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시련과 역경을 많이 겪다 보니 상당히 단단해졌어요. 젊은 패기만 앞세워 멋모르고 도전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어떤 힘든 순간이 닥쳐도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되레 그 어려움을 이겨내보자는 용기로 해결해나갔죠. 그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산전수전(山戰水戰)’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산에서도 싸우고 물에서도 싸웠다는 뜻으로 이 말은 세상의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다 겪은 사람을 수식하는 데 주로 사용되곤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이 꽤 많다. 호기롭게 창업했지만 생각처럼 장사가 되지 않으면서 임대료, 인건비 등 매달 나가는 고정비 부담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 김 사장도 있고, 대기업에 취직해 열심히 일하던 중 갑자기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버텨내며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과거를 돌아보는 이 부장도 있다.
김 사장과 이 부장, 이들 뿐이겠는가. 비록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별의별 사연으로 고생과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숱할 터이다. 어찌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각기 산전수전을 겪고 있을 수 있다.
여기 젊은 나이에도 산전수전이란 표현에 걸맞은 세상의 부침(浮沈)을 다 겪은 인물이 있다. 공인중개사로 성공해 큰돈을 만지며 화려하게 살기도 했고 하루아침에 PC방 아르바이트생으로 전락해 돈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꿈과 가업,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허영진 보컬 트레이너(29)가 그 주인공이다.
고교 자퇴 후 세무사·공인중개사 도전… 수천만원 버는 성공적인 삶 이면엔 시기·질투 가득
훤칠한 외모와 달리 허영진 트레이너의 첫 인상은 참 단단했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그의 목소리와 행동에서 사람이 굳건하고 옹골차다는 느낌이 풍겨 왔다. 허 트레이너의 인생의 시작점은 여느 젊은이들과 사뭇 달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어요. 아버지의 교육관 덕분이었죠. 아버지께선 공부로 성공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잘 하는 게 아니라면 제가 하고 싶은 것으로 성공하라고 늘 말씀해 주셨어요. 만약 하고 싶은 것이 생겨 그 길을 밀고 나갈 자신이 있다면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도 약속하셨죠.”
“아버지 말씀을 듣고 ‘내가 과연 공부로 성공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솔직히 자신 없더라고요. 자퇴하면 친구들과 헤어지게 된다는 생각에 속상하긴 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어요.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친구들과 달리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즐기며 제 길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노라 마음먹고 과감히 자퇴를 했죠.”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이 끝날 무렵 학교를 떠난 그는 18세가 되던 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무엇을 하며 살지 고민한 허 트레이너는 경제적으로 수입이 괜찮고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과도 잘 맞을 것이라는 판단에 세무사에 도전하게 됐다.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는 하루를 매우 바쁘게 살았다. 가업과 공부를 병행해야 해서다. 고3 수험생에 맞먹을 정도로 꼭두새벽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 엄청난 일과를 소화했다.
“부모님께서 유명한 묵요리 전문점을 운영하고 계세요. 인근 지역에서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데 이게 서울까지 전해졌는지 SBS ‘생활의 달인’에서 찾아와 소개하기도 했죠. 방송에 소개되자 그 파급력은 상당하더라고요. 하루 매출이 300만~4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아왔으니까요. 그래서 부모님께 도움이 되고자 함께 일했죠.”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묵과 두부를 만들어요.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야 하기에 힘이 엄청 들죠. 그렇게 오전 내내 묵과 두부를 만들어 놓으면 11시께부터 손님들이 찾아와요. 그럼 그때부터 저는 설거지를 시작해요. 오후 4~5시까지는 손에 물이 마를 겨를이 없죠. 몇 시간 동안 설거지만 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긴 하지만 손님들께 맛있게 묵요리를 대접하려면 열심히 할 수밖에요.”
“장사가 얼추 마무리되면 가방을 챙겨 들고 저는 대전으로 향해요. 세무사 학원에 수업 들으러 가는 거죠. 제 고향이 충남 공주인데 대전까지는 버스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려요. 그렇게 수업을 듣고는 늦지 않게 집으로 와야 해요. 버스가 끊기면 안 되니까요. 밤 8시쯤 집에 도착해선 자습으로 세무사 공부를 해요. 시험 일정에 맞춰 공부하려면 자정을 넘겨 공부하는 날도 부지기수였어요.”
