄될 위기에 처한 동물약업계가 반발하면서 정부는 결국 같은 해 5월 판매비율이 높은 반려견 4종 종합백신(디스템퍼+전염성간염+파보바이러스+파라인플루엔자)과 심장사상충 예방약 하트가드(이버멕틴+피란텔)를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의약품에서 제외한 채 최종 고시했다.
농림식품부는 현재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확대를 위한 서면 의견조회 절차에 들어가는 등 고시 개정에 시동을 걸고 있다. 특히 지난달 25일 대한약사회, 대한수의사회, 한국동물약품협회, 동물자유연대 등이 참여한 ‘동물용의약품 지정 규정 개정안 화상회의’에서 수의사 처방대상에 반려동물 백신을 포함시킨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또한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인체용 전문의약품과 같은 수준인 60%까지 확대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동물용의약품의 오남용을 방지를 통해 동물권을 보장하고, 다빈도 의약품에 대한 소비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명분이다.
농림식품부는 이달 중순까지 관련단체의 의견수렴을 완료하고 고시개정 여부와 시기에 대한 내부 논의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또한 동물약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고시 개정 후 1년간 적용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특히 반려동물 백신 전 품목이 수의사 처방대상에 포함될 경우 일반 반려동물 뿐 아니라 펫샵과 동물농장에서 분양을 기다리거나 사육되는 반려견들도 수의사 처방을 받아야 백신접종이 가능하게 될 전망이다.
농림식품부 방역정책국 정재균 사무관은 “현재는 의견수렴만 하고 있을 뿐 고시 개정과 관련해 진행하는 사안은 없다”며 “고시 개정여부는 의견수렴 후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고 말했다.
특히 수의사 외에 개·고양이에 대한 자가 치료를 금지하고 있는 수의사법과 일반인도 동물약국에서 일부 반려동물 백신 구입이 가능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지정 고시’와의 충돌도 고시 개정 필요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재 반려동물 보호자가 동물약국에서 백신 구입은 가능하지만 주사기를 이용한 직접 접종행위는 불법이다.
동물의료계는 정부의 고시 개정 추진에 대해 동물약업계의 동참을 촉구하는 한편 비판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또한 수의사법 취지에 맞게 모든 개·고양이용 백신과 주사용 동물약품 전체를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약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병렬 한국동물병원협회 회장은 “주사기를 구입해 주사해도 된다는 생각 자체가 생명을 경시하는 잘못된 사고이다”라며 “대부분의 반려동물 보호자는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에게 반려동물의 건강상태를 확인받고 접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동물병원에서 이뤄지는 처방과 접종이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경제적 부담이 된다면, 사회적 문제 해결 측면에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면서 “광견병 백신 등 모든 반려동물의 예방접종을 공공의료로 지정해 정부에서 비용을 지원하자는 것이다”고 제안했다.
醫 “약사들, 수의사 놀음 중단해야” 비난…藥 “정부, 수의사 이익에만 매달려”
동물약업계에 대한 비판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 회장은 “현행법에서 반려동물 보호자가 백신을 약국에서 구입해 반려동물에게 주사행위를 하면 범법자가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약사단체는 ‘수의사가 백신을 독점한다’, ‘수의사 배불리기’라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비용부담으로 인해 백신 접종율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를 왜 약사단체에서 하느냐, 그 문제는 정부와 수의계가 걱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약사들이 수의사 백신처방에 반대하는 배경에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대한수의사협회 역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 지정 확대’를 검토·추진하면서 약사단체들의 반대가 잇따르고 있다”며 “본인들만의 이익이 아닌 동물의 생명과 건강에 초점을 맞춰 전향적으로 협조할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또한 “약사들이 아무 제약 없이 약을 팔겠다는 목적만으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의 확대 지정을 반대하는 모습은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약사들은 충분한 지식이나 공중보건학적인 고려 없이 일반인도 인터넷 검색으로 알 수 있는 수준의 단편적 정보로 동물용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약사들은 수의사 놀음을 중단하고 국민보건 향상을 위한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주기 바란다”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반면 동물약업계는 동물병원 진료비가 천차만별인데다 진료내역 또한 공개되지 않는 국내 동물의료 환경에서 백신 처방권마저 수의사에게 주어진다면 진료비·약품비 폭리로 인해 소비자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달 동물약국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반려동물 보호자 81%는 동물병원에서의 접종비에 부담을 느끼고, 67%는 동물병원에서만 반려동물 예방접종을 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동물약업계는 동물의료계 보다 정부를 향해 비판의 방향타를 맞추고 있다. 김성진 대한약사회 동물약품이사는 지난달 25일 화상회의에서 “보호자가 요청하는 경우 수의사는 처방약 이름, 용량 등 처방 내역을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약값과 진료비를 분리해 동물 보호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을 인체용 전문의약품과 같은 수준인 60%까지 확대하겠다는 농림축산부의 입장은 국민의 이익보다 수의사 이익에 집중하는 본말이 전도된 행태다”며 비판했다.
김 이사는 “농림식품부는 소비자 보호 대책없이 백신·심장사상충약을 수의사 처방 품목으로 확대해 수의사 독점을 강화하는 일에 집중할 때가 아니다”며 “반려동물 보호자 대다수가 동물병원 진료비와 약값 폭리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헌수 대한약사회 대외협력실 국장은 “문제는 보호자 중심이냐 동물중심이냐다”며 “정부가 합리적 기준에 근거한 접근방식이 아니라 수의사 중심으로 풀어 나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반려동물 관련 비용지출은 보호자의 몫이다”며 “의약품의 안전성과 비용, 반려동물 보호자의 접근성 등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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