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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에서 수술실은 전문가의 판단이 절대화되는 곳이다. 환자는 마취된 채 누워 있고 칼을 쥔 의사는 환자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다. 의사가 신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전문성과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극은 반복해 묻는다. 만약 그 칼이 환자를 살리기보다 권력 다툼과 사적 계산을 위해 휘둘러진다면 그것도 의사의 재량일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중과실과 고의 앞에서 의사의 권위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법정도 다르지 않다. 국민은 자신의 자유와 명예, 인생의 궤적을 사법공무원에게 맡긴다. 판사와 검사, 경찰은 칼 대신 법을 쥐고 있지만 그들이 행사하는 사법 권력의 무게는 수술칼보다 가볍지 않다. 사법 시스템이 작동하는 이유는 결국 신뢰다. 문제는 그 신뢰가 집단적 비양심과 비인간성 속에서 반복적으로 무너져 왔다는 점이다.
최근의 장면들이 이를 증명한다. 불기소로 덮였던 사건들이 특검과 재수사를 거치며 줄줄이 기소로 뒤집힌다. 쿠팡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는 증거 보고 누락과 외압 의혹 끝에 특검 수사가 시작됐다.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역시 검찰이 불기소했던 인물이 재수사 끝에 구속기소됐다. 이쯤 되면 다른 사건들은 제대로 처리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법공무원은 이를 전문가 판단의 영역이라며 오리발을 내민다. 마치 국민은 증거를 읽을 능력도, 상식적으로 판단할 권리도 없다는 듯 까막눈 취급한다. 그러나 반복된 번복과 재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사법시스템이 망가졌다는 분명한 시그널이다.
국가 수사기관의 초기 수사와 처분은 정말 최선을 다한 결과였나, 아니면 양아치 같은 사법 권력이 의도적으로 축소·왜곡한 판단이었나. 이런 상식의 질문 앞에서 이 나라의 사법공무원은 무슨 답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법왜곡죄 논의가 등장한다. 법왜곡죄는 사법공무원이 특정한 결론을 염두에 두고 고의로 법을 비틀어 적용했을 때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단순 오판이나 해석의 차이를 처벌하자는 게 아니다. 증거를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법리를 알면서도 다른 길로 유도하며 자기 입맛대로 결론을 만들기 위해 법을 도구로 썼을 경우를 겨냥한다. 다시 말해 사법공무원의 고의적 왜곡과 무책임을 전문가의 자유라는 말로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반대론은 익숙하다. 문명국의 수치, 사법부 독립 침해, 항소·상고 제도가 있는데 왜 형사처벌이냐. 그러나 항소와 상고는 결과를 고칠 뿐이다. 왜 그런 왜곡이 발생했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의도로 법을 비틀었는지 묻지 않는다.
최근 전국법관대표회의와 법원장회의가 법왜곡죄를 두고 위헌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힌 장면도 씁쓸하다. 이들은 사법 불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정작 그 불신을 낳은 구체적 사례에 대한 자기 성찰과 책임 논의는 비껴간다. 법관의 독립을 내세우면서도 사법 권력에 대한 제도적 책임을 묻는 장치 앞에서는 집단적인 방어벽을 친다. 이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사법 부족 지키기다.
물론 법왜곡죄는 완성된 답이 아닐 수 있다. 구성요건의 명확성, 정치적 악용 가능성은 치열하게 다듬어야 한다. 그러나 이 논의를 아예 봉인해버리는 순간 사법 피해자는 제도 밖으로 밀려나 침묵을 강요받는다. 문제의 본질은 거대한 재량과 권한을 가진 이들이 그 권한을 잘못 행사했을 때 실제로 책임을 지느냐에 있다.
사법은 제도다. 종교가 아니다. 사법 전문가에게 부여된 자율성은 무책임의 면허가 아니다. 불기소가 기소로, 무혐의가 조작 논란으로 뒤집히는 현실 앞에서 물어야 한다. 이 신뢰의 붕괴는 과연 누구 때문인가. 법왜곡죄 논의는 바로 그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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