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 한 개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가요. 최하 5000만원에서 7000만원, 좀 더 완성도 높은 것을 원한다면 억대도 가볍게 넘기도 해요. 게다가 가마라는 것은 종합예술이에요. 가마 장식에는 매듭이나 은입사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마를 만들어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무수히 많은 국가행사를 함께하며 가마를 만들어왔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마음에 차는 제대로 된 가마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요. 언젠가는 꼭 한 번 다른 장식품 분야 장인분들과 협업해서 완벽한 가마를 만들어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조선 비운의 왕’ 단종의 어진이 최근 공개됐다. 단종의 얼굴을 그린 어진은 오랜 기간 장릉재례, 국장 재현 등의 행사를 통해 단종을 추모해온 영월군과 권오창 화백이 역사적 고증을 참고해 추사로 제작했다. 그렇게 그려진 단종의 어진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심의를 통해 국가표준영정 10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어진 복원에 힘쓴 영월군 측은 장릉 경내 단종역사관에 어진을 봉안하겠다고 밝혔다.
어진의 봉안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물품이 몇 가지 있다. 왕의 어진을 운반하는 특별한 가마인 ‘신연’과 어진을 모시는 처소인 ‘진전’도 그 중 하나다. 여러 과정을 거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단종의 어진 봉안에 쓰인 신연과 진전을 만든 이강연 전통가마 제작 기능 전승자(70)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양을 사랑한 소년, 이야기 담긴 가마 문양에 빠지다
이강연 전승자는 소년시절부터 문양을 좋아했다. 사군자를 뜻하는 매화·난·국화·대나무 무늬 매듭, 장수를 뜻하는 십장생 문양 등 우리 전통 문양 속 그림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여러 전통문양이 어우러져 멋을 자아내는 우리 전통 고가구 복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원래 고가구 복원만 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국립극장장으로 계셨던 허규 선생(2000년 타계)께서 제 가게를 찾아오셔서 가마를 한 번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권하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이었는지도 몰랐고, 가마 제작에 별 뜻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가마 설계도를 그려서 사무실로 가져와보라고 해서 하나 그려가지고 가져갔는데 큰 금액을 제시하시면서 계약을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마음에 드셨었나봐요. 그렇게 가마 제작을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에 일본의 ‘사천왕사 왔소’ 축제에서 가마를 20대 정도 제작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가마 관련해서 남아있는 사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문양을 좋아하다 보니까 백제 문양 같은 것을 참고해서 건축형을 설계했어요. 그때 고구려의 국사연이니 하는 가마도 많이 만들었어요. 그렇게 가마 제작을 시작했죠.”
가마 제작을 시작하고 나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이 전승자는 설명했다. 가마를 제작하려 해도 남아있는 사료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컸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왕실의 마지막 적손인 이구 황세손의 국장을 치렀을 때도 국상 때 사용하는 큰 상여인 ‘대여’의 사료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당시 일본에서 숨진 이구 황세손의 시신이 국장을 위해서 창덕궁 낙선재로 돌아왔는데 시신을 옮길 대여가 없었어요. 문화재청에서도 국화꽃으로 덮인 리무진으로 시신을 운송하자느니 아니라느니 의견이 분분했던 상황이었고요. 저 또한 대여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만들어본 적도 없어서 곤란했지요.”
“그러다가 우연찮게 지인을 통해서 이방자 여사가 가지고 있었다던 장례식 사진을 입수할 수 있었어요. 그 사진 속에 있는 대여의 모습을 겨우 찾아내서 제작에 들어갔죠. 당시 국장이 치러지기로 예정된 날짜까지 매우 빠듯한 일정이었기 때문에 마음도 급했어요. 그래도 그 사진이 남아 있어 대여를 복원하는 데 성공하고 시신을 운구할 수 있었어요.”
이구 황세손의 국장을 통해 국장에 쓰인 기물들에 대해 배워 제작할 기회를 얻었던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영월군청과 협업해 단종의 국장에 필요한 기물들도 모두 제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만든 진전과 신연은 단종의 어진이 모셔진 채로 영월군 단종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완벽한 가마에는 정확한 사료와 역사적 근거가 밑바탕 돼야
오랜 기간 가마를 제작하며 여러 국가행사에도 도움을 줬던 이강연 전승자는 가마를 제작할 때도 남다른 소신이 있다. 어릴 적부터 문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던 만큼 그는 가마 제작을 할 땐 각 가마에 어울리는 문양을 정확히 새기는 것을 중요한 철칙으로 여긴다.
