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인구, 이른바 ‘펫팸족’(반려동물을 뜻하는 영어 펫과 가족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패밀리의 합성어)이 꾸준히 늘고 있다. 반려동물의 대다수를 반려묘와 반려견이 차지하는 가운데 비교적 비율이 낮은 조류를 치료하기 위한 조류 전문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가 있어 눈길을 끈다. 서울 은평구에서 22년째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철 수의사(51)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왜 돌려보낼 수밖에 없나” 회의감에 조류 진료 시작해
이상철 수의사는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에서 수의대학을 졸업해 서울로 올라왔다. 수의학을 배우기로 한 것은 수의사였던 큰형의 영향이 컸다고 그는 말했다.
“어릴 때부터 동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또 수의사인 친형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어요. 제가 중학교 때 큰형이 수의학과에 진학했는데 옆에서 보기에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에서 동물병원을 열게 된 것은 당시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작은 소동물 임상에 대해서는 지방보다 도시에서 더 수요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수의학을 배울 때부터 소동물 임상병원을 하겠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이 수의사는 오직 소동물 임상병원을 차리고 싶다는 일념으로 고향에서 머나먼 서울까지 올라왔다. 은평구에 자리를 잡은 그가 처음 문을 연 것은 조류전문동물병원이 아닌 소동물을 진료하는 병원이었다.
은평구에 동물병원을 연 이래 22년 동안 수의사 일을 해 온 이상철 수의사가 10년 전 조류 진료를 시작한 계기는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간혹 길을 가다가 다친 참새나 비둘기 같은 것을 주워서 데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진료시설도, 지식도 없다 보니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수의사인데 진료를 못 하고 돌려보내야만 한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죠. 그때부터 조류를 전문적으로 진료해보고 싶은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어요.”
국내에서는 조류 전문병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개나 고양이에 비해 새를 반려동물로 들인 사람이 적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이 수의사는 지금에 와서는 그나마 반려조를 키우는 사람이 늘었지만 조류 전문병원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류 전문병원을 찾기 어려워요. 그래선지 조류 진료의 경우 서울보다는 먼 타지에서 오시는 경우가 많아요. 충남이나 대전, 인천 같은 수도권 외곽 지역이나 멀게는 경남 지역에서도 많이 오세요. 강아지, 고양이 진료는 동네분들이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죠.”
“제 기억으로는 5년 전에 경남 통영에서 오셨던 분이 가장 먼 지역에서 진료 보러 오셨던 분인 것 같네요. 모란 앵무를 데리고 오셨는데 소낭화상을 입어서 데리고 오셨더라고요. 소낭은 식도의 일부분인데 소낭화상이라는 게 보통 이유식을 먹는 새끼 새들에게서 많이 발생해요. 이유식을 먹일 시기에 가루로 된 이유식을 따뜻한 물에 타서 먹이는 과정에서 조금만 뜨거워도 소낭에 화상이 생기기 쉽죠.”
소낭화상은 처음 화상을 입었을 때는 다쳤는지 잘 드러나지 않다가 사흘 정도 지난 후에야 소낭의 색이 점차 변하면서 화상이 드러난다. 이를 방치하면 일주일 정도 지나 딱지가 앉고, 딱지가 떨어지면 뚫린 구멍이 드러나는 심각한 부상이다. 경남 통영에서 먼 길을 온 모란 앵무는 이미 목에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이 수의사는 화상으로 뚫린 구멍을 잘 봉합해 치료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반려조, 이것저것 주워먹는 탓에 내과 질환 잦아… 반려인 부주의로 골절도
이상철 수의사는 반려조도 반려견, 반려묘와 비슷한 질환으로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골절 같은 외과질환, 부리가 부러지는 치과 질환은 물론 안과 질환도 잦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설사·구토·폐렴·난산 같은 내과 질환이다.
“평소에 먹던 모이를 주지 않고 사람이 먹는 과일을 주거나 갑자기 많은 양의 모이를 주는 경우에도 설사나 구토로 병원에 오기도 하고 이물질을 주워먹은 경우도 다수예요. 운동화 끈을 반쯤 삼켜서 치료를 받으러 온 경우도 있었는데, 이미 배 속으로 들어간 후라서 수술을 해야 했어요. 새들이 반짝이는 걸 좋아하다 보니 끈이나 실뿐만 아니라 바늘, 핀 같은 것들을 삼켜서 병원에 오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최근에는 병아리가 모래를 너무 많이 먹어서 항문이 막혀 병원에 오기도 했어요.”