고3 수험생 못지 않은 일과를 소화한 그는 가업과 세무사 공부, 두 가지만 해도 벅찬 가운데서도 전산회계 1급, 전산세무 2급 등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다 세무사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얻어 세무사로서의 실무 경험도 쌓았다. 그때 그의 나이 19세였다.
세무사의 삶을 꿈꾸던 허 트레이너에게 미래를 바꾸게 되는 계기가 찾아온다. 군에 입대하게 된 것이다. 그는 군 복무 기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세무사의 삶을 살면서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다시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아버지께서 공인중개사에 대해 소개해주셨어요. 묵요리 전문점을 운영하시기 전에 아버지께서는 20년 넘게 건설업에 종사하셨거든요.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는 공인중개사가 앞으로 비전 있는 직업이 될 것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아버지의 권유로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하게 됐죠.”
“군대 전역하자마자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해선 8개월 만에 1·2차 모두 합격했어요. 대개 공인중개사 시험은 합격하기까지 2년 정도 걸려요. 그런데 저는 조금이라도 빨리 합격하고 싶어서 부지런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운 좋게도 단기간에 공인중개사 자격을 따는 데 성공한 저는 당시 한창 건설 붐이 불던 세종시로 가 공인중개사로서 활약하게 됐어요.”
“비록 함께 일하는 공인중개사들보다는 많이 어리긴 했지만 넘치는 패기로 열심히 일했어요. 그렇게 인생 첫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은 어마어마했어요. 통장에 수천만원이 찍혀 있더라고요. 기대 이상의 큰 금액을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했어요. 제가 열심히 일하면 그에 따른 보상도 확실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그렇게 2년 가까이 일하면서 1억원 넘게 돈을 모았죠.”
“그러나 공인중개사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어요. 회의감이 심히 컸거든요. 이유야 많지만 가장 컸던 것은 직장 동료가 반드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어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의외로 많은 직장 동료에게서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된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부동산 거래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피 터지는 경쟁 속에서 부담을 많이 느꼈어요.”
“더구나 나이가 어리다거나 학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 받는 경우도 잦았어요. 그런 제가 실적이 조금이라도 더 높으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일이 많더라고요. 어떨 땐 제 뒤에서 저를 흉보고 헐뜯기도 하더군요. 이대론 제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공인중개사 일을 과감히 내려놨어요. 그리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또다시 찾게 됐어요. 그게 바로 어릴 적 꿈이었던 음악이었죠.”
음악에 대한 열정·갈망 안고 상경… 실력 갖춘 가수·보컬 트레이너로서 성공하는 게 꿈
애당초 허 트레이너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갈망은 컸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족 밴드를 통해 음악을 접했다. 학창시절엔 동아리에서 보컬로 활약하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위해 세무사, 공인중개사 등에 다양하게 도전하는 동안 음악에 대한 꿈은 자연스레 밀려났다. 그러던 중 음악에 대한 향수가 마음 속에서 솟아나며 허 트레이너를 뜨겁게 만들었다. 그 길로 그는 꿈을 위해 상경했다.
“무작정 상경은 했지만 음악을 하기에 앞서 먹고 살아야 했기에 일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집 근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공인중개사를 그만 두기 전만 해도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벌던 제가 하루아침에 아르바이트생이 되다니 인생이 참 아이러니했어요. 하지만 스스로를 낮추거나 작게 보지 않았어요. 제가 열심히 노력하면 음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조금 빠듯했지만 음악적 실력을 갖추기 위해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어요.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 보니 참 재밌더라고요. 배움을 통해 제가 체득하게 되는 것들이 상상 이상이었거든요. 노래를 잘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소리를 내는 다양한 방법 등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어요. 성악, 뮤지컬, SLS(미국 발성) 등 여러 발성 전문가의 실력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피나게 연습하고 또 연습했죠.”
“한 2년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중에 보컬 트레이너로서 일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매우 감사한 제안이었죠.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도 들어서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보컬 트레이너로서 자신만의 길을 확인하고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허 트레이너는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을 갖춘 가수이자 보컬 트레이너가 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가수나 보컬 트레이너라면 학벌이나 소속사 같은 외적 요건보다도 단연코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요즘처럼 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더욱 중요하죠. 그래서 저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기반으로 제 음악적 실력을 더욱 갈고닦아 유명한 가수이자 보컬 트레이너로 성공하고 싶어요.”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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