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나서고 있는 국민연금의 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무기로 이른바 ‘기업 길들이기’를 일삼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이 사실상 정부 영향력 아래 있고 수장 역시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정권 입맛대로 기업경영을 좌지우지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무조건 반대’ 식이라는 점이다. 이렇다 할 대안 없이 무조건 오너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주주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행위는 ‘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주주권의 기본 원리에도 어긋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자유시장경제에 역행하는 행보로 국가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익내고 신사업 성과내도 연임반대…국민 노후자금으로 기업에 횡포 일삼는 국민연금
주요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연이어 열리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행보가 여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요 기업 총수들의 연임에 반대표를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게 주효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방향을 논의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등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이들 회장들이 기업가치 훼손 이력, 주주권익 침해 이력 등이 있다는 게 국민연금의 이사 선임안 반대 이유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의결한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에서 중점관리사안에 해당하는 ‘횡령·배임·부당지원·사익편취 등 법령 위반으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사안’에 근거한 것으로 분석된다. 공교롭게도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인물들은 법령 위반 사안이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국민연금이 본격적으로 주주권 행사에 나선 건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도입하면서 부터다. 이후 처음 맞이한 주총 시즌서 국민연금은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대표이사 연임안 부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해엔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며 보다 본격적으로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가이드라인을 통해 국민연금은 ‘중점관리사안’으로 △지나치게 낮은 기업의 배당정책 △지나치게 높은 임원 보수 △횡령·배임·부당지원·경영진 사익편취 등 법령 위반으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사안 △지속해서 반대의결권 행사 사안 등을 의결했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이를 위반했을 때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힘을 보탰다. 정부가 ‘주식 대량 보유 보고 제도(5%룰)’을 완화한 덕에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한층 수월해졌다. 당초 룰에 따르면 특정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경우 추가적으로 지분을 매입할 때 보유 현황 및 목적 등을 자세히 보고·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법이 완화되며 공시의무가 덜어졌다. 주식보유 목적도 ‘일반투자’, ‘단순투자’ 구분했다. 일반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보유할 경우 해당 기업에 배당이나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할 수 있다.
5%룰 개정 이후 국민연금은 지분을 소유한 주요 기업들의 주식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보유목적을 일반투자로 변경한 기업은 삼성전자(9.66%)를 비롯해 현대자동차(10.46%), SK(7.45%), LG전자(9.53%), 한화(9.29%) 등이다. 최고경영진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행사한 신한금융지주(9.76%), 우리금융지주(8.82%) 등의 지분도 일반투자로 보유목적을 변경했다.
“정권 입맛대로 기업 길들이는 국민연금…한국경제 찬물, 국민 노후자금 손실 우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앞세운 기업경영 개입 행보는 거센 국민적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이용해 과도하게 민간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결국엔 기업의 이익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주주권의 기본 원리에도 어긋난다는 점에서 최악의 경우엔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정권의 영향아래 있다는 점은 논란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국민연금은 기관 특성상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위원장부터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국민연금의 투자기업에 대한 의결권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수탁위 위원 9명 중 6명은 복지부 장관이 위촉하게 돼 있다.
현재 수탁위 위원 중 다수가 친정부 성향 인사로 채워져 있다. 수탁위는 3명의 상근 전문위원과 6명(사용자 추천 2명, 근로자 단체 추천 2명, 지역가입자 추천 2명)의 외부전문가로 구성돼 있는데 일단 상근 전문위원 중 2명이 정부기관에 몸담고 있는 인물이다. 또 외부전문가 6인 중 2명이 참여연대 출신 인사라는 데도 시선이 집중된다.
근로자 대표로 있는 이상훈 서울시복지재단 공익법센터장은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다. 지역가입자 대표 홍순탁 회계사는 참여연대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정부가 국민의 노후자금을 입맛대로 주무르며 기업 옥죄기에 나선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는 근거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고 또 이렇다 할 대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역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주주권을 행사하는 명분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들고 있지만 기업의 실적상승을 견인한 기업 총수 연임에 반대표를 행사하는 행태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오히려 주주가치를 떨어뜨려 국민 노후자금의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일례로 국민연금이 연임 반대의사를 표한 조용병 회장의 경우 신한금융의 순이익 3조원 시대를 열고 리딩뱅크 자리 수성을 견인한 인물이다. 손태승 회장도 우리은행의 실적상승을 도모하고 금융지주 체계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조현준 회장은 활발한 신사업 발굴을 통해 효성그룹의 재도약을 도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국민연금의 기본적인 목적은 수익성을 높여 국민들에게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며 “스튜어드십 코드를 앞세워 재벌 개혁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정권과 무관하게 중장기적인 수익성을 목표로 운영된다면 주주권 행사가 적절할 수 있다”며 “그러나 지금 국민연금은 정권이 장악하고 있으며 최고 결정자마저 보건복지부 장관인 상황이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민연금을 정권의 영향 아래 두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며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기업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정권의 입맛에 맞추는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시장을 주도하며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며 “국민연금이 자꾸 기업의 경영권을 흔들면 실적악화로 이어질 수 있고 종국엔 국민의 노후자금이 위협받는 상황까지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장도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정책도구화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연금은 본연에 충실할 필요가 있는데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업 관리에 나서는 건 역할에서 벗어난 잘못된 행위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기업을 옥죄는 방식으로 움직이다보면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하는 데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료를 표했다. 이 교수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행태를 보면 정치 홍보성 성격이 짙고 실효적인 부분이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며 “당연히 기업의 경영권을 흔들며 더 좋은 지배구조를 제시하는 모습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을 흔들며 정권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행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적극적 주주권 행사 과도한 경영개입 논란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어디까지 의결사안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는 것일 뿐이다”며 “주주권 행사 단계서 대안을 제시하는 건 권한 밖의 일이다”고 말했다.
[강주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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