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초심엔 열정이 가득해요. 그러나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준히 지속하는 성실함이라고 생각해요. 꾸준히 성실하게 실행하지 않는 것은 결국 멈춰 있는 것과 다르지 않죠. 그래서 전 헤어 스타일링을 통해 개개인이 꿈꾸던 개성을 드러내도록 하는 일에 성심성의껏 전념하고 있어요. 보다 많은 사람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세상의 조력자가 되는 일이니까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곤 한다. 옷이나 액세서리 등 패션 아이템으로 포인트를 주거나 메이크업을 통해 피부 결점 같은 단점을 가리고 이목구비를 또렷하게 강조하는 등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관심이 많다. 이 중에서도 시각적으로 빠르고 효과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단연 헤어 스타일이라고 하겠다.
헤어 스타일이 사람들의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머리 길이를 길게 할지 짧게 할지부터 펌, 염색 등으로 어떻게 스타일링 하는지에 따라 개개인의 개성은 다양하게 표출된다. 그러나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제각각 다르고 모발 상태, 두상 등도 천차만별이라 개개인에 맞는 헤어 스타일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여기 개개인에게 맞는 헤어 스타일을 찾아주고 각자 갖고 있는 개성을 최대한으로 살려주는 이가 있다. 마치 몸에 딱 맞는 수트를 입은 듯 사람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헤어 스타일을 선별해주는 한혜리 디스탠다트 대표(36)가 그 주인공이다.
기술만 있으면 될 줄 알았던 헤어 디자이너… 고객 욕구 파악 못한 애송이에 불과
“헤어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한 지 벌써 16년이 흘렀네요. 성공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어리숙한 소녀가 어느덧 사람들의 헤어 스타일을 책임지는 헤어 디자이너가 돼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에 저 자신도 놀라울 따름이에요.”
한 대표는 헤어 디자이너 업계에서 이름 난 인물이다. 이른바 ‘남자머리 살려주는 티샘’으로 유명한 한 대표는 헤어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바닥부터 차근차근 한 우물만을 팠다. 십수 년간 한 가지 일에 매진한다는 게 쉽지 않은 만큼 한 대표가 일궈 온 지난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헤어 디자이너가 돼야 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세 때였어요. 그 전엔 미술학도로서의 삶을 꿈꿨죠. 어릴 때부터 예체능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특히 손으로 할 수 있는 미술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예고에 진학했죠.”
“그러나 예고에서의 삶은 제가 상상하던 것과는 크게 달랐어요. 미대 진학을 목표로 자리에 앉아 꼬박 5~6시간을 버티며 그림을 그리기란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가 어느덧 해내야만 하는 부담으로 바뀌자 미술학도로서의 꿈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어요. 그렇게 꿈을 잃어버리고는 미래에 대한 방황이 시작됐죠.”
한 대표가 미술에 흥미를 잃자 가장 마음 아파한 사람은 한 대표의 어머니였다. 미술학도가 되길 바랐던 한 대표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미용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어머니는 제가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곧잘 한다는 걸 잘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미술학도 대신 미용인으로서의 새로운 길을 가보라고 추천해주신 것 같아요. 어머니의 응원에 힘입어 바로 미용학원에 등록해서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그렇게 자격증을 땄고 스무살이 되던 해 바로 현장에 뛰어들어 일을 시작했어요.”
한 대표는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신촌 이대 부근에 위치한 헤어숍에서 흔히 파트너로 불리는 헤어 디자이너 보조로서 일을 시작했다. 하루 14시간을 일하고도 영업시간 이후에 추가로 몇 시간 동안 커트 등 헤어 스타일링 훈련을 받았다. 이토록 고된 업무와 연습을 감내하고 받은 월급은 고작 45만원이었다. 월급에서 절반 가량을 월세로 내고 나면 남은 한 달을 20여만원으로 버텨야 했다.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어떻게 저 월급을 받고 한 달을 생활할 수 있냐고 의아해하겠지만 막상 살아보니 살아지더라고요. 월세 빼고 20여만원으로 밥도 먹고 옷도 사 입고 교통비도 내고 다 했다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믿기지 않기도 해요. 하지만 헤어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겠다는 꿈이 어렵던 시절의 저를 더욱 단련시켰다고 믿어요.”