“문 끼임 사고도 많이 일어나요. 새들이 사람과 유대 관계가 깊은 경우 사람을 계속 졸졸 따라다니는데 반려인이 그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문을 닫다가 새가 (문 틈에) 끼여서 목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어요. 물 한잔 마시고 냉장고 문을 닫았는데 새가 날아들다가 냉장고 문에 끼이는 사고도 있었어요. 새가 작다 보니 반려인이 새를 실수로 발로 밟거나 깔아뭉개기도 하는데요, 그런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이 내부 출혈이 일어나고 더는 치료할 수도 없어요. 그런 문제로 병원에 찾아왔다가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새를 보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상철 수의사는 새들한테 가장 안전한 장소는 새장 안이라고 말했다. 그 안에만 있으면 뭔가를 주워 먹을 일도 없고, 아플 일도 별로 없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문제는 새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자유를 만끽했으면 하는 마음에 반려인들이 새를 풀어두는 경우 발생한다.
그의 동물병원에 가장 많이 방문하는 조류 환자는 앵무새나 병아리 정도다. 맹금류는 일반 동물병원에서 진료하지 않고 등록된 조류 전문기관으로 가므로 볼 일이 좀처럼 없다. 이 수의사는 요즘 가장 많이 찾아오는 것은 까마귀로, 집을 떠나는 어린 까마귀들이 비행 연습을 하다가 추락해 병원을 찾아오게 된다고 말했다.
“수의사는 강한 정신력과 사명감 가져야 해요”
인터뷰 도중 중성화 수술 후처리를 위해 포메라니안 한 마리와 그 반려인이 병원에 방문했다. 엄살이 심한 포메라니안이 낑낑거리는데도 이상철 수의사는 시종일관 다정하게 빠른 솜씨로 치료를 마친 뒤 인터뷰를 이어갔다.
“수의사는 직업윤리의식이 있어야 해요. 어떻게 보면 소아과 의사와도 같죠. 우리의 환자는 말 못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더 신경써서 다정히 돌봐줘야 해요.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막 대해서는 안 되지요.”
“수의사가 되려면 물론 동물을 좋아해야 하지만, 수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제일 중요해요. 사명감이 없으면 진료를 하면서도 문제가 많이 생기죠. 자기가 진료한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는 책임의식도 중요해요. 반려인이 다른 병원에 의뢰를 하지 않는 이상은 끝까지 동물을 돌볼 수 있어야 하죠. 또, 동물이 치료 중에 잘못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정신도 필요해요.”
이상철 수의사는 수의사 일을 하면서 병원을 방문한 동물들을 미처 치료하지 못해 그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동물병원이다 보니 아픈 애들이 많이 찾아오잖아요. 그런 아픈 동물들을 잘 치료해서 돌려보낼 수 있으면 좋은데 끝내 그러지 못하고 보내야 할 때가 가장 심적으로 힘들죠. 죽을 것을 예상했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손을 써보지만 소용이 없을 때도 많으니까요. 반려인에게도 송구하고요.”
지금과 달리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지 않았던 예전에는 비싼 검사비용 탓에 검사를 진행하지 않는 반려인도 많았다. 말 못 하는 동물을 치료하는 데다가 반려인 또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검사가 필요했던 것인데, 검사 비용에서 막히다 보니 증상에 의존해 치료해야 했고 결국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런 일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이 일을 못 하게 되기도 해요.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다 보니까 이 수의사라는 업종 자체가 자살률이 높은 편이기도 해요. 한 마리 두 마리 떠나보내다 보면 이 일이 내게 맞는 일인가 의심도 하게 되고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수밖에 없죠.”
“처음에는 그런 것들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결국 살려내지 못했다는 데서 죄책감도 들었고, 심하게 우울감이 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너무 얽매여 있으면 다른 진료를 제대로 못 하더라고요. 안타까운 일이 있었더라도 마무리를 빨리 짓고 다음 진료를 봐야 하니까 최대한 얽매이지 않으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어요.”
조류 진료 10여년, 수의사 생활만 도합 22년을 했지만 이상철 수의사는 여전히 수의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왕 조류 진료를 시작했으니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진행해 더욱 전문화된 진료를 하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지금은 강아지, 고양이, 새로 크게 세 종류로 나눴을 때 조류의 진료 비율이 30% 정도라면, 앞으로는 50%까지 끌어올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게 점점 끌어올려져서 진료 비율의 70%가 조류가 되면 강아지나 고양이 진료는 안 보고 완전히 조류만 전문으로 진료하는 조류 전문병원으로 거듭나고 싶어요. 지금 조류 반려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니 조만간 가능할 것으로 봐요.”
[박정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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