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법관제도 헌법에 못박는다… “극단주의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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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안정적 독립 위해 총선 1년여 앞두고 개헌 추진
AfD·BSW 양극단 정당, 우크라戰·기후문제 입장 일치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24 16:25:39

▲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1월23일(현지시간) ‘디 하이마트’에 대한 국고지원 중단 판결을 내리고 있다. 디 하이마트가 아직 미미한 세력이지만 나치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등 극단적 성격으로 위험시돼 왔다. 원내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나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 등과 함께 자국중심 추세의 일면이다. AFP연합뉴스

독일이 헌법재판관 임명절차 등 법관제도를 헌법에 넣고자 개헌을 추진한다.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이런 움직임의 명분은 사법부의 안정적 독립 유지, 즉 정치권 변화에 따라 특정 판사의 임용·면직이 영향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양극단의 정치세력이 사법부 독립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각각 빨강·파랑·초록색을 상징색으로 한 사회민주당(SPD)·자유민주당(FDP)·녹색당 연합정부(일명 ‘신호등 연정’)가 제1야당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내년 9월 총선 전까지 이런 내용의 기본법(헌법) 개정에 나섰다고 23일(현지시간) 밝혔다.

연방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재판관 임기 12년, 정년 68세, 재판관 16명이 연방 하원과 상원에서 절반씩 선출된다. 이런 규정을 일반법에서 헌법으로 옮겨 손대기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다. 헌법개정 정족수가 하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일반법 정족수는 과반이다.

근년 상당히 세를 불려 온 독일대안당(AfD)과 신생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이 이번 헌법개정 합의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념상 정반대 위치에 있으나 우크라이나전쟁과 기후정책 입장이 거의 일치한다. 두 정당의 연대로 의회에서 재적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 특정 판사의 임명을 저지할 수도 있다.

독일 집권당 연정과 CDU·CSU 연합은 상·하원이 각각 할당된 판사를 기간 내 선출 못하면 서로 임명권을 넘긴다는 규정도 헌법에 새로 집어넣기로 했다. 소외된 AfD의 슈테판 브란트너 부대변인이 “빨강·노랑·초록(신호등 연정)과 검정(CDU·CSU 연합)의 단일정당으로부터 헌재가 보호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여권이 다 한통속이라는 풍자를 담아 내놓은 표현이다.

한편 자국중심주의 정당이 집권한 폴란드와 헝가리도 화살을 맞았다. ‘판사 임명권을 장악해 사법부를 권력에 종속시켰다’는 것이다. 폴란드·헝가리 사례를 들어 스벤 레벤 독일판사협회 대표는 “비자유주의 세력의 계획으로 안정적 법치가 얼마나 빨리 무너질 수 있는지 놀라운 방식으로 보여줬다”며 이번 개헌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들 구 동구권 국가들과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서유럽엔 1970년대 이래 이른바 ‘68세대’로 불리는 운동권 세대의 영향이 여전히 강하다. 서유럽 국가들은 인구·경제 규모 면에서 강대국이며, 과거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경영 및 획득 경쟁으로 업보가 많거나 제1·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 전력을 가졌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역사적 부채감 속에 ‘사민주의’ 즉 대의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 하에 평등과 약자배려 등 사회주의 가치 실현을 추구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후 마샬플랜 등 미국의 전폭적 지원 아래 부흥을 이룬 위에, 소련이 몰락한 1990년대 이래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와 중국의 거대 시장 및 저임금 노동을 활용한 풍요 덕분에 가능했다. 그런 시대가 드디어 끝났다.

서유럽은 변화와 혁신에 민감하지 않아도 지속된 안정과 번영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어졌다. 지난 수십년 꾸준히 미국으로 인재가 유출된 것은 기존 질서와 시스템에 안주한 결과다. ‘부자 미국 가난한 유럽’은 앞으로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디지털 식민지’ 상태를 벗어날 전망 없이 쇠락을 거듭한 서유럽에 마지막 결정타가 우크라이나전쟁이었다.

유럽연합(EU) 주류는 68세대적 이념의 진화판인 정치적올바름(PC)주의에 충실하다. 약자·소수자 보호는 인류의 미덕이지만 그것이 제도화되면서 납세자들은 가중된 부담 속에 역차별을 당하게 돼 불만이 쌓였다. 이민자·기후·환경 관련 정책은 서유럽 중산층 내지 기업에게 족쇄가 된 지 오래다.

우크라이나전쟁 이래 난민 유입, 러시아산 에너지가 막히자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의 폐업·도산 또한 불가피해지면서 ‘극우’로 불리는 정치세력이 힘을 얻게 됐다. 위험한 인종주의가 가세한 경우도 있으나, 글로벌리즘 피해자들이 내세운 자국중심주의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긴 어렵다.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한 인간·사회의 관점 자체가 뒤집히면서 긍정적인 질서도 함께 무너졌다. 그래서 가정·교회·국가 등 전통 가치의 회복을 외치는 게 이른바 극우정당들의 공통점이다. EU 구성원이지만 EU 주류와 일정 거리를 유지해 온 폴란드와 헝가리에선 한발 앞서 자국중심주의 정당이 집권해 있다.

최대 종교가 카톨릭인 폴란드·헝가리는 개신교 지역에 비해 산업화 흐름을 빨리 타지 못했고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워 제정시대·소련 체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만 탈냉전 이래 활발히 국익을 추구해 왔다. 지난 30여 년 서유럽 주요국처럼 보편 복지를 중시할 여력을 가져 본 적 없으며, 국가 주도의 효율성을 우선한 권위주의 정부가 용인되기 수월했다.

특히 헝가리는 결혼과 가정을 ‘남녀 양성의 결합’으로 헌법에 명시할 만큼 동성애와 거리를 둔다. 헝가리 현행 헌법 하에선 동성혼 허용이 불가능하다. 동성애=창조질서의 위반식의 기독교적 시각에 앞서 동성애가 인구 감소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인식도 있다.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여기도록 가르치는 성교육 역시 멀리 한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