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45] 목구멍이 포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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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17 06:30:28

화장품 세트·장갑·목도리·일제 스타킹·실크 스카프 때로는 14K 실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물론 현금도 챙겨 주었다. 영미는 양 부장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후 다음 차례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양 부장은 선물 세레모니가 끝나자마자 바지 벨트를 풀었다. 영미가 젖가슴으로, 손으로, 입으로 자기 성기를 애무해 주는 걸 좋아했다. 양 부장은 키스도 직접적인 성행위도 하지 않고 오직 펠라티오를 즐겼다.

키 160cm의 단신인 양 부장의 페니스는 길고 굵었다. 영미는 그의 성기가 목젖을 눌러 헛구역질이 났다. 특히 그의 것이 목구멍 끝까지 들어가도록 영미 머리를 짓눌렀고 그런 자세 때문에 때때로 영미는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양 부장은 좀처럼 사정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영미가 기진맥진할 무렵 영미의 입안 가득 그의 정액을 쏟아 냈다. 차 문을 열고 입에 있던 정액을 뱉어 내고 나면 친절한 양 부장은 입가심하라고 물병을 건넸다. 영미는 양 부장이 냄새나는 입으로 자신과 입맞춤하지 않은 것, 영미의 질 속으로 그의 것이 들어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양 부장은 영미를 숙소에서 훨씬 떨어진 곳에 내려 줬다. 걸어오면서 영미는 양 부장이 준, 비싼 선물 때문은 아니라고 도리질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양 부장이 추행을 멈춘 건 권지호 덕분이었다. 권지호는 권위에 의한 상사들의 불미스러운 언행이 발각되면 가차 없이 해고하겠다고 공고문을 냈다. 사업장 내 성폭행·성추행은 비일비재했어도 여성 근로자들은 상담하거나 신고할 엄두를 못 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이름이 드러나면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여성 근로자들에게 권지호는 구세주였다. 여자들은 젊고 훤칠하고 똑똑한 사장 아들의 페어플레이에 열광했다. 그래서 더 노조 설립이 찜찜했다.

영미는 노조 설립을 반대하는 게 권지호에 대한 의리고 충성이라 생각했다. 희숙이 공장 환경에 익숙해지고 손이 빨라질 즈음, 권지호가 희숙을 찾았다. 공장 직원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 듣고 있다면서. 희숙에 대한 권지호의 관심은 자기 회사 직원 대하는 수준 정도여서 쓸데없이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희숙이 관리자급 혹은 동료들의 감시나 주의가 느껴졌다면 경계했을 터였다. 권지호는 일관성 있게 따뜻한 척, 무심했다. 잘못한 게 없어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권지호였다.

그의 감시와 통제가 느슨한 형태로 비친 게 치밀한 전략이었다는 걸 희숙은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그는 비상한 머리를 들통나지 않게 관리했다. 평균 학력이 중졸인 근로자들 앞에서 명문대 천재성을 드러내는 행동은 유치하고 교만한 짓이었다. 권지호는 똑똑하게 처신했다. 겸손한 듯 자신의 위치를 상기시켰고 배려하는 듯 선을 그었다. 희숙에게도 직원들 앞에선 늘 고금화 씨, 라고 불렀다.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희숙은 왜 권지호가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분명 동료들이 부를 때와 다른 감이 있었다. 친절하면서도 불안한, 그래도 다정한.

고금화 씨, 힘들지는 않아요?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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