“가마는 가구와는 다르게 사람이 타는 물건이다 보니 중요한 점을 찾으라면 첫째는 견고함, 둘째는 가벼움을 꼽을 수 있겠네요. 견고해야 안전하고 가벼워야 들기 좋으니까요.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가마마다 주어진 문양이 잘 새겨져야 하는 것이죠. 특히 민간에서 사용하는 가마가 아닌 궁중의 가마들은 법도와 질서에 따라 가마에 새겨지는 문양이 모두 달라요.”
“그렇기에 가마의 사용처와 그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잘 알아야 하죠. 저라고 해서 모든 가마 문양의 속뜻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마와 같은 기물들의 진정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료를 탐구하기도 하고 학자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가마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알고 제작하는 것과 그저 모습만 보고 본따 만드는 것은 명백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니까요.”
문양을 가장 중시하는 이 전승자는 그간 제작한 가마 중 가장 기억나는 가마로 화성 행궁유물 재현 행사에서 재현한 혜경궁 홍씨의 가마를 꼽았다. 일반적으로 가마에 대한 사료가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혜경궁 홍씨의 가마만큼은 가마의 형태부터 가마에 그려진 문양까지 섬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덕분에 기본 토대를 유추해 만들어야 하는 다른 가마들과 달리 매우 높은 완성도를 지닌 가마를 만들 수 있었다고 이 전승자는 추억했다.
이처럼 가마는 조선시대 양식 외에는 남아 있는 사료가 없다고 이 전승자는 말했다. 고려시대 가마의 한 종류였던 ‘어막차’조차도 자료가 전무해 무용총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 겨우 따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동차, 전철 등 가마가 아니더라도 편한 현대식 탈것들이 많이 나온 지금으로써는 가마의 사용처조차 마땅치 않아 크게 조명되지 못한다고 이 전승자는 안타까워 했다.
“지금 가마는 혼례나 능 행차 같은 전통문화 행사 때 말고는 별로 쓸 일이 없어요. 한 번 만들 때 정말 정성들여 만드는지라 10년 20년이 지나도 문제 없이 쓸 수 있지요. 게다가 가마는 거의 대부분의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돼요.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기계를 이용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섬세한 부분은 반드시 손수 작업해야 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다 보니 가마만 전문으로 해서는 벌이가 어려운 점도 있어요. 아무래도 인건비가 만만치 않으니까요. 지금 제 밑에서 배우고 있는 제자가 셋인데 가마뿐만 아니라 다른 기물도 함께 가르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죠.”
전통 기능 전승자가 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전승자 밑에서 정식으로 3년을 수련하면 이수자가 될 수 있으며 그 중에서 수석 제자가 되면 계승자로써 산업인력공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계승자가 된 후에도 15년 가까이 되는 세월을 오직 전통공예에 묻어야만 전승자가 될 수 있다.
“전승자까지 정말 오랜 세월이 걸리는 데 비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은 그렇게 크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생활고를 겪기도 하고, 지난해처럼 코로나19 같이 행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요인이 생기면 관공서 쪽에서 들어오는 의뢰가 적어서 더 곤궁해지기도 하죠. 저희 전통기능전승자회 사람들이 모여서 전통공예 수업을 하고 정부 지원금을 받는 등 정부 측에서 일정 부분 지원해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실정이지요.”
이 전승자 역시 지난 한 해 코로나19의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지자체 행사가 많이 줄어들면서 가마 등 기물을 필요로 하는 곳도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전승자회에서 주최하는 전시들이 가장 마지막이었던 킨텍스 전시를 제외하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등의 문제 없이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한 해는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고 또 어떻게 보면 나빴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 의뢰를 받아 가마 한 대와 박물관에 전시될 기물들을 만들고 있는데 올해는 일이 좀 더 순조롭게 진행되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소중한 전통 기능의 맥이 끊기지 않고 잘 보존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박정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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