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양력 회복 시급… “한국·일본과 협력밖에 당장 대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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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안보보좌관 왈츠 “中 선박 건조력 우리의 200배 이상”
민주당과도 초당적 ‘미국선박법’ 발의 예정… “시간 싸움”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13 16:12:39

▲ 마이크 왈츠 연방 하원의원(플로리다)이 7월 미국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찬조연설을 하고 있다. 차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왈츠 의원은 일찍부터 해양 패권 회복을 위해 조선업 되살리기를 강조해 왔다. 최근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과의 조선업 협력을 언급한 가운데 새삼 주목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차기 정권에서 3대 요직 중 하나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마이크 왈츠(50) 하원의원(공화·플로리다)이 지명됐다. 그는 27년 군복무 경력과 무공훈장의 전쟁영웅 출신이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 선언 이틀 만에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조선업 협력을 언급한 가운데, 일찍부터 중국의 해양권 도전과 미국의 조선 능력 회복 문제에 관심을 보여 온 왈츠 의원의 행보가 새삼 눈길을 끈다.

대항해시대 이래 500년, 세계 패권이란 해양권 즉 제해권(制海權)을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일본·한국·대만 등 에너지를 수입해 제조업·통상으로 성공한 나라들 모두 미 패권의 수혜자다. 12일(현지시간) 미 주요 언론이 재조명한 왈츠의 그간 의정 활동과 발언엔 대(對)중국 전략에서 해군력의 중요성, 미 조선업을 되살려야 하는 이유, 정부가 장기간 투자하되 당장 필요한 선박 건조·수리 역량 등 확보를 위해 한국·일본·인도 등 동맹과 협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뚜렷하다.

왈츠 의원은 지난달 28일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 대담에서 “선박 건조의 전문성, 중국 밖에서 대규모 배를 만들어 낼 능력이 일본· 한국에 있다”며 “그들로 하여금 우리와 유의미한 방식으로 협력하게 하는 것 외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적어도 단기적으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짚었다. 내년 1월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함께 왈츠의 이런 구상이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9월 국방 전문지 ‘리얼클리어디펜스’ 기고에서 이미 왈츠 의원은 “중국의 선박 건조 역량이 이제 미국의 200배 이상”이라며 현 상황의 극복을 “시간과의 싸움”으로 표한하는 등 시급함을 강조했다. “당연히 우리의 모든 선박이 미국산이면 좋겠지만 최대 적과의 경쟁에서 미국산·일본산·한국산·유럽산 선박을 혼합할 필요가 있다”는 대목에서도 위기감이 드러난다. 주적(主敵) 개념 또한 확고하다.

4월 왈츠 의원은 쇠락한 미 해양력 복원을 향한 의회 차원의 ‘국가해양전략’ 지침을 내놓으며 대대적 조선·해운업 투자를 권고했다. 이 지침엔 트럼프 2기 국무장관으로 유력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이름도 올라 있다. 왈츠처럼 루비오 의원 역시 대중·대북 강경파다. 해당 지침은 조선·해운업 재건의 비용·시간·복잡성을 줄일 수 있도록 동맹·파트너국들과의 호혜적 관계 모색을 제안했고, 남중국해·호르무즈 해협 등 공해상 항행의 자유 보장 차원에서 수행될 모든 해양 작전의 부담을 이들과 나누도록 주문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전반적 미 조선업 복원 방안이 조만간 법안을 통해 공개될 것이다. 왈츠 의원과 마크 켈리 상원의원(민주·애리조나)은 9월25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대담에서 미 조선업 되살리기 초당적 법안(미국선박법)을 준비 중이며 회기가 속개되면 발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당시 대담에서 왈츠는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나 현대, 일본 등을 방문해 보면 21세기 선박 건조·수리 수준을 볼 수 있다. 우리 조선소를 몇 군데 가 보니 1930년대 이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외국 조선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막아온 존스법이 당장 개정되긴 어려울 것 같다. 미 항구를 오가는 모든 화물이 미국에서 만들어져 미국인 선원을 태운 미 선적 선박을 이용하게끔 돼 있는 존슨법이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벽 역할을 해 왔다. 켈리 의원은 “존스법을 폐지할 필요 없다. 세액공제·대출보증, 각종 인센티브와 협력관계를 통해 미국 투자를 사업적으로 더 타당하게 만드는 게 법안 발의의 목표”라며 “우리 동맹들이 투자하게끔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발의될 관련 법안에는 국방부·교통부·상무부·재무부 등 관계 부처 간 업무를 조율할 ‘해양 조정관’ 신설, 미국에서 선박을 건조하고 미 선적 선박을 소유·운용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관련 사항 등이 담긴다. 대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왈츠 의원은 무역법 301조 관세와 화물 세금 및 수수료 등을 들여다보며 재원확보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인프라법 예산 일부를 해양 산업으로 돌리는 방법도 생각한다고 했다.

2021년 1~7월 세계 조선 수주량 1위를 기록해 세상을 놀라게 한 중국이 1100개 이상의 조선소를 운영한다. 인류 조선업 역사 통틀어 최대 규모이자 수량이다. 수주량 2위 한국은 액화천연가스(LNG)선·암모니아선 등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선 독보적 우위를 점한다. 최근 국내 조선 3사인 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이 선박 수주 잔량 기준으로 나란히 세계 1~3 위에 올랐다. 2011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기준 동시 흑자가 전망된다.

우리 조선업은 2000년쯤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으나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발주가 끊기면서 고전하게 됐다. 특히 배럴당 유가 100달러 돌파 이후 원유 시추(드릴십), 부유식 LNG 저장 시설(FSRU) 등 해양플랜트를 대거 수주했지만 유가 급락으로 수조원대 적자를 떠안으며 사옥·토지 등 자산 매각, 핵심인력 감축 등 뼈아픈 구조조정도 겪어야 했다. 트럼프 재집권과 미 조선업의 재기를 앞두고 우리 조선업계의 새 시대, 이를 매개로 한 대한민국의 전략적 기회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