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이의 책캉 내캉] 삶의 시작과 끝을 아는 존재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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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인간/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 지음, 현암사, 1만9000원
결점을 안고 살아가는 인류의 생존과 모험에 관하여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27 13:45:20

“우리는 결국 흥이 깨질 수밖에 없는 종이다. 삶이 시작될 때부터 죽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 ‘불완전한 인간’은 이렇게 시작한다. ‘숙명’과 ‘운명’은 비슷하게 쓰이지만 한자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운명은 운전할 운(運)과 목숨 명(命)의 결합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만들어 가는 운을 말한다. 숙명은 머무를 숙(宿) 자를 쓴다. 인간이 발 붙이고 있는 불변의 운을 뜻한다.

출세하고 부자가 되는 것은 개인이 삶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달렸다. 부지런한 자의 운명은 성공이고 게으른 자의 운명은 쪽박이다. 그러나 부자로 살든 빈자로 살든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공통의 숙명을 안고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높은 지능 덕에 인간종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노화와 노쇠는 다르다 ‘할머니 가설’

▲ '할머니 가설'은 출산을 통해 본인이 직접 아이를 낳는 것보다 손주들을 통한 유전자 전달 가능성을 높이는 게 결과론적으로 인류에게 이득이라는 가설이다. 게티이미지

‘불완전한 인간’의 저자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는 의학박사 출신의 인류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의사로서 ‘개인적인 인간’을 해부하는가 하면 인류학자로서 긴 역사 속 ‘집단적 인간’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먼저 저자는 우리 삶에서 왜 죽음이 필요한지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근거를 밝혀나간다. 가령 1881년 다윈주의 생물학자인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죽음이 유용한 이유가 집단에서 쓸모없어지기 시작하는 개인들을 제거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자연선택이 종의 이익을 위해 계획된 죽음과 같은 자기 제거를 선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선택이 자기 집 지붕에 돌을 던지는 불리한 전략을 사용했을 리 없다는 생각이다.

죽음에 대한 논의는 노화와 노쇠에 대한 논의로 방향을 튼다. 노화는 단순히 늙는다는 사실을 뜻하지만 노쇠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발생하는 전반적인 약화 과정을 말한다.

노화의 대표적인 예가 여성의 폐경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성이 폐경 후 노쇠하기는커녕 상당히 활력 있는 삶을 살 뿐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것만큼 더 산다는 것에 주목했다.

침팬지 등 다른 영장류의 경우 10세 이후 생리를 시작해 40대 이후 폐경에 이른다는 점에서 인간과 가임 기간이 비슷하다. 하지만 침팬지의 수명은 40세 언저리다. 폐경과 동시에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왜 100세 가까이 살며 노쇠 없이 긴 시간을 노화 상태에 머물러 있는 걸까? 아니 그렇게 오래 사는데 왜 폐경이 빨리 찾아오는 걸까?

이에 대해 저자는 미국 인류학자 제임스 오코넬과 크리스틴 호코스의 ‘할머니 가설’을 예로 든다. 두 학자는 여성의 가임 능력이 일찍 중단됨으로써 얻는 이점이, 오래도록 아이를 낳은 것보다 더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한다. 출산을 통해 본인이 직접 아이를 낳는 것보다 손주들을 통한 유전자 전달 가능성을 높이는 게 결과론적으로 인류에게 이득이라는 뜻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긴 노년기는 영아 사망의 위험이 큰 인간종을 어려움에서 건져 주기 위한 자연 선택의 전략인 셈이다. 더욱이 인간은 청소년기에도 어른에게 의지하는 종이다. 다시 말해 우리 조부모님들은 우리 종의 성공을 돕는 존재이다. 이는 사피엔스가 다른 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질병을 통해 배우는 존재 ‘인간’

▲ 질병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숭고함을 드러낸다. 게티이미지

아울러 저자는 죽음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질병에 대해서도 심오한 견해를 덧붙인다. 마국의 문화평론가 아나톨 브로야드의 작품인 ‘내 병에 취해’를 인용해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아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경험 중 하나다”며 인간의 고유성을 추어올린다.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부정적인 경험에서조차 배움과 풍요를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 종의 가장 매혹적인 지적 곡예라는 것이다.

“나는 취약성과 인간의 유한성, 약점에 대한 인식이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과 결정의 ‘중심 동기’라고 믿는다. 질병은 우리의 매우 특별한 무대인데 오직 인간만이 그곳에서 성장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가 에세이 ‘아픈 것에 관하여’를 통해 인간을 무방비 상태로 몰아 넣는 ‘고통’에 대해 상고한다.

인간은 고통 중에 있는 가족과 친구를 돌보는 존재다. 질병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숭고함을 드러낸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럼에도 질병이 사랑·전쟁·질투에 밀려 문학의 위대한 주제 안에 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저자는 이 말에 동의하며 인간의 진화를 다룰 때 성공의 비결에만 집중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많은 사람이 승리와 발전이라는 이상적인 과거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두지만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의 불완전한 과거를 찾고 우리 종이 모든 ‘결점’을 안고 여기까지 살아남은 방식에 가치를 두고 감동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두려움과 불안·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모습을 재구성한다. 저자는 이런 점에서 이 책을 우리 종의 ‘고통의 전기’라고 표현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겪어온 역사와 모험의 모든 에피소드가 긍정적인 건 아니지만 결점과 이에 대처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승리를 맛볼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