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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에서 지구당은 오랫동안 지역 정치의 기반으로 작동했었다. 그러나 정치 자금 비리와 금권 정치의 온상이라는 비판 끝에 이 제도는 2004년 '오세훈법'에 의해 폐지됐다. 지구당 폐지는 한국 정치의 구조적 개혁으로 여겨졌으며, 정치 자금 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금 권 선거를 방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11일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들이 모여 지구당 부활을 당에 공식 요청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물론이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찬성 의사를 밝힌 바 있어서, 국회 차원의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지구당 부활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개혁인지, 아니면 정치의 후퇴를 의미하는 개악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구당 부활을 찬성하는 측은 이를 지역 정치 활성화와 정치 신인의 진입 장벽 완화라는 명분으로 내세운다. 지역 정당 조직이 부재한 상황에서 원외 정치인의 정치적 활동이 제약받고, 이는 곧 정치 다양성의 축소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모두 지역 조직의 강화 필요성을 언급하며 지구당 부활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위험한 함정이 있다. 지구당은 과거 지역 정치 활성화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정치 자금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기도 했다. 지구당 부활이 과거의 문제를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지역 정당 조직이 정치 자금을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과거처럼 정치 자금의 흐름이 불투명해지고, 특정 후보나 당의 금권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2년 대선 당시 드러난 '차떼기 사건'은 지구당이 어떻게 금권 정치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바 있다.
정치 자금의 투명성 확보와 금권 정치 근절은 더 이상 논의가 필요 없는 필수 조건이다. 지구당 부활은 이러한 방향에 역행할 위험이 크며, 한국 정치가 다시 부패의 늪에 빠질 가능성을 높인다는 지적을 피해 갈 방안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지구당 부활은 중앙당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지역 정당 조직의 자율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중앙당이 주도하는 공천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저해할 위험도 있다. 특정 지역의 강력한 당협위원장이 지역 내 영향력을 통해 공천을 좌우할 수 있다면 공천 과정의 민주화는 요원한 과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지역 조직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나 그 결과는 다를 수 있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탄탄한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중앙당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국민의힘은 약한 지역 조직을 보완하려는 필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 결과적으로 조직 정치가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지구당 부활은 정치 개혁이라는 대의에 역행하는 조치다. 이는 정치 구조의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며, 한국 정치의 후퇴를 가져올 위험이 크다. 2004년 지구당 폐지는 단순한 법적 변화가 아니라, 정치적 부패를 청산하고 투명한 정치 문화를 조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지구당이 부활한다면 이러한 성과를 모두 잃을 수도 있다.
진정한 정치 개혁은 지역 조직의 강화가 아닌, 중앙당과 지역 간의 균형 있는 권력 분배, 정치 자금 관리의 투명성 강화, 공천 과정의 민주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지구당 부활은 이러한 개혁 과제와 무관하거나 오히려 역행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여야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지구당 부활이 아니라, 기존 당협위원회 제도를 개선하여 지역 정치 활성화와 정치 자금 관리의 투명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정치 개혁의 명분 아래 과거로 돌아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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