힘든 여건 속에서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한 대표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한 대표는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받아 남성 전용 헤어숍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한 대표의 나이 22세 때의 일이었다.
“헤어 디자이너는 ‘기술·화술·예술’,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이루어졌을 때 빛을 발하는 직업이에요. 그러나 어느 누구라도 이 세 가지는 하루아침에 갖출 수 없어요. 오랜 시간 동안 부단히 연마하고 노력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죠. 그런데 어렸을 때의 저는 당시 큰 착각에 빠졌던 것 같아요. 경험이 부족한데도 다른 헤어 디자이너들 못지 않게 헤어 스타일링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이러한 판단 오류들로 헤어 디자이너로서의 초창기 시절은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때였어요.”
“헤어 디자이너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에요. 한 고객이 찾아와 커트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고객이 원하는 헤어 스타일을 전해 듣고는 곧바로 커트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고객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거예요. 처음엔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 커트하다가 거의 마무리가 됐을 무렵 고객의 표정을 알아챘어요. 마지막으로 머리를 다 말린 후 고객이 거울을 보는데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더라고요. 그러나 고객은 큰 불평 없이 계산하고 나갔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외출하고 돌아온 헤어숍 원장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더군요. 마구 구겨진 제 명함이었어요. 그 명함처럼 제 마음도 구겨져 하루 종일 펑펑 울었어요.”
“결국 고객이 원하는 니즈(욕구)를 파악하지 못한 제 불찰이었죠. 경험 부족으로 기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헤어 디자이너 초년생이 고객이 원하는 헤어 스타일을 무슨 수로 선보일 수 있었겠어요. 헤어 스타일링만 잘하면 될 줄 알았던 제가 매우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많이 어리고 모르는 게 많은, 또 기술만 갖추면 헤어 디자이너로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제가 애송이었어요.”
“노력만이 살 길” 헤어 스타일링 연습·공부… 고객 만족·후배 양성 두 마리 토끼 잡아
그러나 한 대표는 가위질을 포기하지 않았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만큼 헤어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노력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고객에게 어울리는 헤어 스타일링을 해줄 수 있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기술·화술·예술을 갖추기 위해 늘 연습하고 공부해야 했거든요.”
“헤어 스타일링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커트예요. 펌이나 염색 등을 할 때 모발이 상하지 않게 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커트를 못하면 개개인에 어울리는 헤어 스타일을 절대 찾아줄 수 없어요. 또 매년 달라지는 헤어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짬을 내 트렌드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어요. 그래야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헤어 스타일을 곧잘 해낼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헤어 스타일링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뤄지는 것인 만큼 고객과의 신뢰를 쌓기 위해 대화를 통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해요.”
“그 덕분일까요. 지금도 고객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게를 나서는 뒷모습을 보는 순간, 그때의 설렘과 떨림은 말로 다 표현 못할 만큼 벅차고 행복해요. ‘고객이 제 헤어 스타일링을 마음에 들어하는구나’ ‘신뢰하고 있구나’ 등 이런 생각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더라고요.”
한 대표는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한 대표가 헤어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처음 걸을 때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이 뒤이어 따라올 후배 헤어 디자이너에게도 큰 어려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한 대표는 헤어 스타일링 교육이 후배들에게 큰 자양분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헤어 스타일링 교육을 시작한 지도 햇수로 벌써 6년차에 접어들었어요.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짬을 내 전국 각지에서 헤어 스타일링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때마다 교육을 듣겠다고 찾아오는 수많은 수강생과 만나게 돼요. 그 수강생들을 보면 어릴 때의 저를 보는 것 같아 더 열심히 가르치게 되더라고요.”
“헤어 스타일링에 대해 제가 아는 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긴 하지만 교육 일정 상 시간이 빠듯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도 부지런히 따라와 주는 수강생들이 대견하고 참 고마워요. 게다가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들었던 수강생들이 제 교육에 대해 크게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참 보람을 느껴요. 이건 헤어 디자이너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교육자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죠. 이를 통해 저 역시도 성장하는 것 같아요. 머리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한 대표는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것만은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헤어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헤어 스타일링을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있는지, 고객과의 신뢰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 전체적으로 보되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해요. 또 타인을 존중해야 하죠. 그래야만 기술·화술·예술, 이 세 가지를 갖춘 헤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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