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37] 우리는 타인의 체온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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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할 이유는 몰라도 살고 싶을 뿐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23 06:30:10

혹시 나는 아내를 만질 수 없어서 하운을 안고 싶은 게 아닐까. 사람의 부재가 일으킨 외로움을 다른 사람으로 상쇄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비난하면서도, 눈앞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머리를 기대고 상처를 치료받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나는 절대 그런 부류가 아니라고 손을 내저으면서도 떠난 사람은 가슴에 묻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타인의 체온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인간은 왜 타인과의 친밀감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을까. 원하는 것은 언제나 멀리 있었고 손에 움켜쥔 것은 곧 떠나갔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사랑하지 못해 죽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이 불완전한 삶의 위선과 불안을 어찌해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커플을 피해 옆 칸으로 옮겼다. 출입문 앞에 서서 창밖에 펼쳐지는 저녁 풍경을 바라보았다.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촘촘해져 가는 도시의 불빛이 겨울비에 젖어 흔들렸다. 유리창을 때린 빗방울들은 바람을 타고 거꾸로 기어 올라갔다. 비에 젖은 열차는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잠수함처럼 달렸다.

검은 유리문 위로 눈이 퀭한 내 모습이 흔들렸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진짜일까. 유리문에 비치는 모습이 실제는 아닐까. 유리문 저편에서 나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넌 살아 있니?”

유리문 저쪽의 사내에게 물었다.

“넌 살아 있니?”

남자도 나에게 똑같이 물었다. 사내도 자신의 존재가 의심스러운 게 확실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그런데도 살고 싶다니 우습군.”

내가 말했다.

“그런 거지. 다들 그러고 살아.”

어둠 속에 비친 사내도 쓸쓸하게 웃었다.

그때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부동산 사장이었다. 몇 번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뒤론 연락이 없어서 나는 이번에도 기대하지 않았다.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부동산 사장의 목소리는 전과 달리 호탕했다. 가격은 내가 제시한 데서 오백쯤 깎자고 했지만 반드시 살 사람이라고 장담했다. 아쉽긴 해도 어차피 깎일 것을 감안하고 부른 가격이었으니 큰 손해는 아니었다. 내일 아내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줄 수 있겠구나, 다행이었다. 사장은 집을 보러 갈 필요도 없으니 귀찮게 하지도 않을 거라며 바로 계약하자고 했다.

“다 부수고 빌라를 지을 거랍니다.”

사장은 일이 성사될 것을 확신했다. 나는 한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포클레인의 커다란 삽이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것 같았다. 내가 살던 집에 누가 이사 와서 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내가 살던 집이 사라진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모과나무가 뿌리 뽑힌다는 생각도 해 본 적 없었다.

밤 근무를 위해 늦게 일어난 아침, 아내가 출근하고 아이들마저 어린이집에 보낸 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춤추는 모과나무 위로 햇빛이 쏟아졌고 바람이 불었고 소나기가 퍼부었다. 푸른 나뭇잎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실로폰처럼 들려주던 집이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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