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2] 고통에 대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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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보러 오는 사람, 있어?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04 06:30:10

신발장 위에 열쇠를 내려놓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폰과 대문 앞에 달아 둔 택배함에서 꺼내 온 상자는 테이블 위에 던져 두었다. 거실 등을 켜는 대신 유리창을 가리고 있던 블라인드를 올렸다. 겨울 어스름은 일찌감치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지만 가로등의 자동 조도 감지기는 오늘도 작동하지 않았다. 실내의 냉기와 어둠이 창밖보다 짙었다. 발밑에서 피어오른 어둠이 안개처럼 창틈을 비집고 나가 담을 넘어 스멀스멀 세상으로 번졌다. 시야가 흐릿해지며 눈이 빠질 듯 아팠다.

보일러를 돌리고 옷을 벗었다.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온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이가 딱딱 부딪치고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따뜻한 물이 피부에 닿자 비로소 불안이 진정되었다. 뿌옇게 서린 김을 손바닥으로 훔쳐 내고 거울 속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몇 달 사이 홀쭉해진 볼, 툭 불거진 눈알, 검붉게 충혈되어 홍채와 구분이 되지 않는 흰자위, 그 위로 수 많은 가시가 돋아 있는 눈은 검붉은 표피에 털이 숭숭 돋아난 열대과일 람부탄을 안구 대신 쑤셔 넣은 모양이었다. 이런 속도라면 일이 주 후엔 눈알이 아예 눈두덩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올지도 몰랐다. 가장 괴로운 것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통증이었다. 눈두덩을 누르면 불로 지지는 것 같던 통증은 망치로 대못을 박아 넣는 것 같은 두통으로 옮아 가곤 했다. 진통제로도 몇 시간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셨다. 하루 종일 비어 있던 뱃속은 알코올이 쓸고 내려가는 자리마다 뜨겁고 쓰렸다.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했지만 눈알을 도려내든,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든 어차피 인생은 끝장난 거라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통증이 언제쯤 올까 눈을 감고 기다렸다. 정신이 또렷해질 뿐 고통마저 기다리면 오지 않았다. 그러나 방심하고 있을 때 죽음처럼 기습할 것이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고통에 대한 예감, 그것이 간헐적인 통증을 24시간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면, 죽음이 끝장내 줄 때까지 목숨을 붙잡고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캔을 손에 쥔 채 소파에 벌렁 누웠다. 죽음이 나를 조롱하고 있다면 반격할 것이다. 스스로 끝장낼 것이다. 하지만 한강에 뛰어들거나 지하철 선로에 몸을 던지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코끼리처럼 장엄하게, 죽음의 자리를 찾아 자취 없이 사라지겠다!

“집 보러 오는 사람, 있어?”

전화기의 화면이 밝아지고 벨이 울렸다. 손에 쥐고 있던 빈 맥주 캔을 우그러뜨리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홉 시 십 분 전. 아내였다.

“아직.”

나는 짧게 답했다. 아내도 기대하고 물어본 것 같지는 않았다.

벌써 몇 달째 똑같이 오가는 질문과 대답이었다. 법적인 이혼 절차까지 마쳤지만 두 아이 양육비 겸 아내에게 주기로 약속한 돈은 집을 팔아야만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변두리 낡은 단독주택이 쉽게 팔릴 리 없었다.

아파트를 원하는 아내의 바람을 꺾고 주택을 고집한 건 나였다. 마당을 갖고 싶었다. 탕탕 털어 이불을 널 수 있는 빨랫줄을 걸고 싶었다. 햇볕과 바람 냄새가 밴 이불을 덮고 내 아이들이 잠들기를 바랐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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